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우유 배달. 아이들이 잠든 시간을 활용해서 단돈 몇 십 만 원이라도 버는 게 어디냐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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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이다. 살림살이는 어렵고 세 아이를 키우면서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때 떠오른 게 새벽 우유 배달이었다. 아이들이 잠든 시간을 활용해서 단돈 몇 십 만 원이라도 버는 게 어디냐 싶었다. 결심하기까지 고민과 망설임도 있었지만, 기쁜 마음도 작용했다.
'일부러 시간 내서 운동도 하는데 덤으로 돈도 벌면 얼마나 좋아.' 서러워질 법한 마음을 애써 포장했다. 배달을 하면서 음악을 듣거나 영어 공부를 하는 것도 딱이다 싶다. 우유를 보냉백에 넣으면서는 그 가정을 축복해야겠다고 마음먹으니 뭔가 좋은 일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에 설레기도 했다. 난생 처음 해보는 우유 배달을 앞두고 나는 이런 상상을 했다.
이어폰으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경쾌한 발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간다. '축복합니다'라고 마음속으로 기도하며 우유를 넣는다. 일을 마치고 나니 저 멀리 태양이 떠오른다. 누구보다 아침을 일찍 맞이한다는 생각에 흐르는 땀방울을 닦으며 뿌듯해한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더욱 활기찬 모습으로 엄마로서의 하루를 시작한다. 오! 완벽해!
그것이 얼토당토않은 핑크빛 환상이라는 것을 대차게 깨닫는 데는 단 몇 분이면 충분했다.
몰랐다, 엘리베이터에 적힌 숫자의 의미
새벽 세 시가 넘은 시간, 아파트 주차장은 그야말로 무법 천지였다. 여기저기 이중주차를 해놓은 차들 때문에 조심하다보니 아예 속도를 낼 수가 없었다. 게다가 내가 담당한 아파트는 어찌된 게 1-2호 라인 옆에 3-4호 라인이 있지 않았다. 당연히 옆으로 돌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네?! 미로에 갇혀 버린 느낌이 들면서 그때부터 진땀이 나고 넋을 잃을 지경이 되었다.
출입구를 찾아 이리 뛰고 저리 뛰다 엘리베이터에 타고 나면 혼이 나갔다. 잠시 정신을 놓치고 나면 더 큰 일이 닥쳤다. 모두가 똑같이 생긴 엘리베이터에서 '나는 지금 몇 동, 몇 호 라인에 와있는 거지?'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것이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나면 '내가 가야 할 902호는 오른쪽인가, 왼쪽인가' 말 그대로 우왕좌왕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그런 미련한 반복을 몇 번이나 하고난 후에야 엘리베이터에 적힌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