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기에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여자들이 공짜로 혹은 매우 적은 임금을 받고 하던 돌봄노동이라는 것이 '사회가 돌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는 걸 새롭게 깨달은 듯 필수노동이라는 이름표를 돌봄노동에 붙여주었다. 그러나...
픽사베이
대학 졸업이 얼마 남지 않은 시기에 열심히 대외활동을 하고 자격증을 준비하면서 취업준비를 하는 친구들과 달리 나는 대체로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지금과 다른 어떤 미래를 위해 노력할 동기가 별로 없었다. 월세의 두 배 정도 되는 돈을 주는 빵집 알바를 하며 반지하 원룸에서 사는 생활에 만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안정적인 미래에 대한 욕구도 딱히 없었다. 그런 나로 하여금 가끔이라도 의욕을 느끼고 다른 미래에 대한 욕심을 내도록 했던 것은 학내 여성주의 단체였다.
그곳은 대학이라는 사회의 성평등을 위한 활동을 하는 단체였고 나는 3년 반 동안 활동했다. 마지막 해의 경우에는 코로나 이후 <멀어져야 하는 시기의 연결>이라는 슬로건으로 한 해 활동을 기획했다. 돌봄이 중심이 되는 체제가 무엇이고, 왜 필요한지, 우리 안의 합의를 만드는 세미나도 진행했다. 요양서비스노조, 보건의료노조에 요청하여 간병노동, 간호노동 관련 간담회를 주최하기도 했다. 여러 집회와 시위에 연대하고 교내 성폭력 사건 처리와 젠더교육 기획, 재생산권 관련 사업을 진행했다. 단체의 인원이 늘면서 조직체계와 운영방식을 정비하기도 했다. 이 활동은 내게 무언가를 지속적으로 고민할 수 있도록 하는 힘을 줬다.
당시 나의 화두는 성과 돌봄이었다. 성폭력이 여성주의 운동의 주요 의제가 되어온 상황과 성폭력 상담을 하면서 마주칠 수밖에 없는 난제들은 성과 권력의 문제를 계속 생각할 수 있게 했다. '모욕을 줄 수 있는 권력은 어떻게 누군가의 손에 더 쉽게 들어갈 수 있는지, 다른 사람을 눈치 보게 하고 수치스럽게 하는 권위의 자리는 어째서 더 쉽게 누군가의 자리가 되는지' 그것이 특히 성과 어떻게 관련되는지에 대한 생각은 한번 시작되면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이상한 결론이나 성공적인 회피에 다다르지 않는 이상 저절로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권위의 안팎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서로를 지긋지긋하게 만드는 돌봄 관계로 엮여있다는 점은 일상의 돌봄 그리고 제도화된 돌봄이 어떤 양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이에 대한 현재의 인식은 어떠한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끝없이 이어지게 만들었다.
나는 대학 여성주의 활동을 통해 했던 것을 계속해보고 싶어 대학원을 지원했다. 나는 성폭력을 고발하는 말이 사회가 요구하는 정당성을 깎아 먹는 식으로 밖에는 말해질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 자본의 권리와 나의 것을 동일시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상황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의 병을 돌보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나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아니라 다르게 세상이 생겨먹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만들고 싶었다.
달라져야 하는 상황이 무엇인지 더 잘 읽고 싶어서, 다른 사람들의 다르게 하고 싶은 마음을 더 잘 읽고 싶어서 문학전공에 지원했다. 대학원을 준비할 때에는 내가 뭔가 세상을 다르게 하는 데 기여할 만한 것을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대학원에서 하는 일은 그와 간단하게 연결되지는 않았다. 그 연결고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지만 나는 성실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모두에게 쓸모없다고 여겨져도 할 수 있어야 하는 게 노동
지금은 대학원을 다니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9시까지 도서관으로 가서 운 좋게 얻은 근로장학생 근무를 시작한다. 도서 대출이나 서고 정리를 할 때 말고는 대체로 책상에 앉아 자기 할 일을 할 수 있다. 한 달에 80시간 정도 근무한다. 내가 대학원생으로서 하는 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장학금을 받기 위해 학교에서 마련해놓은 일을 하기, 내가 전공하는 학문의 규칙을 습득하려 노력하기, 자료를 읽고 이해하고 기억하기, 그것에 기반하여 자료가 무엇을 어떻게 보고 쓰고 있는지 판단을 내리기, 판단 내려진 내용을 머리속에서 계속 굴려서 무언가 다른 것으로 만들기, 그것을 글로 바꾸기. 그 과정에서 내가 규칙을 지키고 있는지 눈치보기.
나는 누군가 나에게 "대학원생으로서 하는 일이 노동이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연구노동이 생산적이고 유용하기 때문에, 그리고 사회에 필수적인 노동이기 때문에 노동이라고 주장하고 싶다는 말은 아니다. 비생산적이이거나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혹은 알려지지 않아 어떤 식으로도 여겨지지 못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떠오른다.
코로나 시기에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여자들이 공짜로 혹은 매우 적은 임금을 받고 하던 돌봄노동이라는 것이 '사회가 돌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는 걸 새롭게 깨달은 듯 필수노동이라는 이름표를 돌봄노동에 붙여주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어떤 일이 노동인지 아닌지가 사람들이 그것을 필수적이고 쓸모 있다고 인정해주는지 여부에 달려있어서는 안 된다. 나는 지금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일들도 노동으로 인정받아야 된다는 얘기보다 지금 무엇이 노동이고 무엇이 아닌지 분류하는 기준, 분류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싫다는 얘기를 하고 싶다.
어떤 사람들은 다들 힘들지만 꾹 참고 하는 일도 하지 않고 있으면서 힘들어 한다. 예를 들어 돈을 버는 일, 자신의 생계수단을 더 안정적인 것으로, 혹은 경쟁력 있는 것으로 만드는데 기여할 일, 상사와의 약속을 지키는 일, 업무의 마감 기한을 지키는 일, 세상이 자신이 원하는 미래에 가깝게 되도록 힘쓰는 일 같은 것, 노동으로 인정되는 일 말이다. 그런 것도 하지 않으면서 힘들다고 누워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힘을 어디에 들이고 있는 걸까? 질문을 다르게 할 수도 있겠다.
왜 우리는 그들이 힘을 들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걸까? 그것이 무엇인지가 우리가 알 수 있는 '지식'에 속하지 않아서 그럴 수 있다. 그것은 노동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사적이라서 그럴 수도 있다. 그것은 노동이라고 하기에는 '가치'라고 불릴 수 있는 그 무엇도 생산해내지 못해서 그럴 수도 있다. 나는 그것, 보이지 않고 말해지지 않는 그것을 읽고 싶다. 그리고 나의 깨어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들이는 슬퍼하고 부끄러워 하는 일은 이를 위한 나의 노동의 일부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는 다양한 업종의 노동자가 함께 하는 민주노총 산하 최대의 산별노조입니다. 공공부문, 운수부문, 사회서비스 등 부문의 모든 노동자가 함께 하는 노동조합입니다.정규직과 비정규직, 특수고용노동자 뿐 아니라 실업자·퇴직자·해고자 및 조합 임용자, 예비 노동자도 가입할 수 있습니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