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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사' 간행과 역사인식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실천적 역사학자 강만길 평전 17] 강만길은 현대사 연구의 개척자이다

등록 2024.04.22 07:38수정 2024.04.22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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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가 15일 저녁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6.15 남북정상회담 10주년 기념 학술회의 및 만찬'에서 '6.15 10주년 역사적 의미와 한반도 미래'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 유성호

 
그가 유배 상태에서 쓴 <한국근대사>는 <분단시대의 역사인식>에는 미치지 못했으나 역사관련 책으로는 드물게 판매 부수를 올렸다. 이어서 1981년 1월부터 <한국현대사>의 집필에 들어갔다. '유배자'의 신분은 직장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다는 점일 것이다. 자택에 격리되다시피 하니 찾는 이도 별로 없었다. 

현대사는 그가 숨쉬는 공간이었다.

일제식민지시대와 해방 후 분단시대.
누구라도 자신이 살아온 시대사는 주관이 개입될 소지가 적지 않다. 이 때문에 그는 편년체적인 방법을 피하고 일종의 분류사적인 방법을 택하였다고 술회한다.

역사서술에서 편년체적인 방법을 피하고 일종의 분류사적인 방법을 택한 것은 역사를 정치·외교사 중심으로 쓰는 폐단을 줄여보자는 데도 그 목적이 있지만, 그 경우 특히 어떤 사실을 '역사'로서 선택하여 쓸 것인가 하는 문제를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석 1)

그가 이 책을 쓸 때까지 한국현대사를 다룬 단행본을 찾기 어려웠다. 언론인 출신으로 현대사 연구가인 송건호의 지적이다.

더 절실한 문제는 건국 30년이 넘었는데도 우리에게 아직 밖에 내놓을 만한 건국사가 없다는 점이다. 정부가 서고 30년이 지나도록 학문적 의미의 건국사, 즉 정사(正史) 하나 없다는 것은 아마 세계에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국사편찬위원회가 간행한 <자료 대한민국사>가 있기는 하나 이것은 이름 그대로 자료집에 불과하며, 이것 자체에 문제가 없지 않고, 그나마 정부수립 전의 일지에 지나지 않으며, 1948년 건국 후의 자료정리는 아직 없는 실정이다. 국사하면 근대사 이전의 '학자'들이 '도피'(?)하고 근대에서 현대로 내려올수록 연구가 없고 또 연구를 꺼리는 풍토는 신생국 중에서도 우리나라밖에는 없는 것 같다. 이 점에 관한 한 관(官)·야(野) 할 것 없이 같은 경향을 보이고 있어 국사학계에 중대한  문제점으로 제기돼야 할 것이다. (주석 2)
강만길은 현대사 연구의 개척자이다. 역사학자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연구를 기피할 때 그는 사학자로서 그리고 실천하는 지식인으로서 당대사를 외면할 수 없었고, '현대사'가 참혹한 수렁에 빠져 있을 때 필을 든 것이다. 

해방 후 분단시대 부문이 이 책의 절반을 차지했다. 아마 역사서로는 비교적 많은 분량이 서술된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시대에 대한 역사학 쪽에서의 연구성과는 지금까지 거의 없었고 주로 사회과학 부문에서의 연구업적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우리 역사학이 동시대 연구를 적극적으로 진행하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회과학 측의 연구 성과는 역사적으로 종합 정리하는 데도 그 구실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 아래서 해방 후 분단시대는 역사의 시대로서 개설화 내지 시대사화하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일제식민지시대를 통해 민족사학자 박은식이 자기의 시대를 <한국통사>와 <한국독립운동지혈사>로 정리한 사실만을 보더라도 분단시대 역사학이 당연히 담당해야 하는 부분의 연구 및 서술을 기피하고 있음이 명백하다 할 것이다. (주석 3) 

책의 구성을 살펴보자.

제1부 식민지배와 민족해방운동의 추진, 제1장 식민통치의 실상, 제2장 민주해방운동의 전개. 제3장 식민지 수탈경제의 실태, 제4장 식민지 문화정책과 저항운동, 제2부 민족분단과 통일운동의 전개, 제1장 분단체제의 형성 강화, 제2장 민주·통일운동의 전개, 제3장 식민지 유제 처리와 경제발전, 제4장 분단시대의 사회와 문화 등으로 짜여있다. 

제2부는 △민족분단의 과정 △6.25 전쟁 △분단체제의 강화과정을 소개하면서 이승만 정권 이래 장면·박정희·전두환 정권을 훑는다. 자신이 직접 핍박을 받은 시기이지만, 객관적인 서술로 일관한다. 사가의 공정성을 지키고자 노력한 흔적을 찾게 된다. 

그는 뒷날 이 책의 저술·출판과 관련,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해직기간에 <한국근대사> <한국현대사>와 <분단시대의 역사인식>의 후속편이라 해도 좋을 <한국민족운동사론>(1985)을 썼다. 쉽게 풀어쓴 우리 근현대사 책이 귀하던 때라 이 책들은 생각 외로 많이 읽혔고, 근대사와 현대사를 일본어로 번역되기도 했다. 

우리 역사학계에서는 순수 실증논문과 나름대로의 사론을 제시한 말하자면 사논문(史論文)이라는 글을 엄격히 구분하는 편이다. 실증 일변도의 역사논문과 사론은 물론 구분되어야 하지만, 순수 실증 논문만을 학문적 업적으로 간주하고 사론은 일종의 '잡문'으로 취급하는 것이 우리 학계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아카데미즘을 고집하면서 순수 실증논문만을 써야 학자로 대접되고, 사론 같은 글을 혹시라도 쓰면 흔히 학자라기보다 논객으로 취급되기도 한다. (주석 4)

그는 주가 달린 학술논문을 많이 쓰기도 했지만,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각종 '사론(史論)'도 많이 집필했다. 학자이면서 논객이 된 것이다. 그를 상아탑이 아닌 광야로 내쫓고, 그리고 논객으로 만든 것은 군사독재정권이었다.


주석 
1> 강만길, <한국현대사 책 머리에>, <한국현대사>, 창작과비평사, 1984.
2> 송건호, <현대사 연구의 문제점>, <청암 송건호>, 497쪽, 한겨레출판, 2018.
3> <한국현대사 책머리에>, <한국 현대사>, 창작과비평사, 1984.
4> <역사가의 시간>, 264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실천적 역사학자 강만길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강만길평전 #강만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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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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