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구노동자종합지원센터에서 인터뷰하고 있는 최병현 조합원.
문세경
"최병현 조합원님은 어느 집회에 가도 볼 수 있는 분이에요."
최병현 조합원(63)을 인터뷰한다고 했더니 그를 아는 이가 말했다. 정년퇴직 후 인생 2막을 살려면 준비할 것이 많다. 제일 먼저 필요한 것은 남에게 손 안 벌리고 의식주를 해결하는 일이다. 살던 집이 있고 얼마간이라도 정기적으로 나오는 돈이 있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다. 정기적인 급여가 없어도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는 생활은 어떻게 가능할까.
최병현은 2009년 말에 퇴직했다. 어느새 퇴직한 지 15년 차다. 50세에 퇴직을 했으니 일반적인 퇴직 나이보다는 이른 셈이다. 이른 퇴직을 그는 '독립'이라고 말했다.
"아내에게 '나는 이제 집에 돈 못 갖다 준다, 대신에 돈 달라는 말도 안 하겠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독립'한 거죠. 남들은 퇴직하면 인생 2막 준비한다고 하는데, 인생 2막이 별거 있나요? 본인이 선택한 가치관을 나이 들어서도 바꾸지 않고 살면 돼요."
자신의 가치관을 바꾸지 않고 끝까지 갖고 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식민지 시대에는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하겠다는 일념만 있으면 됐다. 시대가 바뀌고 그때마다 새로운 문제가 생긴다. 문제를 바라보고 대응하는 방법은 각각 모색한다. 어느새 문제 해결의 본질은 사라지고 입신양명의 길을 택하는 간사함도 생긴다. 그렇기에 최병현 조합원의 말에는 뼈가 있었다.
최병현은 젊은 사람 못지않게 열정이 넘친다. 퇴직하고 인생 2막을 도모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할 텐데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집회에 가면 그가 있다. 어떤 일이든 사람이 모여야 가능하고 사람이 많이 모이면 모일수록 문제 해결에 힘을 받는다. 그렇기에 머릿수 보태는 일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다.
"어렸을 때 꿈은 '작가'였어요. 주변에서 많이 추켜세워서 제가 똑똑한 줄 알았어요. 친척이나 선배 중에는 대화하고 배울 수 있는 사람이 없었어요. 80년도에 대학교에 가서 의식화라고 일컫는 책을 읽고 내가 그동안 알고 있었던 것들이 다 거짓말이라는 걸 알았어요. 충격이 컸어요. 자존심이 파괴되었죠. 그 후부터는 세상을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 저의 주된 관심사였어요.
고2 때 어느 날, 헌책방에서 우연히 소설 하나를 발견했어요. 그 소설이 내 인생을 바꿨죠. 조세희 선생님이 쓴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에요. 책장을 몇 장 넘겨보니 느낌이 좀 색달랐어요. 소설 자체의 우화적 문체 때문이기도 했고, 그 책에서 처음 접한 '노동자'의 세계는 정말 생소한 이야기였어요. 저는 고등학생 때까지 이 사회에 대해서는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는 채로 아니, 문제가 있다는 것 자체를 모르고 살았어요. 그리고, 리영희 선생님의 <전환시대의 논리>를 읽으면서 사회에 눈을 떴어요. 새로운 세상을 봤죠. 그때부터 '혁명가'를 꿈꿨어요."
누구나 한 번쯤은 '혁명가'가를 꿈꾼다. 필자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든 이 사회를 좋은 사회로 만들고 싶었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틈이 벌어지지 않는 사회, 권력을 독점한 사람의 횡포가 없는 사회,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가 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약육강식 사회는 우리의 바람을 이루게 두지 않았다. 그렇다해도 좋은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지를 놓지 않고 실천 하면서 사는 것, 그것이 살아남은 자의 몫이 아닐까 한다.
대학 졸업 후 우연히 만난 후배의 한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