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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년 3.1만세 대열에 뛰어들다

[김삼웅의 인물열전 - 딸깍발이 선비 이희승 평전 5] 3.1혁명 시기

등록 2024.03.04 07:33수정 2024.03.04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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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운동 기록화(독립기념관)
3.1운동 기록화(독립기념관)독립기념관
 
대한제국을 강점한 일제는 혹독한 탄압과 수탈의 무단통치를 자행했다. 초대 총독 데라우치 마사다케는 드러내놓고 "조선인은 일본 법규에 복종하든지 죽든지 하나를 택하라"고 엄포하면서 헌병경찰에게 즉결권을 주는 '헌병경찰제'를 통해 폭압과 감시체제를 구축했다. 

총독부는 조선교육령, 산림령, 민사령, 형사령, 태형령, 감옥령을 잇따라 공포하면서 철권통치를 자행하고, 조선민족사 관련 각종 사서의 압수와 사립학교 폐교 등 온갖 악행을 저질렀다. 반면에 총독부령으로 공창제를 조성하여 청소년들을 타락시키려들고 한국 농민들을 만주로 내몰았다. 

국내에서는 광복단, 조선국권회복단, 대한광복회 등이 조직되어 항일에 나섰지만 일제의 폭압에 희생되고 말았다. 만주에서는 1919년 1월 독립운동가 39인 명의로 '무오독립선언'이 선포되고 같은 해 2월에는 일본에서 유학생들의 '2.8독립선언'이 선포되었다. 이같은 흐름은 국내의 3.1혁명으로 점화되었다.  

국제정세가 크게 요동치고 있었다. 1914년 7월 28일 시작된 제1차 세계대전이 1918년 11월 11일 종전되면서 전승국과 패전국 사이에 강화회의가 열리게 되었다. 일본은 중국에 있어 이권 확대를 노리고 영일동맹을 내세워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고, 연합국이 승리하면서 중국 산동성의 독일 이권을 그대로 물려받고 남양제도의 위임통치령을 얻었다. 

한편 러시아에서는 1917년 10월 혁명으로 레닌을 수반으로 하는 소비에트사회주의 정권이 수립되었다. 소비에트정부는 지주의 소유지를 국유화하고 은행·산업의 노동자 관리에 착수했으며 독일과의 단독강화에 의해 평화체제를 갖추었다. 러시아 신정부는 권내의 다민족을 포용한 채로 자결권을 승인하고, 민족자결 원칙을 제시하면서 식민지 국가의 민족해방 투쟁을 지원한다고 발표하였다.

미국 대통령 윌슨은 1918년 1월 의회에서 <14개조 평화원칙>을 공표했다. 그 내용은 ① 강화조약의 공개와 비밀외교의 폐지 ② 공해(公海)의 자유 ③ 공정한 국제통상의 확립 ④ 군비축소 ⑤ 식민지 문제의 공정한 해결 ⑥ 프로이선으로부터의 철군과 러시아의 정치변화에 대한 불간섭 ⑦ 벨기에의 주권회복 ⑧ 알자스 로렌의 프랑스 반환 ⑨ 이탈리아 국경의 민족문제 자결 ⑩ 오스트리아 - 헝가리 제국 내의 여러 민족의 자결 ⑪ 발칸제국의 민족적 독립보장 ⑫ 터키제국 지배하의 여러 민족의 자치 ⑬ 폴란드의 재건 ⑭ 국제연맹의 창설 등이다. 

각 민족은 그 정치적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가져야 하며 외부로부터 간섭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하는 민족자결주의는 19세기 내셔널리즘의 고양과 함께 약소민족의 자주독립사상으로 널리 인식되었다.


제1차대전 결과 독일·터키·오스트리아 제국이 붕괴되고, 그 판도에 있었던 종속민족들의 처리문제가 시급한 국제사회의 현안으로 떠올랐다. 윌슨의 <14개조평화 원칙>은 이같은 상황에서 제기되었다.

생업과 취업 속에서 고달픈 생활을 하고 있던 식민지 청년 이희승은 기미년 당시 23살의 팔팔한 청춘이었다. 성격상 의병이나 항일운동에 직접 나서지는 못하였으나 그동안 겪은 일과 주시경 선생의 책 등을 통해 심중에는 민족의식이 꿈틀대고 있었다. 아버지가 직장을 잃은 가족사도 아픔이었다.


그가 3.1만세운동에 뛰어들어 겪었던 사연을 직접 들어보자.

중앙을 졸업한 이듬해 경성직뉴회사의 서기로 있으면서 나는 3.1만세의 봇물 속에 뛰어들었다. 그날 나는 병목정 회사에서 평일처럼 근무를 하고 있었다. 오후 1시가 좀 지났을 때 중앙의 1년 후배인 노기정 군에게서 급하게 전화가 걸려왔다. "지금 탑골공원에서 만세운동이 터졌다."는 놀라운 뉴스였다. 며칠 전부터 모교 숙직실을 중심으로 심상찮은 움직임이 이는 낌새는 채고 있었지만 그렇게 빨리 닥칠 줄은 상상도 못했던 터였다. 

나는 급히 탑골공원으로 달려갔다. 수많은 학생들이 "대한 독립만세!"를 부르짖으며 공원 문으로 밀려나오고 있었다. 콧잔등이 시큰하면서 눈시울이 뜨거웠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들의 틈바구니에 끼여들어 정신없어 만세를 외쳐댔다. 때마침 고종의 인산(因山)을 구경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몰려들었던 흰옷 입은 군중들은 처음에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가 곧 대열에 흡수되어 삽시간에 거리는 만세 군중으로 가득 메워졌다. 

군중들 틈에 끼여 경기도청 앞에 이르렀을 때였다. 뜻하지 않은 사태에 당황한 일본인 지사가 허겁지겁 청사를 빠져나와 인력거를 타고 도망치려다 군중들에게 둘러싸였다. 

만세 군중들은 공약삼장(公約三章)에서의 비폭력 약속을 지키려는 듯 지사에게 폭력을 가하지는 않은 채, "조선이 독립됐으니 만세를 부르라"고 요구했다. 겁에 질린 일본인 지사는 인력거 안에서 모자를 벗어들더니 "반자이(만세)!"를 외치는 것이었다. 그것은 분명히 희극적 장면이었으나 그 모습을 지켜본 군중들은 정말 독립이나 된 것처럼 거리가 떠나갈 듯 환호성을 질렀다. (주석 1)


주석
1> <회고록>, 68~69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 딸깍발이 선비 이희승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이희승 #이희승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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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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