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아스 힉스의 지하철도 정거장2층 다락으로 향하는 숨겨진 비밀 계단으로 탈출 노예를 숨겨주었다. 지금은 스테이크하우스가 되어 일부 증축되었다. 올드제리코턴파이크 상에 있다.
장소영
지금은 스테이크 하우스로 바뀐 발렌타인 힉스의 집 앞에 섰다.
"이런 역사적인 집은 저 멀리 떨어진 곳 어디에서 역사 부지로 잘 보존되어 있을 줄 알았어요."
그러게나 말이다. 교회를 가고, 대형 한국 마켓에 장보러 가고, 맨해튼에 가기 위해 기차를 타러 다니던 길, 동서남북을 잇는 두 개의 고속도로와 세 개의 대로가 교차하는 작은 틈새에 낀 역사 부지라니. 딸아이의 말에 나도 마음이 복잡해 졌다. 역사를 좋아하는 딸은 나의 좋은 길동무이다. 길도 잘 찾고, 표지판도 잘 찾고, 운전하는 내 대신 사진도 곧잘 찍는다.
미국의 2월은 '흑인 역사의 달'이다. 우리가 늘 다니던 길목에도 '지하철도'로 사용되었던 집이 있으니 한번 찾아가보자는 내 제안에 조금 들떴던 모양인데, 손바닥만 한 작은 땅조차 온전히 보존되지 못하고 모텔(Inn)과 주유소, 현대식 빌딩이 땅을 잘라먹고 들어앉아 있으니 딸아이가 조금 실망한 듯했다.
발렌타인 힉스 일가가 살던 때의 제리코도 전통과 변화가 공존했다. 큰 길들의 교차점에 자리했던 장인의 집도 오래 전부터 여행객을 맞아 들이곤 했다. 장인은 나그네에게 돈을 받지 않고 그저 재워주고 먹여주었다고 한다. 따뜻하게 대접받은 이들은 감사의 마음을 담아 얼마간의 돈이라도 집안 구석에 슬며시 놓고 갔고, 장인은 이런 돈을 따로 모아 여러 곳에 신앙 공동체의 집(Meeting House)을 지어나갔다.
발렌타인 힉스의 친척 어르신이자 그의 장인, 퀘이커 공동체의 유명한 지도자 '엘리아스 힉스' 이야기다. 장인과 사위는 여러모로 한마음 한뜻이었다. 엘리아스 힉스의 집과 일가가 운영하던 밀러리지인(The Millerridge Inn), 사위인 발렌타인 힉스의 집이자 가족이 운영했던 메인 메이드 인(Maine Made Inn), 그들과 함께 노예제 폐지의 신념을 가졌던 제리코 퀘이커 공동체는 위험을 무릅쓰고 탈출 노예를 돕고, 노예 해방과 자립을 물심양면으로 돕는 롱아일랜드의 중요한 지하철도 마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