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 백화점 상품 박물지
혜화1117
나는 쇼핑 카탈로그나 전단지를 보는 것을 좋아했다. 얇은 종이를 화려하게 채우고 있는 그 상품들을 모두 손에 넣을 만한 능력은 없었지만 말이다. 심심풀이로 전단지를 들춰보던 어릴 적부터 더 '합리적인' 물건을 찾아봐야 하는 최근에 이르기까지, 쇼핑 카탈로그는 한 번쯤 들춰보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었다.
<경성 백화점 상품 박물지>는 한국에 백화점이라는 공간이 처음으로 만들어진 일제강점기 시기, 그곳에서 판매하던 물건들과 그 내력을 한 데 담아 그려낸 책이다. 현대의 백화점 층별 안내도와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한 책의 목차는, 백 년 전 상품들의 수많은 광고는 물론 이 상품들이 어떻게 서구에서부터 일본을 거쳐 식민지 조선으로 수입되었는지에 대한 상세한 내력 풀이로 이어진다.
'박물지'라는 제목답게 성실하고 꼼꼼하게 수집된 상품 광고들을 보고 있으면, 마치 현대의 백화점 상품 카탈로그를 넘기고 있는 듯한 기분도 든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백 년 전의 물건일 텐데도 광고 문구를 다시 한번 읽게 만들고 괜히 혹하게 만드는 힘이 아직 거기에 남아 있는 것이다.
"찬란한 일류미네이순과 쇼윈도, 엘레베이터, 에스카레이터와 마네킹과 그리고 옥상정원 이러한 것들이 주출하는 특이한 긔분 이것이 근래의 요귀(妖鬼) 데파-트먼트가 가지고 있는 분위긔와…."
본문 중에서
이 '요귀' 같은 힘은 상품이 자극하는 인간의 욕망과 연결되어 있다. 이 요귀는 광고의 문구와 이미지라는 형태로 그 시대의 욕망을 투영하고, 그 시대의 욕망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서구에서, 일본에서 수입된 것', '세련된 것', '비싼 것'에 대한 근대 조선의 욕망이 거기에 끓어 넘치고 있다. 그중 일부는 아직까지 유효할지도 모른다.
저자는 한 인터뷰에서 이 책이 품은 '다양한 상품들의 출현과 소비는 하나의 프레임으로 묶을 수 없는 인간의 다채로운 욕망을 날 것으로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최근 유튜브에서의 쇼핑 하울
haul 이나 상품 리뷰 영상을 보듯이 읽어달라며 마무리했다. 나에겐 이 말이 묘한 울림으로 남았는데, 요즘의 상품과 광고가 보여지는 방식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카탈로그가 생산되긴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광고가 온라인에서 생산되고 배치된다. 그 형태 역시 '광고로 보이지 않는' 리뷰로, 또는 개인화된 상품 배치의 형태로 우리들의 눈앞에 나타나곤 한다. 광고가 그 시대의 욕망을 투영하거나 만들어낸다면, 오늘날의 이 광고 같지 않은 광고-카탈로그들은 또 어떤 욕망과 연결되어 있는 걸까.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참여연대가 1995년부터 발행한 시민사회 정론지입니다. 올바른 시민사회 여론 형성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