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센터(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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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부터 산전수전 다 겪어본 나는 모르면 배운다는 각오로 간부를 하긴 했지만 처음엔 조합가입서 한 장 출력하는 것도 어려웠다. 회의 자료를 만들고 노동조합 활동 소식지를 만드는 일은 엄두도 안 났다. 20~30대 활동가들에게 물어가며 하나씩 익혀나갔다. 마음은 매일 현장으로 향했지만, 막상 노동조합 활동은 회의와 실무의 연속이었다.
사무실로 출근해 현장에 배포할 소식지를 만들어 인쇄하고, 피켓과 현수막을 만들고 새로 들어오는 가입서를 정리하면 하루가 다 갔지만, 그 사이에 언론사 인터뷰도 하고 현장에서 상담이 들어오면 먼 길도 마다 않고 만나러 갔다. 조금씩이지만 조합원도 늘었다. 교섭요청 공문을 보내던 날이 기억난다. 드디어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회사에 직접 전달하고 노동환경을 바꿔나갈 수 있다는 희망이 보였다.
노조의 요구로 고용노동부가 폭염시 휴게시간 가이드라인을 개정하기도 하였다. 노동환경 개선과 조합활동 인정을 요구하며 회사 로비 찬 바닥에서도 자보고 290일간 천막농성을 하기도 했다. 여전히 회사는 노동조합 자체를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하루를 일해도 안전한 일터를 요구하며 2년 동안 괴물 같은 회사와 싸워왔다.
코로나19피해자모임이 없었다면, 노동조합이 없었다면 물류센터는 여전히 위험하고 열악한 일터로 남아있었을 것이다. 변화는 용기와 끈기로 이끌어낸다는 사실을 노동조합을 하며 배웠다. 시작은 단순했다. 사람보다 돈이 중요한 회사에 "이래선 안 된다고, 상품과 서비스 뒤에 사람이 있다고, 노동자도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솔직히 말하면 노동조합에서 2년 6개월을 활동하면서 좋은 점은 하나도 없었다. 회사는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고수하며 노조의 요구를 교섭에서 수용하지 않고 현장에 적용시키면서 노동조합을 무력화시켰다. 조합원은 늘지 않는데 노동조합 간부를 맡았던 사람들은 줄줄이 해고 되어 싸우고 있어 녹록지 않았다. 전국에 있는 물류센터를 소수의 간부가 챙겨야 하는 상황에서 상급단체의 지원은 늘 아쉬웠다. 주말도 없고 친구를 만날 여유도 없었다.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른다는 불안과 긴장으로 지냈다.
나는 얼마 전 사무국장 자리를 내려놓았다. 잠시 활동가로서 지치고 힘들었던 나를 돌아보며 앞으로의 활동을 고민하고 있다. 앞으로도 전국에 있는 물류센터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사람이 일하기 좋은 물류센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 꿈만 거창해졌다. 말 그대로 '계란으로 바위 치기'겠지만, 하다보면 계란으로 바위를 덮어버리거나 껍질을 깨고 나온 병아리가 닭이 되어 바위를 쪼아 없앨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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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알바'라더니... 여기, 사람이 일하는 곳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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