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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면 엄마 생각... 치매 돌봄이 조금 더 편해지도록

경기 안양시, 150명 입원할 수 있는 시립치매전문요양원 건립 추진

등록 2024.03.27 17:15수정 2024.03.27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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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에 나뭇가지마다 새순이 돋고 꽃봉오리가 부풀어 오른다. 나에게 봄은 친정엄마의 계절이다. 생신이 있는 계절이기도 하고 해마다 봄이면 야산으로 냉이나 두릅, 쑥 등을 뜯으러 다니셨다.


그래서인지 엄마의 품에선 연한 풀꽃 향기가 났다. 곁에 다가가면 숲길을 걷는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지고 가슴 속 허기가 채워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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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세 이상 추정 치매 환자 수는 93만 5086명으로 유병률은 10.38%로 추산된다고 한다. (본 사진은 내용과 무관) ⓒ 김은진


몇 해 전 겨울, 엄마는 인근 노인정에서 치매 검사를 받으셨다. 그리고 치매가 의심스럽다는 진단 결과가 나왔다. 나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당시 엄마는 손자들에게 구구단을 가르쳐주고 함께 딱지치기를 하는 명랑하고 똑똑한 할머니셨다. 공부와 놀이가 끝나면 아이들과 피자를 드시며 웃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처음 대학병원을 찾은 이유도 치매가 아니라는 결과를 받아 주변의 의심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어느 날 오후 신경과를 찾은 우리 모녀는 의사 선생님과 면담을 했다. 안경 너머로 의사가 부드럽게 물었다.

"할머니 여기 뭐 타고 오셨어요?"
"여기... 버스 타고 왔어요..."



조금 전에 택시에서 내렸는데 이게 무슨 말일까. 이날 나는 내가 엄마의 치매 증상에 대해 무지했던 건 아닐까 스스로를 책망했다.

그 후 며칠에 걸쳐 엄마는 이런저런 검사를 했고, 결국 초기 치매 진단을 받았다. 어리둥절한 채로 약을 받아왔지만 이 상태에서 더 악화되지 않게 잘 보살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가까이 살면 서로가 좋으니 자식들 옆으로 이사하시라 권하면, 엄마는 한사코 거절하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집에 있어야지. 거기 가서 왜 자식을 귀찮게 하냐."

초기에는 생활환경이 바뀌면 기억이 더 사라질 수도 있고, 주변에 친구분들이 계시니 내가 더 자주 다니면서 보살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자식들에게 피해 주고 싶지 않아 합가를 거절한 것이지, 엄마도 내심 얼마나 걱정이 많았을지 짐작이 된다.

흐려진 기억 속에서도 어린 딸은 잊지 않던

요즘은 모두 디지털화 되면서 정상인도 따라가기 힘든 속도의 세상인 듯하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본인의 전 재산인 집을 노인들 상대로 하는 사기나 보이스피싱으로 날려버릴 수 있다는 두려움에 늘 이런저런 걱정을 하셨다. 밤에도 편히 못 주무시고, 가끔 찾지 못하는 물건이 있으면 도둑이 들어 가져간 건 아닐까 오인하곤 하셨다.

결국 평생 훈장처럼 간직하던 집을 정리하고 같이 살게 되었다. 그 때 엄마의 안전은 지켰지만 서운한 그 마음을 오랫동안 위로해 드려야 했다.

함께 살던 기간 동안 엄마는 늘 "집에 가야지"라고 반복하시며 이불을 싸고 짐가방을 꾸리셨다. 가고 싶은 집이 얼마 전까지 사시던 작은 아파트를 말하는 줄 알았지만, 곧 '가야 할 집'은 매번 달라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느 날은 젊은 시절 자식들이 다니던 학교 앞 동네로 가셔야 한다 했고 또 어느 날은 예전에 장사를 하던 가게에 가봐야 된다고 하셨다. 한밤중에 당신이 찾아가야 할 집은 어린 시절 살던 바닷가 마을이 되었다가 한낮에는 아버지와 귀농해 농사를 짓던 농막이 되었다.

아마도 그 집은 엄마의 가슴을 데우는 곳이고 추억이 머물고 있는 곳이었을 것이다. 늘 어딘가로 가려고 하는 엄마를 보며 혹시 내가 불편한가 싶기도 했고 어린 아이를 돌보고 있는 딸 옆에 있는 게 미안해서 그러신가보다 싶기도 했다.

치매 간병을 하는 사람의 하루란 보통 사람의 하루와 다르다. 허망함과 수치심으로 가라앉은 부모를 마주하는 일은 무척 가슴 아픈 일이다. 언제 무슨 일로 놀랄지 몰라 긴장되고 날마다 허무함에 눈앞이 흐려진다.

그래도 놓을 수 없는 것이 가족이다. 흐려진 기억 속에서도 과거의 나, 어린 딸의 모습을 품고 계시다가 가끔 꺼내 보고 웃음을 짓는 모습은 얼마나 애잔했었나. 

치매 환자와 가족 모두를 위해
   
보호자가 치매환자를 돌볼 때, 경증 치매일 경우에는 방문요양사의 도움을 받거나 주간보호센터에 다니며 집에서 생활할 수 있다.

여기서 상황이 나빠지지 않으면 다행이지만, 치매가 더 진행되어 집에서 보호하기 힘든 상황이 올 때는 요양원 입소가 필요하다. 자칫하다가는 간병하는 가족의 건강과 삶까지 힘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작년 대한민국의 65세 이상 추정 치매 환자수는 93만 5086명으로 유병률은 10.38%로 추산되고 있다고 한다.

지난 7일 경기 안양시는 호계동에 15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시립치매전문요양원 건립이 추진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최대호 안양시장은 "치매 환자들이 편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시립 요양원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고 알렸다.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치매로부터 사랑하는 가족을 지키고 함께 행복할 수 있도록 안양시는 노력 중이다. 이 소식을 보며 지난해 돌아가신 엄마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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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안양천에 핀 튤립 봄은 친정엄마의 계절, 엄마의 품에선 연한 풀꽃향기가 났다. 곁에 다가가면 숲길을 걷는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지고 가슴속 허기가 채워 졌다. ⓒ 김은진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작가의 브런치에 실릴 수 있습니다.
#치매 #안양시 #최대호 #시립치매전문요양원 #치매돌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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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아름답고 재미난 이야기를 모으고 있습니다. 오고가며 마주치는 풍경들을 사진에 담으며 꽃화분처럼 바라보는 작가이자 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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