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풀책으로 만나는 어르신오늘도 어르신들에게 새로운 단어를 배운다
최은영(미드저니)
나는 동동 구르무 시절엔 버려지는 빈 통이 없었겠다고 말했다. 아주 당연하다는 듯 어르신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일회용 그릇도 버리기 아까워서 씻어쓰는데, 애들은 궁상이랴."
"어머, 우리나라 일회용이 얼마나 짱짱한데요. 궁상 아니죠!"
내 대답에 모두 까르르 웃음이 터진다. 교실 공기가 동글동글하게 다정해진다.
다른 선진국이 200년에 걸쳐 이뤄낸 일을 우리는 50년만에 따라잡았다. 그러다보니 50살 차이가 가끔은 체감상 200살 차이로 느껴지기도 한다. 다른 나라였으면 만날 수도 없는 사람들이 동시대를 살고 있는 독특한 풍경이다. 이 풍경의 한쪽은 세대 갈등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렇게 작은 일로 웃다보면 200년이 별건가 싶어진다. 일회용 통을 씻어 쓰는 마음이 이름까지 귀여운 동동구르무에서 왔다는 걸 알면, 그걸 궁상이라고 타박할 수 있을까. 타박하기 전에 서로의 이야기에 잠깐만 귀 기울인다면 예상밖의 지점에서 이렇게 웃음이 터진다. 그 웃음이 만드는 말랑한 다정함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은 없다.
내풀책으로 어르신을 만나면서 나는 종종 원래의 나보다 더 오래된 내가 되곤 한다. 오래된 나는 좀 느리지만, 그만큼 여유있다. 말 '하기'보다 말 '듣기'를 더 잘한다. 오래됨이 주는 충만함이 나를 가벼워지게 한다는 것도 배운다. 어르신들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결코 모를 배움이다.
어르신의 원고를 정리하고 복지관을 나섰다. 겨울을 쫓아내는 듯한 따뜻한 햇빛이 내 정수리에 톡톡 떨어진다. 다음 시간에도 이렇게 따뜻할 수 있기를, 나보다 200살 많은 사람들과 또 깔깔대며 이야기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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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회용기 재활용하는 어르신, '동동구르무'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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