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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알바'라더니... 여기, 사람이 일하는 곳 맞아?

[3.8에 들려주고 싶은 나, 여성, 노동자 이야기①-2] 인생 2회차에도 쉽지 않은 노동조합

등록 2024.03.06 18:36수정 2024.03.14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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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가을, 공공운수노조 여성노동자들이 5회에 걸쳐 여성노동역사와 글쓰기를 배웠다. ‘여성노동자’로서의 나의 삶을 돌아보고 기록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글을 쓰다 눈물이 났고, 다른 이의 글에 위로 받기도 했다. 서로 하는 일도 다르고 세대도 달랐지만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이었다. 3.8 세계여성의날을 앞두고 그동안 기록한 우리들의 이야기를 시작해본다.[기자말]
- 1편 : 우연히 본 대형마트 광고... 마흔, 인생이 바뀌었다

출퇴근시간에 센터로 들어오는 셔틀버스 행렬은 끝이 없었고 버스마다 40~50명의 사람들이 가득 타고 있었다. 적게는 2000명 많게는 4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주간, 야간, 심야조로 나뉘어 평균 8~9시간을 일하며 휴식도 취하고 밥도 먹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곳에는 에어컨도 히터도 없었다. 여름에는 소금꽃을 피우고 겨울에는 개인이 가져온 핫팩에 의존하며 벌벌 떨어야 했다.

휴게실이 건물 전체에 한 두개가 있는데, 그마저도 좁아서 쉴 곳이 없는 사람들은 바닥에 앉아 쉬었다. 물품 상하차가 수시로 이루어지는 물류센터 입구는 실내라고 말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이렇게 큰 회사가 냉난방 설비할 돈이 그렇게 아깝나' 욕이 나왔다. 대형 선풍기 좀 갖다달라고 사정했지만 들어주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법에서는 수천 명이 일하고 있는 물류센터도 '물류창고'로 보고 있었기 때문에, 휴게실이나 냉난방설비 설치의무가 없었다.

이곳을 찾은 이유는 다양했지만 대부분 직장보다는 아르바이트로 여기는 사람이 많았다. '나는 곧 그만둘 사람이니까' '힘들어도 잠깐만 참으면 되니까' 건의사항이 있어도 말하지 않는 사람이 많았다. 관리자에게 대들었다가 다음날부터 보이지 않는 사람도 있었고, 나아지지 않는 근무환경에 '차라리 자유로운 게 낫다'며 계약직을 그만두고 일용직으로 몇 년씩 일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현장운영이 체계적이지 않은 만큼 안전사고도 적지 않았고 안전수칙도 잘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계약직이나 일용직이 산재보상을 받는 경우는 드물었다.

식사시간을 제외하면 하루에 꼬박 8시간을 서서 일했다. 어떤 날은 4만보 이상 걸었던 날도 있었다. 입사 6개월 무렵 관리자의 추천으로 새로 생긴 신선센터로 전배를 가게 되었다. 신선센터는 냉장과 냉동상품 위주로 품질관리과 (QC) 지정을 받아서 입고되는 상품의 품질관리, 유통기한 등을 철저히 관리하면서 배송 공정을 해야 했다.

까다로워진 공정만큼 업무에 대한 부담은 커졌지만 내가 일하는 회사가 좀 더 나은 소비자중심 기업운영을 하는데 기여한다는 마음으로 일했다. 회사도 처음 하는 신선센터 운영에 서툰 면도 있었지만,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하며 조금씩 안정적으로 변하게 되었다. 우리의 건의로 냉동⋅냉장고에서 일하는 시간을 제한하고, 출입 후에 휴식시간을 필수로 제공하였다.

재난은 평등하지 않다


2020년 초, 코로나19 팬데믹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온라인배송 이용자는 급속도로 늘었다. 그 만큼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업무강도는 세졌다. 어느새 우리는 기계처럼 일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코로나19 때문에 해고당했다. 정확히는 코로나19 피해자들과 함께 싸우다 해고당했다. 그 후 3년째 해고무효 소송을 하고 있는 중이다.

2020년 6월 24일 내가 일하던 물류센터에서 일하던 노동자와 가족 등 152명이 코로나19에 집단감염 되었다. 사상초유의 직장내 집단감염이었다. 노동자들은 밀접접촉에 대한 불안감을 호소하며 회사에 정확한 정보를 요구하며 방역지침을 내려줄 것을 요구하였지만 회사는 '아직 확인중이니 계속 일하라'고만 했다. 결국 경기도지사가 현장폐쇄 명령을 하고 나서야 현장은 기계를 멈췄다.


매일 새로운 사람들이 드나드는 물류센터는 감염병 예방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출퇴근을 위한 통근버스는 만석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불가능하였고, 업무용품은 공용으로 지급되었다. 당시 초기에 확진자의 동선을 제대로 파악하고 우리에게 안내를 했더라면, 확진자 발생을 인지한 즉시 사업장 폐쇄를 하고 방역지침을 지켰더라면 150명이 넘는 피해자가 발생하였을까?

152명 중에는 응급병실에서 치료를 받거나 후유증으로 일상생활을 할 수 없는 사람도 있었다. 아직도 혼수상태로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피해자들은 울부짖는데 회사는 묵묵부답이었다. 나는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고, 나와 피해자들은 우리가 겪은 피해를 사회에 알리고 현장개선과 재발방지를 요구하기로 했다.

다행히 노동⋅시민사회단체의 도움과 언론의 보도로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전해졌다. 회사는 여론에 못 이겨 방역의 책임을 인정했다. 그리고 피해자모임의 요구대로 일용직을 포함한 피해자들에게 격리기간동안 급여를 지급하였고 계약직들은 전원 계약연장을 하였다. 그러나 코로나19피해자모임 대표로 활동한 A와 나는 제외였다. 당시 산재로 인한 휴직 중이던 두 사람은 코로나19 피해자가 아니라는 이유였다.

코로나19를 계기로 물류센터의 노동환경과 근무실태가 드러났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의 관심이 줄어들고 피해자들의 목소리도 점점 묻혔다. "그거 다 해결된거 아니에요? 이제 뉴스에 안 나오던데." 다른 센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미 해결된 일처럼 여겨졌다. '우리가 보상만 받자고 시작한 일이 아닌데, 다른 센터에서도 비슷한 일이 생기면 어떻게 대응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공공운수노조에서 물류센터 노동조합을 준비했다. 노동조합을 하면 불이익을 당할 거라는 두려움에도 사람들이 하나 둘 모였다. 2021년 6월 6일 전국물류센터지부가 생겼다. 현장을 바꾸겠다는 일념으로 나는 노조간부 인생 2회 차를 살게 되었다.

인생 2회 차도 쉽지 않은 노동조합
 
 물류센터(자료사진)
물류센터(자료사진)elements.envato
 
일찍부터 산전수전 다 겪어본 나는 모르면 배운다는 각오로 간부를 하긴 했지만 처음엔 조합가입서 한 장 출력하는 것도 어려웠다. 회의 자료를 만들고 노동조합 활동 소식지를 만드는 일은 엄두도 안 났다. 20~30대 활동가들에게 물어가며 하나씩 익혀나갔다. 마음은 매일 현장으로 향했지만, 막상 노동조합 활동은 회의와 실무의 연속이었다.

사무실로 출근해 현장에 배포할 소식지를 만들어 인쇄하고, 피켓과 현수막을 만들고 새로 들어오는 가입서를 정리하면 하루가 다 갔지만, 그 사이에 언론사 인터뷰도 하고 현장에서 상담이 들어오면 먼 길도 마다 않고 만나러 갔다. 조금씩이지만 조합원도 늘었다. 교섭요청 공문을 보내던 날이 기억난다. 드디어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회사에 직접 전달하고 노동환경을 바꿔나갈 수 있다는 희망이 보였다.

노조의 요구로 고용노동부가 폭염시 휴게시간 가이드라인을 개정하기도 하였다. 노동환경 개선과 조합활동 인정을 요구하며 회사 로비 찬 바닥에서도 자보고 290일간 천막농성을 하기도 했다. 여전히 회사는 노동조합 자체를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하루를 일해도 안전한 일터를 요구하며 2년 동안 괴물 같은 회사와 싸워왔다.

코로나19피해자모임이 없었다면, 노동조합이 없었다면 물류센터는 여전히 위험하고 열악한 일터로 남아있었을 것이다. 변화는 용기와 끈기로 이끌어낸다는 사실을 노동조합을 하며 배웠다. 시작은 단순했다. 사람보다 돈이 중요한 회사에 "이래선 안 된다고, 상품과 서비스 뒤에 사람이 있다고, 노동자도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솔직히 말하면 노동조합에서 2년 6개월을 활동하면서 좋은 점은 하나도 없었다. 회사는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고수하며 노조의 요구를 교섭에서 수용하지 않고 현장에 적용시키면서 노동조합을 무력화시켰다. 조합원은 늘지 않는데 노동조합 간부를 맡았던 사람들은 줄줄이 해고 되어 싸우고 있어 녹록지 않았다. 전국에 있는 물류센터를 소수의 간부가 챙겨야 하는 상황에서 상급단체의 지원은 늘 아쉬웠다. 주말도 없고 친구를 만날 여유도 없었다.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른다는 불안과 긴장으로 지냈다.

나는 얼마 전 사무국장 자리를 내려놓았다. 잠시 활동가로서 지치고 힘들었던 나를 돌아보며 앞으로의 활동을 고민하고 있다. 앞으로도 전국에 있는 물류센터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사람이 일하기 좋은 물류센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 꿈만 거창해졌다. 말 그대로 '계란으로 바위 치기'겠지만, 하다보면 계란으로 바위를 덮어버리거나 껍질을 깨고 나온 병아리가 닭이 되어 바위를 쪼아 없앨지 모른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강민정은 전 공공운수노조 전국물류센터지부 사무국장입니다.
#노동 #물류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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