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사찰노예사건' 1심 판결이 선고된 후 장애인단체가 엄벌과 재발방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제도는 만드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수많은 장애인들의 의지와 투쟁으로 쟁취한 제도로서 모든 생활 영역에서 장애인 차별을 금지함으로서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 참여와 평등권 실현을 목적으로 한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된 지 16년이 다 돼가지만, 지난 1월 대법원이 소위 '사찰 노예 사건'과 관련해 내린 판결은 우리 사회가 여전히 장애인차별금지법의 목적과 가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2018년 2월 한 장애인단체가 서울시내 한 사찰의 주지를 검찰에 고발한 이 사건은 소위 '사찰 노예 사건'으로 불렸다. 사건의 주된 내용은 '지적장애인에게 승복을 입히고 승려 생활을 하게 하면서 30년이 넘도록 마당쓸기, 잔디깎기, 농사, 제설작업, 경내 공사 등 각종 노동에 동원한 것이 장애인의 노동을 착취한 것'이란 것. 2022년 6월 1심 법원은 사찰 주지에 징역 1년을, 2023년 2월 2심에선 징역 8개월 실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지난 1월 대법원은 원심판결 중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을 파기해 원심법원으로 환송했다.
대법원은 해당 판결로 장애인의 권리보장, 차별과 학대 근절이라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장애인복지법의 입법취지를 형해화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1조(목적)
이 법은 모든 생활영역에서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장애를 이유로 차별받은 사람의 권익을 효과적으로 구제함으로써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참여와 평등권 실현을 통하여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구현함을 목적으로 한다.
가해자의 관점에서 쓰인 판결문... 누구를 위한 법인가
대법원은 지금까지 장애인권옹호자들이 가열차게 싸우고, 자신의 삶을 내던지며 쟁취하고자 했던, 그리고 우리 사회가 달성해 온 '장애인에 대한 차별 금지'라는 가치를, 하나의 판결로서 무너뜨렸다.
판결문에서 "장애인, 피해자, 약자"는 없었다. 오직 가해자의 주장, 가해자의 관점만이 있었다. 대법원은 노동력 착취, 금전착취가 아니라 울력이었다는 가해자의 주장을 인정했다.
울력은 다 함께 일하는 것, 가해자 이익으로만 돌아간 피해자의 노동이 울력인가
울력이란 사찰에서 스님과 재가자들이 사찰에 필요한 일을 다 함께 하는 것을 말한다. 불교에서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그 역할을 다하는 것으로서 수행의 일환으로 본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도대체 어느 부분을 "다 함께 일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단 말인가. 피해자는 매일같이 새벽 4시부터 밤 10시까지 사찰에 필요한 모든 일들을 담당했다. 주지스님인 가해자가 시키는 일을 모두 해야 했다. 일을 늦게 처리하면 욕을 먹었고 맞았다. 또한 가해자는 각종 건물신축공사 및 건물과 도로 보수공사에 피해자를 동원했다. 이러한 노동행위를 "다 함께 일한 것"으로 볼 수 있는가. 필자는 법원에 묻고 싶다. 과연 가해자도 이러한 노동을 함께했는가.
노동력 착취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생산수단의 사유자가 노동자를 노동시간이상으로 일을 시켜 성과를 취득하는 일."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하루 8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쉬지도 못하게 노동을 시켰고 그에 대한 대가를 전혀 지불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성과는 모두 가해자가 가져갔다.
피해자가 했다고 하는 노동의 내용인 "예불, 기도, 마당쓸기, 잔디깎기 , 농사, 제설, 공사 등 노동", 사실 이 모든 것은 가해자가 사찰을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었고, 건축공사도 가해자가 세운 계획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었다. 결국 이 모든 성과는 가해자의 이익으로 돌아갔다. 이것이 노동력 착취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폭력을 정당화 한 법원
장애인복지법 제59조의9 제2호의2에서는 "장애인을 폭행, 협박 등의 수단으로써 장애인의 자유의사에 어긋나는 노동을 강요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이를 어기는 경우 처벌하고 있다.
가해자는 피해자가 작업을 느리게 한다는 이유로 피해자를 폭행해 이미 벌금 500만 원 처벌을 받은 바 있으며(2019년 11월), 피해자가 제대로 일하지 못하는 날이면 피해자를 폭행하는 등 원치 않은 노동을 강요했다. 장애인에 대한 노동력착취 행위가 사찰이라는 장소에서 이뤄졌다는 이유만으로 위법행위가 아닌 것으로 판단돼선 안 된다.
대법원은 피해자가 해당 사찰에서 온전한 한 명의 인격체로 대우받았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대법원은 제대로 된 논리와 근거 없이 '울력'이라는 허울만으로 우리 사회가 지금까지 확립해 온 "정당한 노동권의 보장, 장애인의 권익 보장,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참여"라는 가치를 훼손했다.
장애인의 의사결정권을 무시한 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