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나 사용자가 노동조합을 악의 축으로 몰아가는 것은, 사람들이 자신이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전제로 당당하게 주장하며 뭉치는 것을 지독하게 두려워한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사진은 2023년 9월 5일 민주노총 결의대회.
전국건설노동조합 이준혁
분열시켜 지배하라, 좋은 구호다
지금 일하고 있는 노동조합 소속 여러 지부에도 노동청의 단체협약 시정명령 시도가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노동청이 급작스럽게 시정 요구를 하는 내용은 대개 근로시간 면제(time-off)나 근무시간 중 조합활동 등이다. 노동조합이 상시적 활동을 수행하는 데 있어 그야말로 전제가 되는 지점들이다. 노동조합이 충분한 조합활동을 영위하기 위해 사용자에게 요구하고 주체적으로 쟁취한 일터 내의 제도를, 행정기관의 판단에 따라 시정명령을 내리고 나아가 형사처벌의 대상으로까지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노사관계, 노동조합에 대한 국가의 과도한 개입이다. 노동조합 안에 있는 사람들과 밖에 있는 사람들을 분절시킴과 동시에 노동조합 안에 있는 사람들을 고립시키고 그 활동을 좌절시키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통상 노사관계가 악화되는 사업장들에서 사용자가 가장 먼저 문제 삼는 바는 상술한 부분들에 집중된다. 집행부의 책임자가 유고되어 노동조합이 전임자(근로시간면제자)를 부득이하게 변경·지정함에도 각종 핑계를 대며 새로운 전임자에게 타임오프를 제대로 부여하지 않는 행태도 보인다.
노사관계가 '악화 수준'을 넘어 극악에 치달은 경우 사용자는 단체협약의 해지를 강행한다. 사용자의 주된 의도 역시 단체협약 등으로 보장되어 온 노동조합의 일상 활동을 무력화하기 위함에 있다. 단협 해지 이후 국면에서 조합활동과 관련한 채무적 부분은 모두 백지가 되어 버리고, 차후 노동조합으로서는 교섭은 물론 조합활동 전개에 있어서 운신의 폭이 극악으로 제한되고 만다. 현시점 노동청이 집중적으로 '기획근로감독'을 행사하고 있는 단체협약은 이렇듯 사용자가 노동조합의 약점으로 삼는 부분과 공통된다.
사업장에서 노동조합은 단순히 사용자와 대립하는 당사자에 그치지 않는다. 노동조합은 조합원의 회사에 대한 개별적 이해와 요구를 정리하여 규정·제도로 만들고, 집단적 의사결정의 주체로서 역할을 한다. 이렇듯 일터 내 민주성 확보의 한 축이 되는 노동조합의 활동 자체에 제동을 거는 사용자의 행태와, 이를 방조하고 묵인하며 나아가 작금의 연속적 기획 감독을 통해 노동조합에 압력을 넣는 노동 행정의 실태는 분명 문제가 있다.
아무리 현 정부가 공정과 상식, 법치 등을 명목적으로 내세운다고 하더라도 사실 정부 입장은 사용자 편에서 노동조합을 '기득권'이라며 몰아붙이고 일터에서 일하는 평범한 사람들을 더욱 작게 파편화시키는 것이나 다름없다. 안 그래도 우리나라의 교육과 제도는 경제가 어려워지기 시작했다는 시점인 IMF 시기를 즈음하여 경쟁만을 강조했고, 이기지 못하면 도태되고 어렵게 산다는 낙인을 일상적으로 찍어왔다.
이러한 와중에 헌법상 당연한 권리로서 보장된 노동조합의 활동마저 하위 법률을 근거로 '위법'이네 '불법'이네 재단하는 행태는, 노동조합 바깥의 사람들의 뇌리에도 왠지 모를 불안감만을 조성하고 있다. 그 결과 노동조합은 '친하게 지내기 싫은 노동조합'이 되고 말았다.
단결시켜 이끌어라, 더 나은 구호다
지금의 정부나 사용자가 노동조합을 악의 축으로 몰아가는 행태를 반대로 생각해 보면, 사람들이 자신이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전제로 당당하게 주장하며 뭉치는 것이 지독하게도 두렵고 부담스럽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사람의 성격과 태도, 가치관은 때로는 주변의 환경에서 큰 영향을 받고는 한다. 현재의 젊은 세대는 내내 경쟁의 틈바구니에 끼어 살아왔다. 이런 상황일수록 더이상 삶이 더욱 팍팍해지지 않도록, 주변 사람들을 잠재적 경쟁자나 적으로 돌리지 않아도 원만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예전에 켄 로치 감독의 영화를 볼 때면 결말이 개운하지 않다는 감상으로 마무리하고는 했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감독은 이야기가 영화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실제 삶에서 실천하기를 바라며 열린 결말로 영화를 끝냈을지도 모른다. 내 삶이 힘들다는 이유로 희생양을 찾는 극히 자기 소모적인 삶은 지양하는 것이 당연하다. 노동조합이라고 해서 색안경 끼지 않는 사회·경제적 공동체를 다 함께 생각해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 "분열시켜 지배하라, 좋은 구호다. 단결시켜 이끌어라, 더 나은 구호다"는 독일의 문학가, 철학가인 괴테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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