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선 점차 사라지는 '까치밥', 가난한 날의 행복

[박도의 치악산 일기] 제 179화 이상태의 <까치밥>을 읽고

등록 2024.05.07 10:16수정 2024.05.07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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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태 지음 <까치밥>
이상태 지음 <까치밥> 한국산문
 
며칠 전 우체통에 두툼한 우편물이 꽂혀 있었다. 보낸 이의 주소 성명을 확인하자 아주 오랜 옛 친구였다. 우편물 봉투를 뜯자 이상태 수필집 <까치밥>이란 책이 나왔다. 그와 나는 그야말로 '죽마고우'로 경북 구미초등학교 동기동창이다.

우리는 해방둥이 동갑으로 1952년에 구미초등학교에 입학하여 1958년에 같이 졸업했다. 더욱이 우리 동기들은 그해 학령아동이 적었기에 남녀 각 한 학급으로 6년 내내 같은 반으로 지냈다.


나의 집은 당시 구미면 원평동 장터마을이었고, 그는 거기서 2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금오산 맞은 편인 선기동이었다. 그런데 그 선기동마을에 우리 집 논밭이 있었기에 무시로 그 동네를 지나다녔다. 그랬기에 우리는 더욱 친밀했다. 더욱이 6.25전쟁 당시 초기 우리 식구들은 피란지로 그 마을 앞 냇가에서 피란했다. 그때 우리 조무래기들은 군것질할 게 없어 선기동 이웃 덕뱅이 마을에서 풋감을 배불리 주워 먹었다. 그런저런 일로 그 시절에 얽힌 추억이 많다.

책장을 펼치자 모두 6장, 각장 6편으로 36편의 에세이들이다. 그는 소년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때그때 단상들을 반추하여 차근차근 옛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있다. 나는 그 시대를 관통하면서 살았기에 그의 얘기가 마치 내 얘기로 들렸다.

그는 가난한 시골 소년임에도 대도시(대구) 중학교로 진학했다. 하지만 부모님은 그의 뒷바라지로 갖은 고생을 다하셨다.

"… 어쩌다 골목에서 '아이수게끼!' 하는 어머니의 어설프고 애잔한 외침을 들을 때가 있었다.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내 속이 다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이런 내 기분과는 달리 어머니는 전에 없이 신이 나 있었다. 집에 들어와서 구겨진 돈을 세는 어머니의 표정이 그랬다.

어머니는 동네에서 아이스케이크를 가장 잘 먹어주는 곳은 양색시 집이라고 했다. 골목으로 들어오는 입구에 야하게 차려입은 여자들이 마당에서 깔깔거리고, 가끔 미군들이 들락거리는 집이 하나 있었다. 사람들은 그곳을 양색시 집이라고 불렀다.


어머니는 미군이 와 있기라도 하는 날 그 집에 가면 (아이스케이크) 통을 말끔히 비울 수 있다며 좋아했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하는 어머니가 창피해서 공부고 뭐고 다 그만둬 버리고 어디 먼 곳으로 달아나고 싶었다. …"
- 본문 31쪽 '아이스케키' 중에서

  
 전방으로 떠나는 아들에게 물 바가지를 건네는 어느 어머니(1950. 12. 18. 대구,)
전방으로 떠나는 아들에게 물 바가지를 건네는 어느 어머니(1950. 12. 18. 대구,) NARA
 
"새로 이사한 3층 아파트 창밖에 감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다. 감나무 키가 내 아파트 높이만큼으로 마치 나를 위로 하듯이 날마다 내 방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는 감나무가 유달리 정겹다. 어렸을 때 감나무와 친하게 지냈기 때문일 것이다.

뜻밖에 만난 감나무 덕분에 서먹했던 새 아파트 생활은 견딜 만했다. 어느 덧 여름이 가고 창밖의 감들도 조금씩 붉은 색을 띠며 익어가고 있었다. 머지않아 감나무는 붉게 익은 감알로 누드쇼를 시작할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 정경에 흘려 탄성을 지를 것이다.


그런데 이게 웬 날벼락이란 말인가. 어느 하루 귀가하자 감나무에 감이 한 알도 보이지 않았다. …"
-본문 59쪽 '까치밥' 중에서  

 
 사람과 소가 더불어 살다(2005. 5.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 말무더미마을).
사람과 소가 더불어 살다(2005. 5.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 말무더미마을).박도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가는 현대인

옛 사람들은 집집마다 감나무나 가죽나무, 대추나무, 그리고 소, 개, 닭 등을 집안에 심어두거나 기르면서 그들과 더불어 함께 살았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그들과 한 식구처럼 지냈다. 서리 내리는 늦가을 감을 딸 때 감나무 맨 꼭대기 가지의 감은 '까치밥'이라 하여, 알부러 까치를 위해 한두 개씩 남겨두었다.

그러면 산야에서 굶주린 까치들이 집안으로 찾아와 그 '까치밥' 감을 맛있게 쪼아 먹은 뒤 날마다 집 언저리로 찾아와 감사의 아침 인사를 했다. 그뿐 아니라 멀리 시집간 딸이나 군에서 제대하고 돌아온 막내아들의 귀향 소식을 가장 먼저 그 까치가 귀띔하기도 했다.

이즈음 도시인들은 '까치밥'이 뭔 줄도 제대로 모르거니와 야생동물에 대한 배려심도 사라져 버렸다. 오로지 사람만 사는 세상, 사람만을 위한 세상으로 변해 가는 세태다. 그 결과 동식물뿐만 아니라, 이제는 점차 이상 기후니 자연 파괴 등등 사람조차도 살 수 없는 세상으로 변해 가는 건 아닌지?

이상태의 '까치밥' 수필집을 읽는 내내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그나마 사람들에게 남아 있던 낭만이랄까, 자연에 대한 사랑과 배려심도 점점 사라져 가는 게 아닌지 하는 기우심이 커진다.

책을 읽는 내내 모처럼 사라져 가는 미풍양속과 '가난한 날의 행복'을 되새김질 한, 참으로 귀한 시간이었다.

까치밥

이상태 (지은이),
한국산문, 2024


#까치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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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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