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 어플 (자료사진).
픽사베이
가장 크게는, 비교의 늪에서 해방되었다는 것. 여행 숙소를 검색하다 홈페이지를 인스타그램으로 링크해 둔 곳이 있어 PC로 들어가게 되었다. 오랜만에 접속한 김에 밀린 게시물들도 몇 개 보았다. 팔로우 해뒀던 좋아하는 작가님들이 올린 짧은 구절들과 소식이 영감이 되고 반가웠다. 좀 더 내리니, 내가 가고 싶어 했던 여행지에 다녀온 친구의 멋진 인생샷 사진이 보인다.
'아 부럽다... 나는 여기 언제 가지.'
게시글을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든 생각이다. 즉각적인 비교의 장. 심지어 일주일간 즐거운 휴가를 보내고 돌아온 직후인데도 그랬다. 인스타그램엔 분명 좋은 정보와 소식들도 많지만, 이런 식이라면 장기적으로 인스타를 사용하며 '기분 좋음'을 유지하기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의 나는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가장 행복한 순간의 단면과 나의 일상을 비교하며 불안했다. '나도 저기 가야 하는데, 이 정도는 먹고, 이 정도는 사야 하는데' 같은, 끝없는 남과의 비교의 늪에서 허우적댔다. 그러나 남들이 정한 기준에 맞추기보다는 나만의 궤적을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인스타샷' 없는 여행
지난 설 연휴에는 1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업로드하지 않는'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이전과 다르게 할 일이 하나 줄어들었다. 매일 밤 찍은 사진을 주고받고 잘 나온 사진을 엄선 후, 약간의 보정을 거쳐 위트 있는 문구와 함께 인생 샷을 올리는 과정이 생략됐기 때문이다. 예전엔 예쁜 사진을 남기기 위해 해야 했던 꾸밈 노동과 쇼핑 또한 줄었다.
이번 겨울, 일본 홋카이도 여행을 위해 샀던 물건은 꼭 필요했던 패딩 부츠와 아이젠, 털모자였다. 비행기와 호텔에서 넷플릭스와 유튜브를 보는 용도로 가지고 다녔던 아이패드는 과감히 빼버리고, 대신 일기장과 책 한 권을 챙겼다. 기록하고 싶은 건 일기장과 휴대폰 메모장에 짤막한 글로 남겼다.
물론 멋진 곳에서는 사진도 남겼다. 하지만 매일 밤이면 습관처럼 했던 사진 업로드 및 유튜브 탐험 대신, 하루를 정리하는 일기를 쓰고 소설 몇 페이지를 읽고 잠들었다. 여행에서 돌아와서는 기억나는 에피소드들 위주로 짤막한 여행기를 써보기도 했고. 남편도 여행 내내 짤막한 단상을 메모장에 기록했고 그것을 읽는 것 또한 색다른 교감이었다.
여행하는 내내 현재에 집중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했다. 미 예일대 중독 정신과 전문의 나종호 교수가 트위터 계정에 올린, "마음을 지금, 여기에 머물게 할 수 있는" '5-4-3-2-1' 요법을 실천해 보았다. 간단한 이 요법은 다음과 같다.
5 : 지금 주위에 보이는 다섯 가지 사물을 확인해 본다.
4 : 지금 주변에서 만질 수 있는 사물 네 가지를 찾아본다.
3 : 지금 이 순간 들리는 세 가지 소리를 명명해 본다.
2 : 지금 맡을 수 있는 냄새 두 가지를 확인해 본다.
1 : 지금 입안에서 느껴지는 맛 한 가지만 이름 지어본다.
그렇게 창밖을 계속 관찰하며 풍경을 살피는데... 세상에나, 일주일 간의 여행 동안 야생 여우 총 4마리를 봤다. 집 앞의 눈을 치우는 할머니를 보며 그녀의 하루 일과는 무얼까 상상해 보기도 했고.
눈이 부실 정도로 온통 하얀 설원에서 숨을 크게 들이마셨을 때 콧속에 성에가 끼는 느낌, 그리고 훅 끼쳐온 홋카이도의 겨울 냄새. 징기스칸 양고기 맛집에서 웨이팅 하며 집중해서 들었던 일본어 숫자, 차가운 겨울 공기와 따뜻한 노천탕이 만들어낸 수증기의 습기 같은 감각들이 기억 속에 자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