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표지
21세기북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영화<칠드런 오브 맨(2006년 작)>은 임신 능력을 잃은 인류가 경험하는 혼돈을 잘 그려낸다. 불임이 전염된 인류는 아이를 낳지 못하게 된다. 곧 멸종할 인류는 극심한 우울감에 빠진 채, 죽을 날만 기다린다. 독재를 천명한 정부는 무기력한 국민들의 자살을 종용하고, 불임의 원인으로 지목된 이민자를 신고하라고 한다. 영화 속 도시 곳곳에선 테러가 발생하지만, 공동체의 연대는 없다.
'임신할 수 없음'이 '임신하지 않음'이라는 점만 다를 뿐, 영화 속 런던과 비슷한 곳이 현실에도 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낮은 수준인 합계출산율 0.78%을 기록해 점점 '아이가 없는 나라'로 향하는, 대한민국이다.
저출산은 부정적인 현상으로 여겨진다. 노동인구의 감소와 노인인구의 증가, 이로 인한 노동인구 1인당 부양해야하는 인구 비율의 증가, 청년과 기성세대간의 갈등 확산, 그리고 초고령화 시대에 예상되는 경기 침체 등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면이 많다. 따라서 많은 국가는 저출산에 대해 선제적 대응에 나선다.
대한민국도 꾸준히 저출산을 탈피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왔다. <0.6의 공포, 사라지는 한국>의 저자 정재훈 교수(서울여대 사회복지학부)는 현재의 극심한 저출산은 지금이 '대한민국 대개조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임을 말하고 있다 주장한다. 합계출산율 0.78은 대한민국이 가진 여러 고질적 문제의 결합체이며, 이를 해결하면 저출산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0.6의 공포, 사라지는 한국>의 내용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진다. 첫째, 합계출산율 0.78이란 현실과 여기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이다. 저출산은 어느 정도 경제성장을 이뤄낸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현상이었다. 둘째, 저출산의 원인분석이다. 출산율 하락이 가속화된 2015년의 상황을 분석하며, 저출산에 비교적 잘 대응한 서유럽 국가의 사례를 든다.
정 교수는 대한민국의 저출산은 비용과 삶의 질 문제가 가장 큰 원인이었음을 밝히며, 대한민국의 저출산 대응이 '비용'에만 치중해온 점을 지적한다. 그는 비용은 저출산 해결의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라 말하며, 저출산에 대응하기 위해선 비용과 삶의 질 문제를 함께 논의해야 함을 주장한다.
셋째, 비용과 삶의 질 문제를 함께 해결하기 위해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이다. 성평등과 일·가정 양립, 교육개혁, 그리고 노동개혁이다. 출산주체인 여성이 아이를 낳지 않길 결심하는 이유로 돌봄과 육아 과정에서 평등하지 못한 성역할을 제시하고, 2차 세계대전 이후 서유럽의 저출산과 대한민국을 비교하며, 돌봄과 교육, 그리고 노동의 영역에서 개선해야 할 점을 제시한다.
저자는 '일·가정 양립'을 저출산을 해결하기 위한 중요한 과제로 강조한다. 돌봄과 육아에 대한 부담이 아이를 낳지 않는 결정으로 이어지지 않게끔 돌봄절벽으로 인해 부모가 갖는 부담을 덜어주고, 부모 개인의 커리어를 지키는 동시에 아이의 양육에도 신경쓸 수 있는 상황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책의 말미에 제시되는 교육개혁과 노동개혁은 이것을 이뤄내는 과정 가운데 있다.
현재 보건복지부(어린이집)와 교육부(유치원과 초등저학년)로 이원화된 복지체계를 교육의 영역으로 통합시킴으로써 사회적 돌봄체계를 구축해야 하고, 기업은 가족친화경여에 힘써야 한다. 아빠의 육아휴직 참여 독려를 비롯해 부모 중심으로 노동시간 단축 및 유연·탄력 근무를 확대하고, 남녀 임금격차를 해소하는 데 힘써야 한다.
이에 더해, '혼인한 이성커플 중심의 핵가족'을 '정상가족'의 기준으로 삼고 이에 맞춰 제공하던 복지서비스를 다양한 형태의 가족에게도 제공하는 '다양성 인정 및 가족관계의 민주화'와 '사람'의 관점에서 도시와 마을을 계획하는 지역 재편성을 함께 추구한다면, 저출산은 더 이상 위기가 아니라, 기회로 작동할 수 있다.
결국 저출산 해결을 위해선 비용과 삶의 질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함께 국정 기조 및 국가운영 체제의 전면적인 전환이 동반되어야 한다. 아이가 주는 기쁨과 내가 부담할 불행을 비교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지를 이웃과 함께 고민하고, 아이를 가지는 것이 온전한 기쁨이 될 수 있는 사회를 위해선 정부와 국민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
국가는 정교하고 치밀한 정책을 통해 부부들이 아이를 갖기로 결심하는 유인책을 제시하고, 국민은 다양성을 존중하고 민주 시민으로서 타인을 존중하기 위해 개별적 인식을 성장시키는 노력을 함으로써 '아이가 가득한 사회'라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 달리는 것이다. 이런 노력을 하기로 합의할 수 있을 때 저출산은 위기가 아닌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합계출산율 0.78은 절망적인 상황이다. 그래도 대한민국은 <칠드런 오브 맨>의 런던처럼 아이의 울음소리가 사라진 잿빛 도시를 마주할 것인지, 아니면 아이가 가득한 희망찬 도시를 마주할 것인지를 아직은 선택할 수 있는 위치에 놓여있다고 생각한다.
0.6의 공포, 사라지는 한국 - 아이가 있는 미래는 무엇으로 가능한가
정재훈 (지은이),
21세기북스,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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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 삶의 질이 나아지지 않는 한 진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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