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거실에 놓인 책장은 벽에 걸어둔 작품과 같다. 나와 아이들의 책을 정리할 때마다 새로운 생각이 밀려오기에 책장을 볼 때마다 다른 느낌과 감동이 전해진다.
김보민
그렇게 우리의 밤 독서가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잘 자란 인사를 하고 우리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비스듬히 앉아 각자 읽을 책을 꺼내 든다.
노래도 틀지 않고, 밖에서 들려오는 바람 소리와 빗소리가 우리의 숨소리와 뒤섞이고, 책장을 넘기는 소리는 불규칙적이지만 기분 좋은 추임새가 된다. 20분을 읽자고 시작했는데 날이 갈수록 책을 읽는 시간은 길어져서, 어떤 날은 한 시간이 훌쩍 흘러 둘이 마주 보고 깜짝 놀란 날도 있었다.
나는 남편에게 맞춤형 큐레이터가 되었다. 최재천 교수의 <최재천의 공부>를 시작으로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 김소영 작가의 <어린이라는 세계>, 박준 작가의 <계절 산문>, 박상영 작가의 <대도시의 사랑법>, 백수린 작가의 <눈부신 안부>, 나이키 창업자 나이트필의 <슈독>까지 3개월 동안 남편은 여섯 권의 책을 읽었다. 한 달에 한 권을 읽겠다는 목표가 있었는데, 목표 달성률이 200퍼센트가 된 셈이다.
남편은 책을 읽다 피식 웃기도 하고, 미간에 힘을 주기도 하고, 어느 페이지에 머무르기도 하고, 책장을 덮고 가만히 있기도 하고, 작은 한숨을 내쉬기도 한다. 나는 그런 남편을 곁눈질하며 그가 이야기 속 어디에 머무르고 있는지 상상한다. 어떤 날은 내가 읽는 책보다도 책을 읽는 남편을 관찰하는 게 더 재미있기도 했다.
남편과 단둘이서 마주 보고 앉아 점심을 먹는 날이었다. 책장에서 책을 골라 건네면서 책을 추천하는 이유는 설명했지만 책을 읽고 난 후 특별히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기에 프로젝트를 점검하듯 남편에게 물었다.
"요즘 책 읽어보니 어때? 뭔가 달라졌다고 느껴지는 게 있어?"
독서를 하고 부자가 되었다는 사람들이 유튜브에 차고 넘치는 세상이어서였을까, 나의 남편에게 그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길 바라기라도 하듯 질문을 던졌다.
"글쎄, 처음엔 20분도 집중 못할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한 시간씩 집중해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가장 놀라울 뿐이야."
"그치, 집중해서 책을 읽다 보면 몰입의 즐거움이 찾아오긴 해. 그럴 때 뇌가 엄청나게 활성화된다고 하더라.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하나 더 얻은 게 있어. 너를 더 많이 이해하게 되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