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가 9일 저녁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김대중 전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9주년 기념 특별 강연회에서 '국민의 정부'의 업적과 역사적 성격에 대해 특강하고 있다.
남소연
1997년 초에 강만길은 PC통신을 운영하는 기업체로부터 색다른 제안 하나를 받았다. 그 기업에서 개설하는 가상대학(Cyber University) 교육 과정에 한국 근현대사 강의를 넣고 싶다는 제안이었다. 강의는 한 달에 두 차례였고, 대상은 일반인이었다.
학생이나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을 상대로 우리 근현대사를 강의하는 것도 좋은 일인 것 같아서 흔쾌히 승낙했다. 이미 <한국근대사>와 <한국현대사>를 저술했던 터라 특별히 강의안을 마련하는 일이 힘겨울 것 같지도 않았다.
그렇게 해서 1997년 말부터 1년 동안 가상대학에서 총 24회를 강의했다. 그리고 이듬해 두 강을 더 추가했다. 이때 강의한 내용에 <강의를 시작하면서>와 <강의를 마치고>를 덧붙여 <20세기 우리 역사>(창작과비평사, 1999)라는 책으로 펴냈다.
세월이 흘러 20세기가 지나고 21세기가 열렸다. 그사이 1998년에 김대중 정부가 수립되었고, 이는 20세기 말에서 21세기 초까지 계속되었다. 역사의 맥락을 중요시한 강만길은 기존 내용에 이 과정까지를 포함하여 증보판을 냈다. 그리고 뒷날 이 책은 다시 '강만길 저작집 12'로 다시 출간되었다.
그는 역사 강의 노트를 책으로 내면서 '역사를 강의하는 목적'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단어나 공식을 하나 더 외우는 것처럼 지식을 더 축적해 가는 그런 단순한 일이 아닙니다. 민족사이건 인류사이건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목적은 스스로 역사를 영위해 가는 데 도움이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역사를 영위해 가는 큰 목적은 한마디로 내 민족 네 민족 할 것 없이 이 세상 사람들 모두의 삶이 한층 더 나은 것으로 되게 하는 데 있다고 하겠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삶이 한층 더 나아진다는 것은 간단히 얘기해서 모든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한층 더 평등해지고, 경제적으로 한층 더 고루 잘살게 되며, 사회적으로 한층 더 평등해지고, 문화·사상적으로 한층 더 자유로워짐을 말한다고 할 수 있지요. (주석 1)
이 책의 차례만 보아도 20세기 우리 역사의 중요 맥락을 살필 수 있다. 차례는 다음과 같다.
01강의 한반도는 왜 일본에 강점되었을까요
02강의 무단통치와 '토지조사사업'의 진상을 알아야 합니다
03강의 3·1운동의 역사적 의의는 대단히 큽니다
04강의 1920년대 '문화정치'의 본질을 알아야 합니다
05강의 일제강점시대, 조선 민중은 어떻게 살았을까요
06강의 1920년대의 '산미증식계획'은 왜 실시되었을까요
07강의 조선공산당운동도 민족해방운동의 일환입니다
08강의 민족유일당운동·신간회운동이 추진되었습니다
09강의 일제의 '병참기지화'도 경제개발로 봐야 할까요
10강의 1930년대 '만주'에서는 항일무장투쟁이 치열했습니다
11강의 중경임시정부가 좌우익 통일전선정부로 되었습니다
12강의 일제의 파쇼체제 아래서도 민족해방운동은 계속됐습니다
13강의 해방은 어떻게 왔으며, 38선은 왜 그어졌을까요
14강의 통일민족국가 수립에 실패한 과정을 알아야 합니다
15강의 '해방공간'에서도 통일민족국가 수립운동은 추진됐습니다
16강의 불행하게도 남북 두 분단정권이 성립했습니다
17강의 남한의 농지개혁과 적산불하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18강의 6·25전쟁은 왜 일어났으며, 어떤 전쟁이었을까요
19강의 독재화한 이승만정권은 무너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20강의 4·19'혁명'의 역사적 의의는 무엇일까요
21강의 5·16군사쿠데타는 왜 '성공'했을까요
22강의 7·4남북공동성명은 큰 역사적 의미를 지닙니다
23강의 박정희정권의 경제건설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24강의 왜 또 전두환 군사정권이 들어섰을까요
25강의 직선제로 노태우 군사정권이 성립했습니다
26강의 30년 군사정권 뒤 김영삼 문민정권이 섰습니다만
27강의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로 김대중정권이 섰습니다
28강의 민족통일의 신기원이 열렸습니다
'강만길 저작집 12'에 <해제>를 쓴 최상천 교수의 <20세기 우리 역사의 역설>의 한 대목을 보자.
그는 역사학이 아니라 현실을 보기 시작했다. 손가락이 아니라 달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강만길이 마주한 현실, 거기에는 암울한 반공독재체제와 그로부터 고통받은 사람들의 신음소리가 가득했다. 이것이 현실이고, 그 현실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역사적 과정을 통해 태어난 '역사적 현실'이었다.
이런 '역사적 현실'에 살면서, 그 현실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옛날얘기나 하는 게 역사학인가? 눈앞의 '역사적 현실', 그 속에서 몸부림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무지몽매하고 오불관언하면서 조선 후기에 자본주의 맹아가 생겼다는 걸 증명하는 게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강만길은 이런 반성으로부터 역사학의 새로운 지평, 새로운 존재본질을 모색한다. 그 핵심은 학문의 실천성, 역사학의 실천성이다. (주석 2)
주석
1> 강만길, <20세기 우리 역사>, 창비, 2018, 15쪽.
2> 위의 책, 4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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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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