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씨는 손○○ 선수의 명예를 훼손한 댓글을 달았다는 이유로 고소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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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받는 형사절차의 구조적 문제
수사 과정에서 신○○ 씨는 유명 리듬체조 선수 손○○의 명예를 훼손하려는 의도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신○○ 씨가 손○○의 메달 소식을 전하는 뉴스기사에 '자 비네르 사단의 성적조작 수혜자가…'라는 댓글을 단 것은 사실이지만, 해당 문구만이 아닌 댓글 전문을 살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경찰 수사 단계에서도, 검찰의 최종 처분 단계에서도 외면받았다.
그러나 신씨의 댓글은 곱씹어볼 여지가 있었다. 댓글 전문은 "자 비네르 사단의 성적조작의 수혜자가 손○○라고 치자. 신□□도 러시아에 월3천에 유학갔는데 왜 성적이 고따구였지?? 그리고 이번에 러시아 동행단에 일본 △△ 선수도 있었는데 비네르가 그렇게 전지전능하다면 왜 그 선수 결선 진출도 못 시켜줬는지??"이었다. 전후 맥락을 살펴보면, 손○○에 대한 비판보다 옹호에 가깝다. 신씨는 속상했을 것이다. 마침 변호사시험 준비 중이었기에 관련 절차에 보다 친숙했다.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결국 헌법재판소도 신씨의 주장에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신○○ 씨에겐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초래되었다. 신○○ 씨는 헌법소원 청구 과정에서 자신의 억울함을 입증하기 위해 직접 해당 사이트 고객센터에 요청하여 댓글의 전문을 확보한 다음 이를 헌법재판소에 증거 자료로 제출하기까지 했다. 애당초 경찰이 신○○ 씨의 주장에 조금만 더 귀를 기울이고 증거를 면밀히 수집했다면, 검찰은 경찰의 수사기록을 엄격하게 검토하고 과연 '범죄혐의가 충분'한 것인지에 대해 객관적인 입장에서 살펴봤더라면, 진작 무혐의에 그칠 일이었다.
피상적으로 수사를 진행·종결하고, 기계적으로 기소유예 처분을 내리는 관행 속에 피의자의 목소리는 묻혀있었다.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후로부터 꼬박 1년이 걸렸다.**
** 그나마 1년 만에 기소유예처분이 취소된 것은 신속하게 절차가 진행된 것이다. 본문에서 인용한 연구에 따르면, 기소유예 취소처분 건수 398건을 분석한 결과, 헌법재판소에 의해 취소되기까지 평균 17개월이 소요되었고, 무려 80개월이 걸린 경우도 있었다.
이처럼 속상한 사례는 적지 않다. 필자가 조미지 경찰대학 치안정책연구소 연구관과 쓴 '헌법재판소의 기소유예처분 취소 결정에 대한 실증적 연구' 논문에 따르면, 2013~2022년 10년 동안 헌법재판소에서 2405건의 기소유예처분 취소사건에 대해 심리하였는데, 그중 401건을 취소하였다. 인용률이 무려 16%, 약 6건 중 1건이 속상한 사건이었던 셈이다. 그사이 검찰의 기소유예처분 사건 비율은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2012년부터 2020년까지는 20~30%에 그쳤지만, 2021년에는 45%, 2022년에는 무려 53%에 이르고 있다. 속상한 신○○가 과연 얼마나 더 있는 것일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기소유예 제도의 취지 자체는 긍정적이다. 그러나 결국 제도의 구체적인 설계와 운용의 문제이다. 언제나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의 과도한 사건 부담은 부실한 사건처리로 이어지는 사례가 많다. 피상적인 증거만으로 섣불리 혐의를 인정하고 사건을 송치한다. 피의자의 변소나 반대되는 증거에 대해서는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다. 경찰의 구조적인 수사 미진이 본 사건의 시발점이 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수사 진행, 종결의 전반적인 프로세스를 다시 한번 검토할 때이다.
검찰의 성급한 범죄 혐의 인정과 기소유예 처분 역시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적지 않은 사건들이 기소유예 처분으로 종결되고 취소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검사로서는 섣불리 공소제기 후 무죄 판결을 받을 경우 인사상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고, 과감히 불기소 처분(혐의없음)으로 종결할 경우, 검찰 항고 등 불편한 민원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소유예 처분은 검찰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홀가분한' 선택인 셈이다.
그러나 이로 인한 부담은 고스란히 피처분자의 몫이다. 헌법재판소를 통해 검찰의 기소유예처분 취소를 구하는 헌법소원을 청구하려면, 반드시 변호사를 선임해야 한다. 신○○ 씨 역시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를 선임했다. 그나마 신○○ 씨는 변호사시험 준비생이었기 때문에 준비가 수월하고 비용부담도 덜 했을 것이다. 아마 또 다른 신○○ 씨는 제법 부담스러울지 모른다.
기록 너머에는 사람이 있다
16년간 검사로 근무하고 퇴직한 안종오 변호사는 2017년 <기록 너머에 사람이 있다>라는 책을 썼다. 출판사 리뷰가 상당히 인상적이다. "안종오 검사에게 뻔한 사건, 이미 끝난 사건이란 것은 없다. 이상하면 한 번 더 훑어보고 들여다보고, 그래도 궁금하면 피의자든 피해자든 불러서 물어본다. 사람을 직접 만나 들어보면 성의 한 조각이라도 더 생기지 않을까?"
또 다른 신○○가 없기 위해서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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