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6월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는 강만길 상지대 총장.
권우성
나랏일이 크게 헝클어지고 민주주의가 역진하고 있는데 우리 사회의 큰 어른 강만길 선생이 2023년 6월 23일 별세했다. 몇 년 전부터 건강이 좋지 않아 활동을 접고 계셨으나, 존재만으로 깨어있는 시민들에게 큰 힘이 되었다. 그 와중에 들려온 갑작스러운 부음에 황망하기 그지없었다.
향년 91세, 직접 쓰신 글에서 말한 대로 그는 "한 번도 겪기 어려운 역사의 실험장, 즉 식민 통치의 경험, 8·15의 격동, 민족상잔의 6·25 전쟁, 4·19 혁명, 5·16 쿠데타, 5·18 민중항쟁 등을 자기의 세대로 겪고 잠깐이나마 그 바퀴에 깔려 보기도 한" 역사학도이다.
덧붙이면 6월 민주항쟁과 촛불혁명을 겪고, 평양에서 열린 6·15 남북공동선언에 참석하는 등 현대사의 기록자이자 증인이셨다. 박정희의 유신과 전두환의 5공 체제에서는 독재의 수레바퀴에 깔리기도 했다.
한국 사회의 발전 동력을 반독재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에서 찾은 고인은 '역사의 현재성'을 중시했다. 이에 따라 배운대로 실천하는 삶을 살고자 했고, 자신이 추구하던 가치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무던히 노력하고 실천했다. 역사를 "인간 이상의 현실화 과정"이라 정의하면서 연구를 거듭하고, 필요하면 행동에 나섰다. 그때마다 법비(法匪)와 학기(學技)들의 모함과 질시가 따랐으나 크게 위축되거나 괘념치 않았다. 민주정부에서 10년간 통일원 고문, 남북역사학자협의회 남측위원회 위원장,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광복6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 등을 지냈다.
고인께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이던 시절에 필자는 같은 위원회 위원의 한 사람으로 일하면서 곁에서 선생을 지켜볼 수 있었다. 해방 후 반민특위가 이승만 세력에 의해 붕괴하고, 60여 년 만에 재개된 친일반민족행위자에 대한 단죄는 다시 그 후예들의 거센 도전에 직면해야 했다. 특히 거대 족벌신문 사주 측이나 대학 총장 출신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기념사업회 등의 위협·음해·모략 등은 견디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위축되거나 기가 죽을 법도 하지만 강만길 선생은 이런 외압이나 압박에 조금도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친일행위자들의 죄상을 역사의 기록으로 남기는 데 중심이 되었다. 역사를 바르게 공부한 사학자이기에 가능했을 터이다.
선생은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를 '분단시대'라 이름 짓고, 분단시대에 현실 도피를 거부하면서 현재 맞닥뜨린 불행의 원인을 찾고자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 결과 불행의 원인은 '냉전수구세력'에 있었다. 그는 냉전세력의 본질을 '① 민주주의 왜곡·역행, ② 반민족세력이면서 스스로 민족세력인양 탈바꿈 변신, ③ 외세와의 결탁, ④ 평화통일 거부를 적시하고, 남북화해를 가로막는 것' 등이라 규정하고, 우리 사회는 냉전수구세력을 극복해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