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공립 A고교 정문에 내걸린 커다란 펼침막. ©윤근혁
교육언론창
우리 동네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을 앞둔 4월, 동네에 자리 잡은 한국 학교들은 민주시민교육 '동토의 왕국'이다. 대부분의 학교가 몸 사리기에 나선 탓이다. '트집 잡히지 않기' 위해서다.
정문에 펼침막 내걸고, 아침방송도 시작하고...
이런 형편에서 서울의 한 공립고교가 지난 3월 29일 학교 정문에 선거 관련 5미터 크기의 펼침막을 내걸어 눈길을 끈다. 이 펼침막에는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만18세 새내기 유권자"라고 쓴 뒤 다음처럼 강조했다.
"청소년의 선택이 대한민국 변화의 시작."
서울 A고가 '국회의원 선거 맞이 계기교육'을 실시하고 나선 것이다. 1일 오후 3시, 이 학교 학생들은 하교하면서 펼침막 글귀를 유심히 살펴봤다.
4명의 고2 여학생에게 '요새 학교에서 국회의원 선거교육 받고 있느냐'고 물어봤다. 돌아온 대답은 "아침마다 학교 방송으로도 듣고, 학교에서 틀어준 동영상으로도 봤다. 선거에 대해 잘 알게 됐다"는 것이었다.
이 학교는 지난 3월 29일 전교 학생들이 참여하는 자치활동 시간에 '총선 동영상 프로그램'을 시청했다. 학교에서 만든 것은 아니고, 중앙선거관리위가 만든 학생 선거교육용 동영상이었다.
1일부터는 학교에서 진행하는 아침방송 시간에 20초짜리 광고 비슷한 안내방송도 나가고 있다. 이 방송은 선거 전날인 오는 9일까지 계속된다. 방송부 소속 학생이 또박또박 말하는 안내 내용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돌아오는 4월 10일은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일입니다. 우리 학교에도 선거권이 있는 만18세 이상 학생들이 있습니다. 선거권을 가진 학생들은 선거에 적극 참여해주시길 바랍니다. 선거권이 없는 학생들도 적극적인 관심 부탁드립니다. 새내기 유권자의 선택이 대한민국 변화의 시작입니다."
학교 현관과 복도에 설치된 대형 전광판에도 '나는 새내기 유권자', '선거 이렇게 한다', '선거운동, 나도 할 수 있다', '참여하는 유권자가 되다'란 내용이 담긴 홍보물이 빛을 내고 있다. 이 또한 중앙선거관리위가 만든 것이다.
이 학교 교사들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계기교육을 실시하기로 뜻을 모았다고 한다. 교육 내용은 '민주주의와 주권 행사의 중요성', '새내기 유권자의 권리와 의무'다.
이 학교가 만든 계획 문서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4월 10일 국회의원 선거와 관련하여 학생들이 민주주의와 선거에 대한 중요성을 이해하고 교과서 밖의 살아있는 민주주의를 체험하는 민주시민교육의 일환으로 계기교육을 실시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계기교육 자료는 이 학교 교사들이 만든 게 아니다. 중앙선거관리위가 만든 것을 갖고 왔다. 왜 이랬을까?
이 학교 관계자는 교육언론[창]에 "학교에서 선거 교육자료를 만들었다간 오해를 살 수 있을 까봐 조심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면서 "내가 알기론 학교 차원에서 이렇게 공식적으로 선거 계기교육을 하는 공립고교는 우리 학교 말고는 더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이 학교 관계자는 "학교 이름은 보도하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특정 세력의 공격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조심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학교 관계자는 "한국도 16세부터 정당 가입이 가능하고 18세부터는 당장 선거에 참여해야 하는데, 정작 학교는 선거를 앞두고 선거 계기교육을 하는 게 두려운 형편"이라면서 "이런 상황이 빨리 해소되어야 진정한 민주주의가 꽃 피는 학교와 사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