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군시절야외종합훈련을 마치고 천리행군을 하던 중 현충사 충무공 사당 참배를 위해 잠시 멈춘 모습
박정윤
현실에선 정치권을 비롯하여 갈라치기를 업(業)으로 하는 사람들은 잔인하리만치 순직자들을 자주 불러내고 있다. 어느 정권이냐에 따라 묘역 주변의 풍경은 사뭇 다르다. 진보정권 시절에는 유가족외엔 공식적인 추도행사가 없고 조용하게 지나가지만 보수정권에 하에서는 보통 연사까지 동원하여 성대하게 행사를 치른다. 똑 같은 하늘과 땅에서 살고 있지만 어느편에게는 구국의 영웅이고 누구의 눈에는 학살자인 것이다.
이념을 이용하여 편 가르기를 하는 일부 단체들의 행동은 유감이다. 통합을 전면에 걸고 출범했던 보수 정권이다. 진정성을 보여주는 노력이 있기를 바란다. 5.18 민간 희생자들을 폄훼하고 순직자들을 정략적 목적으로 자꾸 부각시키는 것은 상처입은 사람들의 생채기만 깊게 할 뿐 우리사회의 염원인 통합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순직군인들 스스로가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희생된 22인의 군인 중 사병들은 어떤 존재였을까? 평범한 아들이고 형, 동생이었을 그들은 왜 갑자기 동원되는지도 모르고 준비태세 하달과 함께 출동명령을 받고, 수송트럭에 태워져 현장에 투입되었다. 간부가 아닌 의무복무 중이었던 병사들은 눈앞에서 펼쳐지는 현장을 보고 진압 행위가 정의로운 행동인지 여부를 판단하기는 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계엄군 사망자 중 일부는 그야말로 불타는 구국충정의 심정으로 잔인한 진압 활동을 했는지도 모른다. 수많은 민간인이 다치고 사망했다.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군대가 오히려 국민을 살상하는 불명예를 남긴것이다. 세월이 흘러 돌이켜보니 그들이 왜 서로 죽이고 죽어야 했는지에 대해 어떤 설명도 없다. 그들을 이러한 비극의 현장으로 내몬 자들이 누구였는가? 누구도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다.
항쟁 발단의 최고위 책임자들은 호사를 누리다 천수를 다한 후 이미 죽거나 입을 다물고 있고, 피해자들과 먹이를 찾아 헤매는 자들만 남아 이전투구를 하는 형국이 됐다. 독재자들로부터 수혜를 받은 집단은 객관적 사실 여부를 떠나 그저 계엄군 신분의 순직자가 공산주의 폭도들과 싸운 영웅이라는 수식을 부여하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다.
위와같은 논리라면 4.19 의거 당시 무차별 발포한 경찰들도 민주주의를 전도하려 한 불순세력(학생)을 척결하려 애쓴 국가 유공자가 되어야 마땅 할 것이다. 떠난자들은 말이 없는데 이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만 요란하다.
불행한 일이지만 피할 수 없는 우리 세대의 운명이다. 앞으로 자라나는 세대가 동사실을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할 숙제를 떠 안았다. 대통합을 이루기 위해선 국민들이 먼저 항쟁의 본질을 알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념, 이해관계에 휘둘리지 말아야 함은 물론이다. 향후 우리 자식, 손자들은 왜 죽어야 하는지도 모르고 떠난 22위 계엄군의 운명을 되풀이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무의미한 죽음으로 내모는 자의 출현을 경계하고, 부당한 명령을 내리지 않을 지도자를 선택해야 한다. "나는 무엇을, 누구를 위해 싸우다 죽었나?" 계절의 여왕인 오월의 찬란함을 뒤로하고 그들의 통곡이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순직자의 부모들도 이미 연로한 나이가 되었고 형제자매들의 기억에서도 희미해질만큼 시간이 흘렀다. 아픈기억을 가슴에 묻을 수 있도록 위로하자. 이제는 영혼들을 놓아주는 게 우리의 마지막 예의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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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기관 근무 후 퇴직 객관적인 시선으로 글을 쓸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카카오브런치에서도 수필 및 산문을 등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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