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세화 선생은 모든 것을 품은 '무지개'였다

홍세화 선생 시민사회 추모제 김찬휘 추도사... '소박한 자유인이 됩시다'

등록 2024.04.22 09:41수정 2024.04.22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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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0일 오후 6시, 세브란스병원 신촌 장례식장에서 진행된 홍세화 선생 시민사회 추모제에서 올린 추도사를 싣습니다. [기자말]
먼저 선생님 마지막 가시는 길, 끝까지 간호해 주시고 돌봐주신 소박한자유인과 노동당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저는 소박한자유인에서 선생님을 처음 만났습니다. 2016년, 17년쯤이었던 것 같은데요. 그리고 감사를 계속했습니다. 소박한 자유인 감사. 그래서 선생님이 돈을 함부로 쓰는 게 없는지 부정하게 쓰는 게 없는지 약속한 대로 활동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철저히 감사를 했습니다. 감사 결과 적발된 건 없었습니다.

선생님을 기억해 봅니다. '잘 놀던 사람'이었던 기억이 확실히 납니다. 저는 당구를 못 쳐서 같이 쳐본 적은 없는데 제 눈앞에서 선생님이 지는 걸 본 적은 별로 없습니다. 선생님하고 바둑, 포카, 마이티, 마작 등을 했는데요. 제가 제대로 이긴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절대 놀 때는 봐주지 않습니다. 아주 집요하게 이기려고 하고요. 이기면 굉장히 신나 하셨습니다. 특히 함께 노는 거를 좋아했던 분으로 기억합니다.

두 번째로 기억이 나는 거는 '잘 듣는 분'이었습니다. 둘러앉아 있거나 뒤풀이를 가거나 말씀이 별로 없으십니다. 주로 들으시죠. 경청하시는 분이셨습니다. 보통 연배가 낮은 사람은 나이 든 사람하고 술 먹으러 잘 안 가지 않습니까? 자기 얘기만 할 거니까요. 반대로 많은 이들이 선생님하고는 항상 술 먹으러 가고 싶어했습니다. 선생님이 말씀이 적었지만 오히려 그 모습에서 많은 걸 배웠던 것 같습니다.

선생님이 어떤 사람인가 한마디로 얘기하기 굉장히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단 정당만 해도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노동당을 제일 열심히 하셨지만 제가 속해 있는 녹색당에 2022년에 가입을 하셨습니다.
 
 조기 - 한겨레신문사. 노동당. 녹색당
조기 - 한겨레신문사. 노동당. 녹색당김찬휘
 
그때 제가 선생님한테 물어봤어요. 선생님 녹색당에 들어오신 거 SNS에 올려도 될까요? 선생님은 "올리라고 든 거지. 올려야지. 이중당적 금지라는 말도 안 되는 악법을 널리 알려야지" 하셨습니다. 그래서 널리 알렸습니다.

작년에 2023년 6월에 송도에서 세계 녹색당 총회가 열렸습니다. 그때 이미 선생님이 와병 중이신 걸 알았기 때문에 반드시 모셔서 말씀을 듣고 싶었습니다. 연설을 녹음해 놓은 게 없어서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한 구절은 똑똑히 기억합니다. 진보정당 운동이나 사회운동하는 사람들한테 하는 말씀이었겠죠.
 
 세계녹색당 총회(2023.6.) 한국녹색당 전당대회에서 연설하는 홍세화 선생
세계녹색당 총회(2023.6.) 한국녹색당 전당대회에서 연설하는 홍세화 선생녹색당
 
'고객 마인드로 살지 마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보통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을 사면 상품을 사는 순간 그 상품의 좋은 점보다 흠집을 잡으려고 한다는 거예요. 그리고 흠결이 하나만 보이면 반품한다는 거예요. 마치 정당 활동도 이렇게 하는 사람이 많다. 좋은 점을 보려하지 않고 상대의 흠집만 잡으려 하고, 그게 보이면 같이 못한다 나간다 하는데, 이러지 마라. 대충 이렇게 말씀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선생님은 정당 외에도 한겨레신문도 하셨고 소박한자유인도 하셨고, 난센, 마중 등 난민 이주민 활동 열심히 하셨습니다. 기본소득 운동도 열심히 하셨고 아까 얘기했던 장발장은행도 열심히 하셨습니다. 이 중 어떤 것이 선생님이었을까? 저는 그 모든 것이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중 어떤 하나에 대한 기억이 저마다 더 도드러져 있긴 하겠지만, 그중의 하나를 특권화시키거나 혹은 어느 하나를 빼고 선생님을 기억하는 것은 선생님에 대한 온당한 대우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선생님이고, 선생님은 굳이 한마디로 하면 '무지개'가 아니었을까 선생님은 모든 빛깔을 다 하나로 품고 계신 무지개였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굳이 선생님을 하나로 표현하고자 한다면 저는 선생님 스스로 이름을 지었고 말년에 가장 애착을 갖고 활동하셨던 '소박한 자유인'이 선생님을 설명하는 가장 적절한 표현이 아닐까 싶습니다.


선생님이 2020년에 쓰신 책 '결. 거침에 대하여' 책을 보면 자유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십니다. 끊임없이 회의할 수 있는 자가 자유인이다. 회의를 할 줄 아는 사람이 항상 나를 새로 지을 수 있는 사람이다. 선생님은 이것을 '나를 짓는 자유'라고 말씀을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고칠 것이 없거나 자기 집을 다 지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절대 회의하지 않고 따라서 묶여 있는, 자유인이 아니다는 말씀을 하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유인 앞에 소박이라는 말이 붙었나 봅니다. 끊임없이 회의하는 자는 소박할 수밖에 없겠죠. 자기가 잘났다고 할 수도 없겠죠.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이 가장 옳고 남의 생각은 다 틀렸다고 얘기할 수 없겠죠. 끊임없이 회의하고 생각을 연결하고 연대해 가고 그렇게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맨 마지막에 쓰신 글자가 '겸손'이 아닌가 싶습니다. 겸손하게 소박한 자유인으로 사는 게 선생님이 남긴 말씀이 아닌가 싶고요.

여러분 다 읽어보셨겠지만, 한겨레신문 마지막 절필하면서 쓰신 글에 보시면 "자연과 사람의 관계, 비인간 동물과 사람의 관계,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성장하는 게 아니라 성숙하는 것이다." 그게 선생님의 마지막 유언 같습니다.

요새 SNS에 보면 그런 말이 많더라고요. 이분도 가시고 저분도 가시고 우리가 따를 어른이 이제 어디 있느냐?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신 게 아닐까요? 다른 어른을 찾지 말고 너희들 스스로 어른이 되라. 우리 모두 선생님의 뒤를 쫓아서 성숙한 어른이 됩시다. 감사합니다.
 
 홍세화 선생 시민사회 추모제
홍세화 선생 시민사회 추모제소박한자유인
 
#홍세화 #김찬휘 #소박한자유인 #노동당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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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제도개혁연대 대표.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운영위원. 농어민기본소득전국운동본부 교육홍보위원장. YouTube 김찬휘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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