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우리는 매일 죽음을 입는다> 표지.
부키
1962년 미국의 해양생물학자 레이철 카슨이 <침묵의 봄>이라는 책을 펴냈다. 당시까지 곤충이 일으키는 여러 질병에서 벗어나고자 해충 박멸을 위한 농약, 살충제, 제초제 등을 엄청나게 사용했는데, 이 책이 그 이면을 제대로 들여다봤다. 인간의 삶을 위한다는 문명의 이기가 오히려 인간과 자연을 파괴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파장은 가히 어마어마했다.
문명의 이기가 오히려 인간을 해할 수 있는 유명한 사례는 무수히 많은데, 영화 <다크 워터스>로 더더욱 유명해진 듀폰의 'PFOA(과불화화홥물 일종)'가 있다. 인체에 유해하기 짝이 없는 이 화학물질을 프라이팬과 의류 코팅 등에 사용되는 테플론을 중합할 때 필요로 했다. 하지만 듀폰은 이를 알고도 은폐했던 것이다. 그 파장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미국 저널리스트 올든 위커가 지은 <우리는 매일 죽음을 입는다>(부키출판)가 말하고자 하는 바도 결이 같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의식주' 중에서 '의(衣)'에 해당하는 옷, 매일 입어야 하는 옷에 호르몬을 교란시키고 피부병과 호흡기 질환, 심지어 암까지 유발하는 독성 화학물질이 있을 수 있다는 충격적 주장을 전한다. 믿을 수 없이 무시무시한 주장이다. 어찌 옷을 입지 않고 살 수 있을까.
보다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옷이 인체에 유해하다는 게 사실이라면, 옷이 우리 몸을 망가뜨리는 게 사실이라면 삶을 대하는 태도 자체가 완전히 달라져야 할 것이다. 저자가 유독한 옷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미 항공사 승무원이 새롭게 받은 유니폼을 입은 후 건강이 심각하게 안 좋아졌다는 사건을 접한 후였다.
어딘가 불편한 새 옷, 내가 아니라 옷이 문제일지 모른다
생각해 보면 종종 그런 일이 있었다. 새 옷을 입고 기분 좋게 집을 나섰는데 어딘가 불편했다. 옷이 몸에 맞지 않아서가 아니라 옷이 피부에 맞지 않는 듯한 느낌. 그럴 때면 내 피부와 이 옷이 서로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이 옷에 문제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 책은 다름 아닌 '옷'에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먹는 것과 다르게 입는 것에는 성분 목록이 표시되지 않는다는 것. 의식주 중에서 '식(食)'은 아주 오래전부터 무엇보다 귀하게 여겨 왔지만 상대적으로 의, 즉 입는 것은 덜 귀하게 여겼다. 성분 목록을 표시할 이유도 의무도 없었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혹시라도 옷에 독성물질이 있다면 우리는 그 독성물질을 먹고 있는 것과 다름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승무원 유니폼에만 문제가 있는 걸까? 일반인이 흔히 입고 다니는 보통의 브랜드 옷에선 별 문제가 없는 걸까? 그렇진 않다. 유아동복 브랜드 카터스의 옷을 입고 아이에게 발진이 생겼다고 수천 건의 신고가 접수되었고, 빅토리아 시크릿의 속옷을 입고 심한 발진이 생겼다고 수백 명의 여성이 집단 소송을 제기한 적이 있다.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는 특정 분야의 강자들이다.
하지만 카터스의 경우 '피부가 민감한 일부 아기에게서 나타나는 드문 알레르기 반응'이라고 결론지었고, 빅토리아 시크릿의 경우 포름알데히드가 발견되었지만 건강 문제를 일으킬 정도의 수준은 안 된다는 이유로 소송에서 승리했다. 수백, 수천 명에게 동시다발적으로 문제가 발생했지만 '극히 소수에게 발생한 문제'라며 묻고 지나가 버린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우리 스스로 알아서 잘 알아보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몸을 자신이 직접 챙기는 것이다. 저자도 동의하는 듯, 독성 없는 옷을 고르고 관리하는 법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름도 생소한 화학독성물질들 때문에 피부질환, 호흡기 질환, 각종 알레르기뿐만 아니라 불임, 자가면역질환, 나아가 암까지 걸릴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