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책' 전후의 마음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책 출간하며 느낀 것들... 책은 내 돈으로 사서 보는 거예요

등록 2024.04.26 17:45수정 2024.04.26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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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제가 쓴 책인데 좀 사주시면 안 될까요?" 


수년 전에 처음 본 한 중년남자. 처음엔 고객인 줄 알았던 그는 내가 일하는 은행 창구 앞에 서서 책 한 권을 건넸다. 

그 책은 자신이 쓴 소설인데 직접 팔러 다니는 모양이었다. 내게도 한 권만 사달라고 부탁했다. 은행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지만 그가 내민 책 제목도 선명히 기억한다. 그때 나는 돈 만 원을 주고 읽지도 않는 책을 샀었다.

글 써서 돈 버는 건 예나 지금이나 어려워 보인다. 당시 책을 샀던 이유는, 만 원으로 누군가의 꿈을 응원할 수 있다면 괜찮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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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의 봄이 되고 싶다> 책표지, 사는이야기 모음집. 표지는 조카에게 부탁했고, 추천사는 KBS드라마피디 최윤석 작가님이 썼다. 타이틀은 책 속에 담긴 유일한 소설 제목이다. ⓒ 전미경

 
출간이 쉬워진 세상이다. 나를 브랜딩 하자며 책을 위한 책이 나올 정도로 책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하지만 책이 잘 팔리는 시대는 아니라고 한다. 쓰는 사람은 계획하지 않아도 어떻게든 책을 내고, 언젠가는 출간의 꿈을 가지고 있으니 책이 점점 넘쳐날지 모른다. 

나도 얼마 전 책을 냈다. 넘쳐나는 책들 속에 나 역시 일조했으니 읽는 사람에 비해 쓰는 사람이 많다는 말도 어느 정도는 맞는 것 같다(관련 기사: <오마이뉴스>에 쓴 '생활기사'들로 책을 냈습니다 https://omn.kr/28ejb ).    
  
"나이 오십 넘어서 꿈을 이뤘네" 하는 소리에 " 무슨 소리! 나 아직 꿈 안 이뤘는데... 난 베스트셀러 작가가 꿈이야"라고 기어 나오는 소리라도 소리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혹시 그가 내게 꿈 깨라고, 현실을 직시하라고 할까 봐서다. 

그래도 요즘은 '개인 브랜딩' 시대 고 꿈은 클수록 좋다니까 원대한 꿈을 품고 출판사 등록도 했었다. 초간 출판이라는 부담감에 등록한 출판사 이름을 달진 못했지만 여전히 꿈은 남아있다. 


책을 준비하면서 원고를 보내고 형식 검수에만 퇴짜를 4번이나 받았다. 플랫폼이 불편하다고 불평을 했더니 담당자가 "책 출간 하는 걸 흔히 산고에 비유하잖아요. 그만큼 힘든 작업이에요. 작가님이 말씀하신 불편했던 부분은 참고해서 개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라고 친절한 답변을 했다. 

산고라는 표현에 숙연해졌다. 돌이켜보면 플랫폼이 불편한 건 없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나의 무지로 불편하게 느껴졌을 뿐이다. 모든 책의 홀수 페이지가 우측에 자리한다는 것도 나중에 알았으니 누굴 탓하랴.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아는 것을 넓혀갈 수밖에. 책을 만들면서 단지 기술적인 것뿐 만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와 마음까지 알게 되니 온 감각이 다 동원되는 것 같다. 출산 같은 출간에 쉬운 것은 없었다. 

자신이 경험하지 못하면 이해 못 하는 것들이 있는데 내게는 출간도 그랬다. 출간 전후의 마음이 완전히 달라졌다. 책만 나오면 좋겠다 싶었는데 막상 책이 나오자 이전의 나와는 다르게 홍보 마케팅을 하고 싶었다. 이왕 세상에 나왔으니 더 많은 사람이 봐줬으면 하는 욕심이 생긴 것이다. 

그렇다고 오래전 그 중년남자처럼 무작정 사무실을 찾아다닐 수도 없고 시대에 맞게 SNS 홍보를 해야 하는데 그마저도 없으니 무기 없이 전쟁터에 뛰어든 꼴이었다. 더구나 홍보라는 것이 자칫 잘못하면 역효과에 비호감이 될 수 있기에 신중해야 했다. 네트워크도 브랜딩도 전혀 없으니 막막했다.
     
일단 친한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책이 나왔다고 알렸다. 언니는 "책 낸 거 축하해. 근데 책 나오면 선물하던데 너는 그런 거 안 하니? 다른 사람들은 막 공짜로 주고 그러던데"라고 한다. 

예상하지 못했던 반응에 들떠있던 마음이 오히려 차분해졌다. 그래. 사람들은 책을 쉽게 생각할 수도 있다. 아니 쉽게 책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책에 대한 '마음만'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저 책이라는 장식품을 책꽂이에 전시해 놓는 것으로 위안 삼는 것처럼. 나도 내 책을 내기 전에는 그랬던 거 같다. 쉽게 생각했다. 책을. 마치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몇 년 전 지인이 처음으로 수필집을 냈을 때 책을 선물 받았다. 의례히 그러는 줄 알고 쉽게 생각했었다. 지금 와 생각해 보면 나의 무지로 무례했던 거 같다. 일부러 내게 찾아와 정중히 건넨 그 책에 대한 예의가 있었나.

그때 지인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책에 관심 있으니까 주는 거예요. 관심도 없는 사람들은 줘봤자 냄비 받침 밖에 더하겠어요?"라고. 그때 선물을 거절하고 "제가 직접 사서 볼게요" 했더라면 더 좋았을걸 하는, 뒤늦은 마음이 든다. 

지금 내가 책을 내보니 함부로 선물할 수가 없다. 내 새끼 같은 내 책을 공짜로 쉽게 내줄 수가 없었다. 마음이 담긴 책의 가치를 부여하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그런데 친한 언니가 책을 공짜로 달라고 하니... 나 역시 솔직하게 말했다 "언니, 나는 선물 없어. 책은 사서 보는 거야."라고 했더니 깔깔깔 웃는다. 웃어서 다행이다. 꿈을 응원받기에는 꿈꾸는 사람이 너무 많은 건지도 모른다. 

책이 글의 가치로 인정받을 최소한의 권리라고 생각한다면 강요의 오류일까. 요즘 누가 책을 보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다. 친구와 만나 차 한잔 마시는 비용을 지불하고 독립된 한 사람의 세계를 만나 포스트잇을 붙이며 자신만의 책장을 기록해 나가는 것도 멋진 독서법이라고 생각한다. 

실제 그렇게 자신만의 문장에 밑줄 그어 가며 생각을 나누듯 독서하는 사람을 보았을 땐 경이롭기까지 했다. 그렇게 자신이 읽은 수많은 책이 자신의 기록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책을 통해 많이 배우는 중이다.

책을 냈다고 하면 내게 어떤 장르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 이런 질문은 진심처럼 느껴져 책 설명을 한다. 수필형식의 생활기사랑 독특한 소설 한 편들어있다고 했더니 "아, 그런 글 좋아해요." 하면서 구매 인증을 보내오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 이를 만나면 힘이 난다.

그렇게 '내 책, 내가 팔자'라고 했더니 누군가 그것도 작가정신이라고 한다. 아직 작가라는 말은 어색하다. 작가라는 명사대신 '글을 쓴다'라는 동사가 편하다. 언젠가 '집필자'로서의 문인이 되고 싶은 욕망도 있지만 지금은 베스트셀러의 바람이 더 크다. 꿈은 꿈꾸는 사람의 것이니 잠시 꿈꾸는 응원정도로 봐주면 좋을 것 같다.

오늘도 나는 나를 브랜딩 하며 책이 나왔다고 알린다.           
#책홍보 #마케팅 #브랜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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