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단 돌담 수리. 눈으로 일그러지고, 깨어진 부분을 손질하여 정리했다.
정호갑
꽃 이름 새 이름을 어느 정도 알고 있을까
사람들은 이 재미를 모른다. 어쩌면 아예 관심 밖인 것 같다. 학교에 있을 때 학기마다 신동엽의 '산문시(제목이 '산문시'이다)'를 읽는 시간을 따로 가졌다. 1968년에 발표된 시이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시이고, 우리가 열어갈 길을 비추고 있다. 이 시에는 우리가 그리고 있는 정치, 사회, 문화, 교육의 이상이 다 담겨있다. 이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그 중립국에선 하나에서 백까지가 다 대학 나온 농민들 트럭을 두 대씩이나 가지고 대리석 별장에서 산다지만 대통령 이름은 잘 몰라도 새 이름 꽃 이름 지휘자 이름 극작가 이름은 훤하더란다.'
우리는 새 이름, 꽃 이름을 어느 정도 알고 있을까? 자연을 찾아갔을 때 아름다운 꽃을 보고, 아름다운 새소리를 듣고 그저 '이름 모를 새'와 '꽃'이라고 말하지는 않나?
내가 시골살이를 선택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계절의 변화, 자연의 변화를 오감으로 느끼는 것'이 행복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통상 사람들은 자연의 변화, 계절의 변화에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아간다. 그러면서도 '지구온난화로 인해 우리의 미래가 심각하니 자연을 보호하자'고들 하고, 그 사례로 분리수거, 일회용 제품 덜 사용하기, 냉난방기 덜 돌리기 등등을 말한다.
지구온난화를 막는 첫걸음은 자연을 아는 데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자연의 아름다움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어야 그 아름다움을 지켜내기 위해 노력할 것 같아서다. 맑은 하늘, 깨끗한 바람, 예쁜 꽃, 아름다운 새소리, 졸졸 흐르는 맑은 개울물 소리 등등을 오감으로 느껴야 한다. 그것에서 행복을 맛볼 수 있어야 한다. 나에게 행복을 주는 것들이 사라지는데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나는 어렸을 때 부산에서 몇 집 남지 않은 초가에서 자랐다. 못 먹고 못살아도 흙담 밑에는 채송화, 봉숭아, 맨드라미, 사립문에는 측백나무, 작은 마당에는 무화과, 감나무, 포도나무 등등이 있었다. 어쩌면 어릴 때 그 아름다움을 보고, 느끼며 자랐기에 또 이렇게 퇴직 뒤 시골살이를 꿈꿀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알지 못하는 꽃을 보면 이름을 알기 위해 스마트폰을 통해 확인하고, 새소리를 들으면 그 새 이름을 알기 위해 유튜버나 인터넷으로 다가간다.
몇 년 전 EBS 프로그램 '한국기행'에서 울릉도에 사시는 70대 할아버지가 눈 덮인 마당에 핀 동백꽃을 보고 하신 말, '나는 저 동백꽃만 보면 눈물이 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 할아버지의 삶이, 인품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할아버지는 차가운 눈 속에서도 빨간 꽃을 피워낸 동백꽃이 너무 대견하여 꼭 안아 주고 싶었을 것이다. 또한 그 동백꽃은 할아버지 자신의 삶이었을 것이다. 그 눈물은 지금까지 온갖 어려움을 굳건히 헤쳐온 힘든 삶, 그래도 그 힘듦을 이겨 여기까지 왔음에 대한 자기 연민, 인정, 위로, 만족 등의 감정이 녹아 있을 것이다.
가끔 배웠다는 이들의 궤변과 억지를 들을 때면 그게 내 귀를 닫게 하고, 사람과의 거리를 두게 한다. 여린 식물이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고 온전히 자기의 아름다움을 드러냄에 감탄하고, 공감하고, 거기에 자기의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더 즐겁게 함께 대화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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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행복에서 물러나 시골 살이하면서 자연에서 느끼고 배우며 그리고 깨닫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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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사람들은 거의 모르는 시골의 이 재미, 나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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