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둑한 배변 봉투. 우리 애가 다 싼 거 아니에요.
김지성
더불어 매일 하루 두 번, 이름 모를 개똥 수거의 일과도 시작되었다. 개의 후각보다 사람의 시각이 먼저 사방을 스캔하고 멀리서도 개똥과 솔방울을 단번에 구별해 낸다. 목표물 발견시, 내달리려는 반려견의 앞발을 재빨리 목줄로 당겨세워 흥분부터 가라앉힌 다음, 천천히 몸을 수구려 배변봉투에 그것들을 차례대로 담아넣는다.
처음엔 한 덩어리라도 챙기려 사정없이 옆에서 머리를 들이밀더니, 이젠 입에 넣다 걸리면 몰래 군것질하다가 걸린 아이마냥 머쓱해진 혀를 부지런히 밀어서 뱉어낸다. 어느 순간부터는 탐지견이라도 된 듯, 개똥 앞에 딱 멈추고서 수거 완료될 때까지 부동자세로 기다리고 있다. 반복되는 보호자의 행동에 '우리 엄마는 개똥 치우는 사람'으로 인식된 것이다.
가끔은 혼자서 프로파일러가 되어보기도 한다. 같은 시각, 같은 장소, 레몬 빛깔의 같은 굵기, 필히 상습범이다. '강아지 배설물 미수거시 과태료 부과'란 현수막 밑에 대범하게 범행을 저질러놓고, 치워 놓으면 보란듯이 매번 흔적을 남겨놓는다. 그 탓에 개똥을 밟아버려 운동화 밑창도 여러 번 닦아냈다.
잠복을 해볼까, 관리사무소에 찾아가 CCTV 열람을 신청할까, 동영상을 찍어 구청에 민원을 넣어볼까, 별의별 궁리를 다 해본다. 그러나 정작 몸이 게을러서, 목줄 잡은 손과 똥 치우는 손 외에 동영상 찍을 손이 부족해서, 준법정신 또한 불타오르는 편도 못 되기에, 그냥 눈 앞에서 치우는 가장 손쉬운 방법을 택한다.
내 몸 한번 더 수고스럽고 말지, 어차피 배변봉투 안에 자리도 널찍이 남으니 말이다. 정작 내 것의 수확은 없고 남의 것만 잔뜩 담아 버린 날도 여러 번이다. 화나지 않냐고? 애당초 맑고 푸르게 동네를 보존하고픈 선한 의도가 아닌, 오로지 반려견 입에 더러운 똥 못넣게 하리라는 작심아래 시작한 일이었다.
치울수록 늘어가는 개똥들
치우면 치울수록 비웃듯 더 늘어만 가는 개똥들과 승산없는 사투를 벌일 때면 맥이 풀리다가도, 아침 저녁으로 줍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줍고 또 줍다 보니, 어느덧 사사로웠던 감정들도 분노의 고개를 넘어 결국 이해의 호수에 다다르게 되었다.
'그래, 배변봉투를 미처 준비하지 못했을 거야. 아니면 흙에 거름 주는 거라고 생각하는 어르신일까? 언제 뵈면 배변봉투부터 건네드리고 알려드려야지. 벌금 내시지 않도록...!'
그렇게 묵언수행하듯 걸어온 나만의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부디 아무도 현장 목격되지 않기를 바란다. 설사 어르신이 아닌 동년배였음이, 배변봉투 못 챙긴 게 아니라 애초에 소지할 마음도 없었음이, 아침, 저녁으로 인사하고 차 한 잔도 나눴던 동네주민이 반전의 범인으로 밝혀지는 순간, 잔잔했던 이해의 호수에서 별안간 해일이 일어날 수도 있겠다.
"우리도 처음엔 다 주워봤어. 부질없더라"며 동네 개뮤니티맘들의 허심탐회한 조언 또한 아직 귓가에 맴돈다. 그럼에도 하루의 루틴처럼 산책을 나설 때마다 배변봉투부터 두둑히 챙기는 모습에서 그럴 만한 이유도, 근사한 개똥철학 하나 얻지 못했지만, 그래도 궁금해서 드리는 질문입니다.
"당신의 반려견 똥, 왜 그냥 버리고 가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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