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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하면 무엇을 하며 살까... 그 고민의 끝

[갑이네 시골살이 1] 부산을 떠나 김천에 집을 마련하다

등록 2024.03.05 08:33수정 2024.05.27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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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4일. 오늘부터 아침 일찍 집을 나서지 않아도 된다. 종소리에 맞춰 교실에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 주말의 안락함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이제 매일이 주말이다. 틀에 짜인 시간이 아닌 스스로 시간을 만들어 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 36년 동안 배우고 가르치는 일에서 물러났다.


퇴임하면 시간을 어떻게 보내지. 이 생각을 2년 전부터 해왔다. 정년 퇴임을 한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처음 2년 동안은 너무 좋지만, 그 이후 시간 보내기가 힘들다고 한다. 시간을 보내기 위한 삶이 아니라 시간을 즐기는 삶을 살고 싶다. '무엇을 하면 즐기는 삶을 살 수 있을까. 무엇을 하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를 퇴임 2년을 앞두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자연을 느낄 때 가장 행복했다
 

퇴임 선배들이 권하는 것은 무언가를 배워두라는 것이다. 나는 배우고 가르치는 일이 버거워 흔히 말하는 잡기가 하나도 없다. 골프를 배우라는 이야기, 목공을 배우라는 이야기가 많았다. 조금 끌리기는 했지만 배우면서 받을 스트레스, 배우고 난 뒤 즐길 수 있는 시간 등을 고려하여 새로 배우는 것은 그만두었다. 그러면 무엇을 하면서 살지. 그때 공자의 <논어> 한 구절이 떠올랐다.

'富而可求也 雖執鞭之士 吾亦爲之. 如不可求 從吾所好'
(부를 구할 수 있다면 비록 채찍을 들고 길을 터는 자라도 나는 또한 할 것이다. 만일 부를 구할 수 없다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


나는 지금까지 나름 열심히 그리고 성실히 살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부는 내 곁에 머물지 않았다. 부는 나의 관심 밖에 있었음이, 아니 더 정확하게 내 능력으로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시간이 좋았지만 이제 그 일은 할 수 없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지? 무엇을 할 때 행복하였지? 무엇을 하면 잘할 수 있을까?


학교생활을 하면서 틈이 날 때 여행을 많이 했다. 역사, 문화, 음식, 그리고 자연을 찾는 여행 가운데 나는 자연을 느낄 때 가장 행복했다. 특히 지리산으로 갈 때 시천면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행복을 느꼈다. 바람의 상쾌함, 맑은 하늘이 그냥 좋았다.

도시보다 시골이 나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자연의 변화나 모습을 오감으로 느끼며 살고 싶었다. 자연의 변화나 모습에서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고 싶었다. 틈나는 대로 유튜브를 보며 이곳저곳을 발품을 팔고 다니며 살 곳을 찾아 헤맸다. 내가 내세운 조건은 다음과 같았다.


∙ 공기와 물이 좋은 곳을 찾았다. 송전탑, 축사나 우사 그리고 과수원이 있는 곳은 피하고 싶었다. 그리고 깨끗한 물을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 햇빛을 충분히 받을 수 있는 집에 살고 싶었다. 그래서 햇빛을 충분히 받을 수 있는 남향인 집을 찾았다. 햇빛은 사람의 정신과 육체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다. 햇빛이 주는 따뜻함을 마음껏 누려보고 싶었다.
∙ 주위에 산책길이 있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해온 건강관리 중 가장 중요한 것이 걷기였다. 걸으면서 건강은 물론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길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마을이 제대로 형성된 집(최소 10가구)을 찾았다. 인구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는 이 시점에서 폐가가 늘어나면 앞으로 살기가 점점 힘들어진다고 생각했다.
∙ 잔고장, 누수, 벌레와 짐승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없는 집을 찾았다. 나는 아직 못 하나 제대로 박아 본 적이 없다. 차차 배우고 익혀나가겠지만 당분간은 집수리로 인한 스트레스는 피하고 싶었다.
∙ 덧붙여 먼 곳에서 벗과 지인이 찾아왔을 때 자연의 풍광을 함께 맛보고, 주위에 대접할 수 있는 맛집 하나 정도 있으면 좋겠다.

이렇게 하여 부산에서 자동차로 3시간이나 떨어졌고, 아무런 인연도 없는 낯선 곳이지만, 퇴임 1년 6개월 앞두고 이곳 김천에 머물기로 했다.
 
우리집 봄 2023년 4월 우리집의 모습
우리집 봄2023년 4월 우리집의 모습정호갑
 
그런데 한 가지 놓친 것이 있다. 고속도로 또는 기차역에서 집까지 시간이 50여 분 걸린다는 것이다. 찾아오는 사람을 힘들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터널 공사 중이고 철도도 공사 중이라 하니 위로가 된다.

새로운 삶, 시골 살이

사람이나 책을 통해 배우고 그것을 정리하는 일을 나는 그동안 즐겨왔다. 배우고 느낀 것을 가끔 정리하여 글도 썼다. 그동안 내가 해왔던 것을 이어가면서 조금씩 확대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먼저 거듭 읽고 싶은 책을 정리했다.

공자의 <논어>, 노자의 <도덕경>,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사마천의 <사기열전>,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려증동의 <배달글자>, 팀마샬의 <지리의 힘>, 강신주의 <철학이 필요한 시간>, 김병준 외 <10권의 책으로 노무현을 읽다>, 빅터 위고의 <레미제라블>,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이다. 이를 바탕으로 그동안 시간 핑계로 미루어 두었던 음악과 미술에도 관심을 가지기로 했다. 그리고 새로운 서적을 일 년 한 권씩 추가하기로 했다.

1년 6개월 동안 주말에 드나들면서 정원을 만들고 가꾸어 보았다. 어느 날 봉숭아가 바람에 휜 것을 보고 그것을 지지대로 지탱하고 잘 버텨주기를 바라는 내 모습에 내가 놀란 적이 있다. 그리고 하루 뒤 잘 버텨낸 것을 보고 너무 흐뭇했다. 눈을 뚫고 나오는 분홍상사화의 새싹을 보고 강한 생명력에 감탄을 자아낸 적도 있다.
 
분홍상사화 새싹 눈 속에서 분홍상사화가 새싹을 올리고 있습니다.
분홍상사화 새싹눈 속에서 분홍상사화가 새싹을 올리고 있습니다.정호갑
 
가을에 심었던 구근들이 새싹이 나오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하루가 멀다고 지켜보고 있다. 심었던 목련이 죽어가고 있음에, 남천나무가 월동을 이기지 못하고 냉해를 입은 모습에 나의 무지와 무능을 심하게 탓한다.

정원은 나를 마당으로 불러내는 힘을 가지고 있다. 정원이 주는 설렘과 기쁨은 나라는 사람을 착한 사람으로 만든다. 설렘과 기쁨을 가지고 할 일이 하나 더 생겼다. 힘들어 지칠 수도 있겠지만 설레며 기쁜 마음으로 정원을 가꾸어 갈 생각이다.

눈을 제대로 구경하지 못한 부산 촌놈이 이곳에 와 아름다운 겨울 풍광을 실컷 보았다. 행복했다. 눈 치우는 힘겨움도 있지만, 고개를 들어 마을 주위를 둘러보면 그 피곤함이 싹 가신다. 역시 시골살이를 잘 선택했다.

5일장이 열리면 사람 사는 모습도 엿볼 생각이다. 이렇게 시골살이를 꿈꾸며 시골살이를 시작한다.
 
우리집 겨울 우리집 겨울 모습
우리집 겨울우리집 겨울 모습정호갑
 
우리집 뒷길 우리집 뒷길의 모습
우리집 뒷길우리집 뒷길의 모습정호갑
 
우리집 겨울 남쪽 우리집 겨울 남쪽 모습
우리집 겨울 남쪽우리집 겨울 남쪽 모습정호갑
#퇴임 #시골살이 #전원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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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행복에서 물러나 시골 살이하면서 자연에서 느끼고 배우며 그리고 깨닫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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