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코네하치리(箱根八里 ) 안내판 교토와 에도를 잇는 도카이도(東海道)에서 하코네 산을 넘어야하는 8리(里)를 하코네 하치리라 불렀다.
정효정
하코네산은 칼데라 지형이어서 급경사가 많은 데다, 이끼가 많아 미끄러지기 쉬운 길이었다. 전해지는 지명들 중 '여자가 넘어진 언덕(女ころばし坂)'은 말을 탄 부인이 낙마로 사망해서 붙여진 이름이고, '원숭이 미끄러지는 언덕(猿滑りの坂)'은 정상부쪽 가파른 고개에 붙여진 이름이다. '하코네 하치리'라는 옛 노래 속에 '하코네 산은 천하의 험지(箱根の山は、天下の嶮)' 라는 가사가 남아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1719년에 일본을 방문했던 조선통신사 신유한도 하코네 하치리를 넘으며 해유록(海遊錄)에 '길이 험하고 몹시 가파르다'는 기록을 남겼다. 당시 함께 가던 일본 외교관 아메노모리 호슈(雨森芳洲)가 가마에서 내려 걷자 신유한이 그 연유를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그는 "이 봉우리는 아주 험해서 말을 타고 가면 내가 다칠까 두렵고, 가마를 타고 가면 남을 다치게 할까 두렵다. 내가 힘든 게 낫다"라고 답했다고 한다(출처: 다카하시 치하야, <에도의 여행자들>).
이 길을 여러 번 지나갔던 일본 관리는, 말이나 가마를 타느니 차라리 걷는 게 낫겠다고 택한 것이다.
에도 시절의 도로 포장, 이시다다미(石畳)
가나가와현 남서부에 위치한 하코네는 도쿄에서 전철로 약 1시간이면 갈 수 있어 당일치기 여행지로도 인기다. 온천 뿐 아니라 화산 가스 분출 지대인 오와쿠다니, 분화구 호수인 아시노코, 호수를 향한 도리이가 있는 하코네 사원 등이 있어 늘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맑은 날엔 이곳에서 후지산이 보인다.
도쿄에서 출발해 하코네 유모토 역에 내리면, 대부분의 관광객은 바로 하코네산으로 향하는 등산열차에 탑승한다. 하지만 하코네 하치리 루트를 걷기 위해선 반대 방향으로 나가 하코네 등산 버스를 타야한다. 역에서 4km 정도 떨어진 스쿠모가와 자연탐승보도(須雲川自然探勝歩道)가 오늘의 출발점이다.
이끼가 가득한 작은 나무다리를 건너면 삼나무와 편백나무가 울창한 산길로 이어진다. 군데군데 이곳이 도카이도 옛길임을 알려주는 표지판이나 이 지역의 역사적 유래를 알려주는 안내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