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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 삭제 뒤 두 달, 일상 전체가 바뀌었습니다

'지금 여기'에 온전히 집중해서 다녀온 여행... 당신에게 '도파민 해독'을 권합니다

등록 2024.03.03 17:49수정 2024.03.03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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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집중력을 되찾기 위해 인스타그램 앱을 삭제한 지 두 달이 지났다. 처음엔 조금 허전했지만, 그동안 쓸모없는 감정 소모를 많이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쾌락의 파도가 떠나간 빈 백사장에는 어떤 모래알들이 남았을까(관련 기사: 10년 쓴 인스타 앱 삭제하니 찾아온 놀라운 변화 https://omn.kr/270dw).


우선 쇼핑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인스타스토리와 게시물 사이에 정확한 알고리즘으로 뜨던 추천 광고를 보지 않게 되니, 혹해서 충동구매를 하는 횟수가 확연히 감소했다.

인플루언서들이 바르고 걸치고 먹는 것들이 눈앞에서 사라지니 마음에서도 멀어지게 되었다. 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인테리어 오브제, 물광 피부를 만들어주는 '정말 구하기 힘들지만 특별히 인친님들을 위해 추가 제작하기로 한' 마스크팩, 귀여운 도시락 메뉴를 담기 위한 더 귀여운 도시락통... 한 발 떨어져서 보니, 모두 알고리즘이 나에게 주입시킨 '가짜 위시리스트'였다.

두 번째로, 인정욕구를 다른 곳에서 좀 더 건강하게 풀게 되었다. 인스타 스토리를 올리면 즉각적으로 뾰로롱 나타나던 '하트'들은 사라졌지만, 대신 1년간 미루기만 해왔던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글쓰기에 좀 더 동기부여를 받고 싶어 한 달간 매일 글을 쓰는 글쓰기 챌린지도 참여하게 되었고, 취미로 배우고 있는 재즈 피아노는 몰입과 성취감 부분에서 아주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비교의 늪에서 걸어나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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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 어플 (자료사진). ⓒ 픽사베이

 
가장 크게는, 비교의 늪에서 해방되었다는 것. 여행 숙소를 검색하다 홈페이지를 인스타그램으로 링크해 둔 곳이 있어 PC로 들어가게 되었다. 오랜만에 접속한 김에 밀린 게시물들도 몇 개 보았다. 팔로우 해뒀던 좋아하는 작가님들이 올린 짧은 구절들과 소식이 영감이 되고 반가웠다. 좀 더 내리니, 내가 가고 싶어 했던 여행지에 다녀온 친구의 멋진 인생샷 사진이 보인다.

'아 부럽다... 나는 여기 언제 가지.'


게시글을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든 생각이다. 즉각적인 비교의 장. 심지어 일주일간 즐거운 휴가를 보내고 돌아온 직후인데도 그랬다. 인스타그램엔 분명 좋은 정보와 소식들도 많지만, 이런 식이라면 장기적으로 인스타를 사용하며 '기분 좋음'을 유지하기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의 나는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가장 행복한 순간의 단면과 나의 일상을 비교하며 불안했다. '나도 저기 가야 하는데, 이 정도는 먹고, 이 정도는 사야 하는데' 같은, 끝없는 남과의 비교의 늪에서 허우적댔다. 그러나 남들이 정한 기준에 맞추기보다는 나만의 궤적을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인스타샷' 없는 여행

지난 설 연휴에는 1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업로드하지 않는'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이전과 다르게 할 일이 하나 줄어들었다. 매일 밤 찍은 사진을 주고받고 잘 나온 사진을 엄선 후, 약간의 보정을 거쳐 위트 있는 문구와 함께 인생 샷을 올리는 과정이 생략됐기 때문이다. 예전엔 예쁜 사진을 남기기 위해 해야 했던 꾸밈 노동과 쇼핑 또한 줄었다.

이번 겨울, 일본 홋카이도 여행을 위해 샀던 물건은 꼭 필요했던 패딩 부츠와 아이젠, 털모자였다. 비행기와 호텔에서 넷플릭스와 유튜브를 보는 용도로 가지고 다녔던 아이패드는 과감히 빼버리고, 대신 일기장과 책 한 권을 챙겼다. 기록하고 싶은 건 일기장과 휴대폰 메모장에 짤막한 글로 남겼다.

물론 멋진 곳에서는 사진도 남겼다. 하지만 매일 밤이면 습관처럼 했던 사진 업로드 및 유튜브 탐험 대신, 하루를 정리하는 일기를 쓰고 소설 몇 페이지를 읽고 잠들었다. 여행에서 돌아와서는 기억나는 에피소드들 위주로 짤막한 여행기를 써보기도 했고. 남편도 여행 내내 짤막한 단상을 메모장에 기록했고 그것을 읽는 것 또한 색다른 교감이었다.

여행하는 내내 현재에 집중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했다. 미 예일대 중독 정신과 전문의 나종호 교수가 트위터 계정에 올린, "마음을 지금, 여기에 머물게 할 수 있는" '5-4-3-2-1' 요법을 실천해 보았다. 간단한 이 요법은 다음과 같다. 

5 : 지금 주위에 보이는 다섯 가지 사물을 확인해 본다.
4 : 지금 주변에서 만질 수 있는 사물 네 가지를 찾아본다.
3 : 지금 이 순간 들리는 세 가지 소리를 명명해 본다.
2 : 지금 맡을 수 있는 냄새 두 가지를 확인해 본다.
1 : 지금 입안에서 느껴지는 맛 한 가지만 이름 지어본다.


그렇게 창밖을 계속 관찰하며 풍경을 살피는데... 세상에나, 일주일 간의 여행 동안 야생 여우 총 4마리를 봤다. 집 앞의 눈을 치우는 할머니를 보며 그녀의 하루 일과는 무얼까 상상해 보기도 했고.

눈이 부실 정도로 온통 하얀 설원에서 숨을 크게 들이마셨을 때 콧속에 성에가 끼는 느낌, 그리고 훅 끼쳐온 홋카이도의 겨울 냄새. 징기스칸 양고기 맛집에서 웨이팅 하며 집중해서 들었던 일본어 숫자, 차가운 겨울 공기와 따뜻한 노천탕이 만들어낸 수증기의 습기 같은 감각들이 기억 속에 자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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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에 집중했던 여행 설원 위의 여우 발자국 ⓒ 이수현

 
명상하듯 시작되는 하루 

인스타그램을 삭제한다는 것은 내게 있어 단순히 앱 하나를 지우는 행위보다 더 큰 변화였다. 앱을 삭제하면서, '집중력 되찾기'라는 큰 틀 안에서 내가 바꿀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바꿔나갔기 때문이다. 하루의 시작과 끝이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영상으로 점철되었던 작년과는 달리, 조금 더 정돈된 기분으로 하루 일상을 시작하고 마무리할 수 있게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하는 동안의 정적이 좋아졌고 그 시간을 더 활용하기 위해 30분 일찍 일어나 '모닝페이지'를 쓰기 시작했다. 일어나자마자 떠오르는 생각 아무거나 공책에 그냥 쓰는 루틴인데, 이건 명상하는 것 같은 효과가 있어 아침을 건강한 자극으로 시작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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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난 뒤 '모닝페이지' 쓰기를 시작했다. 명상 효과를 준다. ⓒ 픽사베이

 
인스타그램을 삭제하면서 스마트폰 분리불안도 조금씩 줄어들었다. 네이처 지에 게재된 독일 파더보른대 연구진의 연구에 따르면, 스마트폰을 가까이에 두는 것만으로도 주의력이 떨어진다고 한다. 스마트폰을 책상에 놓아둔 학생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 둔 학생들보다 작업 속도가 떨어진다는 내용이었는데, 실제로 이 차이를 일상에서 느낄 수 있었다.

글을 쓰거나 책을 읽을 때, 근처에 스마트폰의 텅 빈 검은 화면이 시야에 들어오면 왠지 모르게 들여다보고 싶은 유혹이 일어났다. 폰을 뒤집어 놓는 것은 그것보다 미세하게 나았고, 아예 다른 방에 두거나 가방에 넣어둘 때 가장 집중이 잘 되었다.

물론 약 두 달의 경험만으로 과거 잃어버린 집중력을 100% 되찾았다고 말할 수는 없겠다. 쾌락의 파도는 이따금씩 세차게 밀려와서 모래사장을 헤집어놓고 가기도 했다. 유튜브 숏츠는 줄였지만 영상을 전부 끊기는 힘들었고, 인스타의 부재로 심심해진 손은 자꾸 다음 카페 인기글과 트위터를 들락날락하였으니까. 

긴장이 풀린 주말에는 종일 넷플릭스 시청으로만 꽉 채워 보낸 날도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하루하루 조금씩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파도가 휩쓸고 간 자리에 보잘것없는 모래알만 남은 줄 알았는데, 작고 반짝이는 조개와 멋진 모양의 소라 껍데기를 발견한 기분이다. 언젠가는 진주알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도파민 중독'이 최근의 주요 키워드인 것만큼이나 '도파민 해독'에도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책 <도둑맞은 집중력>의 저자는 1년에 6개월 정도는 SNS 없는 생활을 한다고 한다. 퇴근할 때 인스타그램을 삭제하고 출근하면 다시 앱을 깐다는 사람도 보았고, 요즘은 핸드폰을 제출해야 입장이 되는 북 카페도 있다는 뉴스도 읽었다. 

비교와 자극을 한 스푼씩 덜어내고, 아주 작은 변화라도 조금씩 만들어내고 싶다면, 당신에게도 도파민 디톡스를 권한다. 삼삼하지만 건강한 일상을 되찾기 위해 그 정도는 투자해 볼 만하다.
#도파민중독 #집중력되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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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기쁨을 더 자주 기록하고 싶은 취미부자 직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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