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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편하자고 도로 넓혀도 될까... '나와라, 수달'

환경영향평가의 쓸쓸함, 다른 생명과 공존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등록 2024.04.12 18:01수정 2024.04.12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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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종은 현재 282종으로 수달, 여우, 산양, 하늘다람쥐 등을 포함되어 있으며, 한 번 환경영향평가가 완료된 경우에는 멸종위기종 서식이 확인되더라도 생태 파괴를 멈출 수 없어 개선이 필요하다. ⓒ 최은준

 
지난주 금요일 오전, 경남 남해군에 위치한 한 시골마을의 낮은 산에 핀 고사리를 꺾고 있던 중이었다. 이맘때가 되면 남해군의 특산물인 친환경 고사리가 인기가 많아 연로하신 부모님도 열일 제쳐두고 고사리를 채취하신다.


오랜만에 일손 돕기에 나선 나도 어머니와 이런저런 대화를 하던 중이었다. 30대 중반 쯤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산을 헐레벌떡 뛰어 올라오더니 묻는다.

"안녕하세요, 혹시 저 저수지 주변에 수달이 나오나요?"

"수달요?"

"예. 제가 지금 여기 도로 확포장 관련해서 환경 영향 평가 중인데, 저기에 수달이 나오는지 궁금해서요."


수십 년 동안 살면서 수달이라는 동물이 그곳에 출몰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없었다. 하지만 내가 저수지를 다 본 것도 아니고,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그에게 전달하기도 애매해서 군청이나 면사무소에 물어보라고 했다. 그가 되묻는다.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또 혹시 저기 저수지에 주로 어떤 물고기가 사는지 아시는지요?"


"글쎄요, 저기선 어차피 낚시가 금지되어 있고... 근데 제가 아주 어렸을 적엔 잉어가 종종 잡힌 걸로 알아요."


그는 몇 마디 더 묻고는 자동차에서 투망과 낚시대를 꺼내 저수지로 향했다. 저수지와 연결된 도로는 공동묘지와 연결되는 유일한 길이었다. 그 길은 명절이 되면 난리가 나는 도로였다. 도로 폭이 좁아 성묘객들이 몰리면 양방향 통행이 불가능한 도로였다. 그 때문에 아마도 그동안 군청에 민원이 쌓였을 것이다.

그 자리에서 인터넷을 통해 더 찾아보니, 더불어민주당 소속 이학영 의원이 지난해 6월 대표 발의한 야생 생물의 생태 보호를 위한 '환경영향평가법' 일부개정안이 눈에 띄었다.

현행법에 따르면 환경영향평가가 완료된 이후 대상 지역에서 멸종위기 동식물의 서식이 확인되더라도 개발사업 계획을 수정할 수 없다고 한다.

이학영 의원을 포함한 더불어민주당 의원 10명은 환경영향평가 이후 사업 진행 과정에서도 멸종위기 동식물이 발견되면 야생생물 특별보호구역 또는 보호구역으로 지정되는 경우를 재협의·변경 협의 대상으로 추가하도록 했다.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종은 현재 282종인데, 그 중에 수달이 포함되어 있다. 현재 이 개정안은 국회 위원회 심사 중인 걸로 나온다.

고사리를 캐다 말고, 한숨 돌릴 겸 산마루에 걸터 앉았더니 저 멀리 투망을 던지는 낯선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성묫길에 나서는, 조상에 대한 예의를 다 하고 싶은 사람들 마음은 충분히 납득이 되지만, 한편으로는 지금 살아있는 생명을 지키는 것 또한 소중한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 투망을 던지는 남자 앞으로 놀리듯 수영을 하는 수달 한 마리를 상상했다. 노을이 드리우는 따뜻한 저수지 한 가운데서 유유자적 수영을 즐기는 살아있는 수달.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수달을 향해 마음 속으로 외쳤다.

'수달아, 네가 정말 여기 있다면 공사하기 전에 나와라.'
 
#수달 #멸종위기동물 #환경영향평가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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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한다는 말을 믿습니다. 소시민으로서 지극히 평범한 가치를 공유하고 소개하고 싶습니다. 동화작가의 시선으로 세상을 들여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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