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밥론>박기영시인 다섯번째 시집
시와에세이
누군가에겐 문학이 쓸모없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내 몸에 쌓여있던 독에는 문학이 제일 좋은 해독제였던 것 같다. 글만큼 자기 치유와 자아 성찰에 좋은 도구가 또 있을까. 글을 읽고 썼기에 살았고, 살아냈다.
그렇게 절박함으로 밀어 올린 나의 시가 누군가에게도 의미가 되고, 또 다른 누군가를 삶으로 밀어 올려준다면 정말로 감사한 일이었다.
김수영 시인의 "시는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라는 말처럼, 국밥론의 저자 박기영 시인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내가 바라보는 세상이 얼마나 절박하게 나를 삶으로 밀어 올릴 것인가에 관심이 많다"라고 말이다. 아! 삶으로 나를 밀어 올리기 위하여 몸부림치던 모든 순간들이여!
시집 끄트머리에 실린 시인의 에세이에서 "그 세계에 내가 어떻게 착지하는 것인가에 더 매달린다"라는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내가 내 삶에 삐끗하지 않고 잘 착지했던 것은 시를 읽고 쓴 덕분이었다.
박기영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국밥론의 제1부는 한 끼의 평등을 나타내는 국밥 한 그릇에 대하여, 음식을 매개로 생명과 삶을 사유한다. 세상살이 서글퍼서 눈물 나지만, '살아가는 일은/내 몸의 독을 다스리는 일/날숨과 들숨으로 가슴 다독여/갈비뼈 깊숙이 숨어있는 슬픔 추스르며/어두운 그림자 쓸리는 이야기를/두 발로 끌고 가는 일'(새벽 국밥집에서 중에서)이라 토닥인다.
순례자라 불리는 박기영 시인은 삶을 시로 옮기고, 살아가는 모든 숨 붙은 것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1부에 담긴 음식과 삶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시인의 시선을 따라 같이 걸었다. 순례길의 초입에 들어선 가뿐한 마음으로 말이다.
절필했던 그가 다시 시를 쓴 이유
한 때 절필 하고 방송일에 뛰어들었던 박기영 시인이 다시 펜을 든 건, 세월호 참사 사건 때문이었다고 한다. 문학판에서 멀어졌던 시인은 그 사건을 통해 오랫동안 닫혀있던 기록자로서의 의무를 다시 상기했다고 한다. 제2부 고래의 귀향 편에 실린 작품들에는 아득한 그리움과 깊은 슬픔이 묻어난다.
당시 박기영 시인은 길을 가다가도 문득 멈춰 서서 시를 써 내려갔다고 한다. 최영미 시인이 '선운사에서'를 통해 노래하였듯, 절절히 그리운 누군가를 잊는다는 건 영영 한참 걸릴 일이며, 김용택 시인이 '사람들은 왜 모를까'라고 물었듯, '봄'은 손에 닿지 않는 것들이 피어나는 계절인 것이다.
'한겨울에도/ 눈송이보다 더 많은/ 노란 나비들이/ 수없이 날아다니던 하늘 //그 아래 걸어가면서/ 지금도 사월/ 바다 위를 서성거리는/ 나에게 편지를 쓴다./(봄편지 중에서)
박기영 시인이 써내려간 슬픈 봄편지와 더불어 2부에 실린 작품들에서, 진심 어린 애도의 편린들이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