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둘이서만 다녀온 첫 여행... 새삼 울컥했다

아이가 참 나를 많이 닮았구나 느낀 1박2일 강릉 탐방

등록 2024.04.01 14:17수정 2024.04.01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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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여행을 다녀왔다. 아이와 단 둘이. 함께 보낸 시간이 적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둘이서만 가는 여행은 한 번도 가보지는 못했다는 게 다소 신기했다. 

사사로운 고민들이 맴돌았다. 가서 도대체 뭘 하지. 가면서 무슨 이야기를 하지. 혹시나 여행을 하면서 '꼰대'처럼 굴면 어떻게 하나 등등. 전형으로 자기 영역을 수호하는데 방어기제의 날이 곤두서있는 인간의 고민이었다.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는 일주일 전부터 기대가 차고 넘쳤다. 우리 정말 여행 가는 거지. 응. 진짜로 가는 거지. 응. 내일모레 가는 거지. 응. 내일 가는 거지. 응. 

목적지는 다소 낯선 강릉이었다. '강릉 러버'이신 지인의 강력한 추천 덕분이었다. 출발 전부터 그는 '그냥 여기 갔다 이거 드시고, 저기 갔다 이거 드시고, 다음 날은 이렇게 하시면 후회 같은 것은 없을 것입니다'라고 코칭으로 깔끔하게 일정을 짜주셨다. 

집에서 차로 두 시간 반. 나는 장거리 운전을 선호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이런 거리를 운전해 보는 것은 처음이기도 했다. 아이와 차 안에서 도대체 무슨 이야기가 오갈까 궁금했다. 지면에서 3cm 정도 들뜬 마음 덕분이었을까, 아이는 쉴 새 없이 이야기를 쏟아내서 그저 거기 맞장구만 쳐주면 충분해졌다. 

아이와 나의 대화 중 40%는 애니메이션에 관한 이야기다. 내가 고등학교 때 봤던 만화인 <원피스>가 아직도 하고 있어서 세대 간의 대화가 된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최근에 알게 된 <진격의 거인> 이야기, <원펀맨>, 아이와 나 사이에 가장 든든한 이야깃거리인 <귀멸의 칼날>로 수놓다 보니 어느새 횡성 휴게소에 도착해 있었다. 

그렇게 꼬박 한 시간을 더 가니 강릉에 도착했다. 이 근처는 약 15년 전인가 정동진에 온 것 이후로는 처음이었다. 오자마자 강릉 특유의 기운을 느꼈다. 깊이 있는 단단함, 그것이 분명했다. 


스타트는 물회였다. 아이와 나란히 앉아서 먹었는데, 맙소사 너무 맛있게 먹느라고 옆에 누가 있는지 까먹어버렸다. 둘이 먹다가 하나 죽어도 모른다는 그 맛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강릉 물회 맛집 <해미가>
강릉 물회 맛집 <해미가>김정주(본인)
  
숙소에 짐을 풀고 바로 앞에 있는, 바다와 솔밭 조합을 함께 걸었다. 바다가 눈치있게 나와 아이의 BGM이 되어주었다. 적지 않은 이야기를 나눴다.

생각해보면, 둘째가 태어난 이후에 첫째와 보낸 시간이 확연하게 줄어들었다. 거의 1:1로 맡아서 키우듯 아내는 첫째를, 나는 둘째를 전담했으니까. 그러다보니 오해가 흘렀다. 오해는 미세하지만 확실한 벽을 만들었고 그건 사랑을 흐트러지게 했다.


이번 여행은 오해를 건너 이해로 가는 순간들이었다. 1박 2일을 꼭 붙어 지내니까, 첫째 아이가 참 나를 많이 닮았구나 새삼 생각했다. 그리고 그게 조금 슬퍼서 꼭 울컥했다.
 
 강릉 송정해변
강릉 송정해변김정주(본인)
  
호텔에서 <런닝맨>이라는 게임을 하며 땀을 흘리고, 저녁은 지인 추천으로 <고선생>이라는 곳에서 생선 구이를, 자기 전에는 함께 영화 <반지의 제왕>을 봤다. 이튿날에는 옹심이와 감자전을 먹고, 커피 한잔, 그리고 <아르떼 뮤지엄>이라는 정말 환상적인 전시회를 봤다. 한 5년 내에 봤던 전시회 중 최고급에 속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은 3시간 정도로 나왔고, 아이는 지쳤는지 차에 타자마자 잠이 들어버렸다. 아이 손을 꼭 잡아봤다. 작지만 충분히 따뜻했다. 조금은 꼬들꼬들하기도 했다. 그동안 열심히 많이 컸구나 생각이 들었다. 

한번 더 휴게소에 들러서 밥을 먹고 가는 길에서 아이는 라면을 시켰다. 이거 매운데 먹을 수 있겠냐고 묻는데 할 수 있다고 했다. 물을 몇 번씩이나 다시 떠 오며 후후 불면서 끝까지 먹어내는 모습에서 한번 더 정말 많이 컸구나를 느꼈다. 깊은 어둠이 가는 길을 덮었고, 출발할 때만큼의 대화는 없었지만 든든한 무언가가 우리 사이에 흐르고 있었기에 시간의 흐름은 두렵지 않았다. 

도착해서 어쩐지 나는 편지를 썼다. 꼭 그러고 싶었다. 그 내용으로 글을 마치면 되겠다.

'아빠와 너 사이에 함께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생겨서 그것들이 시간이 흘러도, 아니 흐를수록 소중하게 될 것 같아서, 우리를 우리로 지켜줄 것 같아서 기뻐. 돈은 무척 중요한 것이지만 어쩌면 이런 추억은 사람이 죽을 때 수백억보다 더 아름답게 남을 것 같다고 아빠는 믿어볼래. 소중하고 아름다운 세음아, 앞으로도 많은 추억을 만들자. 착한 마음, 따뜻한 마음, 순수한 영혼을 잃지 말고 살아가자. 사랑하고 사랑해.'
 

 
 아이에게 쓴 손편지
아이에게 쓴 손편지김정주(본인)
 
#강릉 #여행 #물회 #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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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당연스럽게 '내'가 주체가 되어 글을 쓰지만, 어떤 순간에는 글이 '나'를 쓰는 것 같을 때가 있다. 마치 나도 '생명체'이지만, 글 역시 동족인 것 같아서, 꿈틀 거리며 살아있어 나를 통해서 이 세상에 나가고 싶다는 느낌적 느낌이 든다. 그렇게 쓰여지는 나를, 그렇게 써지는 글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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