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에게 배운 인생의 비밀 여섯 개... 우리는 잘 살고 있을까요?

'모든 것은 변한다', '직접 체험하지 않으면 내것이 되지 않는다' 등

등록 2024.05.12 12:03수정 2024.05.12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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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오신 날이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어서 오셔서 갈등으로 인해 상처를 입고 아파하는 중생들을 위로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필자는 불교 신자가 아니지만 고즈넉한 사찰을 찾아 나 자신에 대해 돌아보기를 좋아합니다. 어쩌면 신도로서 제대로 된 보시를 행하는 일은 없고 도움만 받으려는 이기적인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세상사는 주고받는 것이라고 했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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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 사찰내 불상 ⓒ 박정윤

 
전부터 불교의 공(空)사상이 무엇인지 궁금해지면서 책을 한두 권씩 구입했습니다. 처음 산 게 값싸고 부피가 작은 <반야심경>입니다. 불교 관련 책 저자를 보면 석씨 성을 가진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나라에 석씨가 생각보다 많은가 보네?' 그렇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아하, 그렇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육십 중반이고 상용 한자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지만, 신경을 써서 읽는다 해도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경전이 인도와 중국을 거쳐 한반도까지 먼 길을 오다 보니 우리말로 옮기는 데 있어 어려움이 있었던 듯 합니다. 해석하는 이의 주관도 개입될 수 있고요. 1300년 전 번역기도 없던 시절에 혜초 스님이 당나라를 거쳐 인도까지 다녀와서 <왕오천축국전>을 후대에게 귀한 유산으로 남기신 걸 보면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먹방이 불편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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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관련 서적 필자가 읽어 본 불교 관련 서적 ⓒ 박정윤

 
불교의 심오한 내용은 현재 수도자의 길을 걸으시는 분들과 관련 전문가의 영역이라 생각하며, 이 글에서 어설픈 얘기를 꺼내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필자는 제한된 범위 내에서 저에게 고개를 끄덕이도록 한 가르침에 대해 얘기하려 합니다. 

저는 부처님의 가르침 중 '불살생' (不殺生)을 첫째로 꼽습니다. 물론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먹이사슬로 얽혀있습니다. 내가 살기 위해선 남을 희생시켜야 하지요. 종(種)의 유지와 번식을 위하여 다른 생명을 해치는 것은 불가피하지만,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먹방'을 바라보는 건 불편합니다.  과도한 섭취 행위는 곧 많은 생명체의 사라짐으로 귀결됩니다. 또한 과식은 개인의 건강에 악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자원의 낭비와 쓰레기의 양산을 초래하지요. 왜 그러냐고요? 먹거리를 마련하기 위하여 셈하기 어려운 수의 가축을 사육해야 하고, 숲을 파괴하며 갯벌을 메워 농경지를 마련해야 합니다. 

둘은 '모든 존재는 그물처럼 연관되어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쉬운 표현을 빌리자면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다"로 말 할 수 있겠습니다. 부처님의 말씀 중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연기(緣起)는 제 수준에서 좀처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거꾸로 보면 이것이 없어지면 저것도 없어질 수 있다는 뜻으로도 이해됩니다. 무분별한 개발과 남획으로 동식물을 멸종의 상태로 몰아가면 곤란합니다. 홍역을 치렀던 코로나도 생태계 파괴가 몰고 온 광풍의 서곡일지 모릅니다.


생태계뿐만 아니라 인간사는 세상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채택한 자본주의는 경제 성장과 기술의 발전이라는 열매를 가져왔습니다. 반면 이면에는 성장에 대한 탐닉, 극단적인 경쟁에 뒤따르는 승자 독식,  배금주의에 따른 인명 경시와 같은 어두운 면이 병존합니다. 이러한 그림자는 수많은 사회적 약자들의 발생을 초래하게 했으며, 급기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가장 핵심적인 화두가 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국가, 기업, 고용주, 노동자, 자영사업자, 소비자, 부자, 가난한 자가 유기적으로 맞물려 촘촘한 톱니바퀴처럼 굴러가야 합니다. 그래야 건강한 사회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극단의 소득 격차를 보이는 나라들의 무법천지나 다름없는 약탈 행위를 미디어를 통해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이든 극단으로 치우치면 반동이란 현상이 일어난다고 알고 있습니다.


셋은 '모든 것은 변한다'라는 가르침입니다. 이는 성주괴공(成住壞空)이란 말로 설명합니다. 한자 의미만으로도 대략의 뜻이 다가옵니다. '이루어서 살다가 무너지고 결국은 비게 된다' 는 뜻인 듯합니다. 이 사자성어에 관통하는 핵심은 모든 것은 유한하다는 의미가 아닌가 합니다. 이러한 이치를 받아들인다면 세상을 살아가면서 흥하거나 쇠할 수 있고 결국은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진리를 평소에도 인식하면서 살아갈 수 있게 합니다.

인간이 자신의 마지막을 의식하고 지내는 것과, 천년만년 살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하고 사는 자세는, 삶의 태도에서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를 보여주게 됩니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란 말과도 결이 조금 통하는 듯합니다. 누구나 두려워하는 죽음에 대해서도 조금 더 자세히 이해할 수 있는 동시에 위안을 받을 수 있을 듯합니다. 애초부터 생멸(生滅)이 우주의 본질이라는 걸 알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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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등 달마사 내 설치된 연등 행렬 ⓒ 박정윤

 
넷은 '아상(我相)에서 벗어나면 자유롭다'는 말입니다. 아상은 업식, 카르마, 고정관념 등으로도 불립니다. 중생들은 나와 생각이 다르면 상대를 몹시 불편해 합니다. 자신이 제한적으로 보고 깨우친 것만으로 전체를 아는 양 착각합니다. 색안경을 끼고 본다는 말은 의심한다는 뜻 말고도 '아집'을 비유하는데도 유용합니다. 한마디로 내가 본 색깔만을 토대로 '나만 옳다는 생각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갈등을 필연적으로 동반합니다. 

아집을 버리면 관계가 획기적으로 개선됩니다. 금슬 좋은 부부가 되는 건 당연하고요. 일터에서든, 친구관계에서든, 사교모임에서든 어디서나 환영받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은 가장 대하기 어려운 사람을 연상해보라고 하면 누가 제일 먼저 떠오릅니까? 저는 아집에 사로잡혀 입이 석 자나 튀어나온 고집불통이 가장 먼저 그려집니다. 한때 베스트셀러였던 책이 있습니다. 책 제목은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I may be wrong>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일독을 권합니다.

다섯은 '마음이 문제다'라는 깊은 울림을 주는 가르침입니다. 마음먹기 달렸다는 말이 그냥 나온 건 아닐 겁니다. 불심 깊은 옛 어른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고 실제 경험을 통해 깊게 체험한 바를 후대에게 전하는 금언이라 하겠습니다. 괴로움을 자초하는 것도 마음이고 모든 걸 내려놓을 수 있게 하는 것도 마음이라고 귀띔해 줍니다. 우리의 마음은 진폭이 고르지 않고 높낮이 변화가 매우 큽니다. 일희일비하고도 친합니다.

가령 가까운 사람을 잃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정말 가슴 아픈 일입니다. 그러나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세에 따라 결과는 크게 달라집니다.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슬퍼만 하면 우리의 몸과 마음이 상합니다. 그렇다고 가신 이가 다시 돌아오지는 못합니다. 반면, 슬프지만 고인은 나름의 방식대로 삶에 충실하다가 자연의 부름에 순응했다고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동남아시아의 어떤 국가에서는 너무 빨리 세상을 떠난 사람에 대해서만 애도를 표한다고 합니다. 어느 쪽의 마음가짐이 우리의 삶에 더 바람직할 것인지는 자명합니다. 마찬가지로 탐욕, 집착, 타인과의 비교 등 바람직하지 못한 감정이나 심리 또한 마음먹기 여부에 따라 스스로 얽매여 고통을 자초하느냐, 아니면 가볍게 스쳐가는 감정으로 흘려보낼 수 있느냐가 결정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직접 체험하지 않으면 내 것이 되지 않는다'는 말 입니다. 탁상행정이란 표현이 있습니다. 달리 얘기하면 그 자리까지 가게 할 정도로 지식은 많은데, 현장에서 직접 문제를 마주한 경험이 없으니 상황에 걸맞는 지혜가 결여되어, 실질적인 대책을 내놓지 못함을 비유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수도자들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단순히 경전을 탐독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손수 고단한 수행(참선)에 나서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부처님 자비 더해진다면...

우리 집 둘째가 최근 발목 수술을 하여 두 달째 깁스를 하고 있습니다. 갑갑해서 죽겠다고 합니다.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대중교통 이용, 계단 오르내리기, 화장실 사용, 이웃에 층간소음으로 민폐가 되지 않을까 신경 쓰는 등 다양한 곳에서 어려움과 좌절을 경험중 입니다. 그나마 상병휴가라도 얻어서 회복에 전념하고 있어 다행이지만, 그럴 여력이 안 되는 직장이었다면 이미 해고되었을지도 모릅니다.

한두 해 전 우리에게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시위로 널리 알려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소속의 교통약자들이 왜 그토록 강경하고도 처절한 투쟁을 했는지 지금에서야 조금은 이해할 것 같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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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행 보조 도구 발목 수술 후 착용 또는 휴대했던 장비류 ⓒ 박정윤

 
어려운 상황에 처한 상대의 입장이 되어 경험을 해 보았을 때 우리는 비로소 그들의 아픔을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한 예로 미국 대통령으로서 뉴딜정책을 펼쳤던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주인공 입니다. 그는 명문가의 자손으로 태어났지만, 반신불수가 되는 장애를 갖게 됩니다. 하지만 정적들의 신체적 약점에 대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당선이 되었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정책을 펼쳤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부디 이처럼 훌륭한 지도자가 나타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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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속의 사찰 달마사 전경 ⓒ 박정윤


매해 계절의 여왕인 5월이 찾아오면 또 한번의 부처님 오신 날을 마주하게 됩니다. 나는 누구인가를 묻게 해 주는 귀한 기회이기도 합니다. 누군가 얘기했습니다. 대부분 "인생의 막판에 지혜를 얻는다"고 말이죠. 심지어는 경험에서도 배우지 못하죠. 중생의 한계입니다. 어리석음을 조금 빨리 깨우치는 사람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고 우리 모두가 수행자처럼 살 수는 없습니다. 세속에 둥지를 튼 이상 가족을 부양하고 먹고 살 일을 고민해야 하지요.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합니다. 다만 속도 조절이 필요 할 뿐입니다. 지치고 힘들 때 주저하지 말고 뒤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기 바랍니다. 여기에 부처님의 자비까지 더해지면 더욱 살만한 세상이 될 것입니다.
#부처님오신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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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기관 근무 후 퇴직 객관적인 시선으로 글을 쓸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카카오브런치에서도 수필 및 산문을 등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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