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버스에 승객들이 탑승하고 있다.
Andy Song
"오늘같이 하루 종일 쉬고, 다음 날 하루 종일 일하고. 그러니까 남들 이틀치를 하루에 일하는 개념이에요."
그랑씨는 격일제 근무를 한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하루 일하고 하루 쉬는 것이다. 버스 운전사의 하루는 굉장히 일찍 시작한다. 출근하는 날에는 첫 차를 기준으로 출근한다. 그게 대략 새벽 3시이다. 출근하자마자 구내 식당에서 밥을 먹는다. 새벽 3시에 밥을 먹는다니, 속이 부대끼지 않을까 걱정된다. 하지만, 그때 먹지 않으면 점심까지 밥을 먹을 수 없으므로 일단 먹는다. 도로를 달리고 있는 버스를 위한 식당은 없으니까.
그리고 버스 운행을 시작한다. 그러다보면 점심시간이 다가온다. 우리와 점심 시간이 다르다. 오전 9시에 점심을 먹고, 오후 3시에 저녁을 먹는 식이다. 그리고 밤 11시까지 버스를 운전한다. 어마어마한 노동 시간이다. 누군가는 앉아서 하는 노동이니, 그나마 괜찮지 않냐고 질문할지 모른다. 버스는 잠깐이라도 졸아도 안되고, 다리에 쥐가 나도 쉴 수 없다.
딸 같아서
다양한 사람이 버스를 이용한다. 대체로 좋은 승객이 많다. 방금 시장에서 샀다며, 떡이나 과일을 건네주는 따뜻한 승객도 있다. 어린이 승객이 탈 때면 혹시나 넘어지지 않을까 짐짓 신경이 집중되지만, 버스에서 내리면서 귀여운 목소리로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는 모습을 지켜보면 슬며시 웃음도 난다. 그러나 모든 승객이 좋은 것은 아니다.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그런 말 할 수 있냐? 당신은 딸도 없냐?"
하루는 술에 취한 것같은 승객이 그랑씨가 운행하는 버스를 타며 "에이~ 여자가 재수 없게"라고 말했다. 그랑씨가 무슨 말씀이시냐고 바로 따졌다. 그러나 그 승객은 아무 대꾸없이 자리에 앉았다. 그랑씨는 운전하는 몸이다. 화가 난다고 달려가 따질 수도 없었다. 그때였다. 다른 자리에 앉아있던 승객이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그런 말 할 수 있냐? 당신은 딸도 없냐?"며 대신 따져줬다. 그리고 그랑씨에게 신경쓰지 말라며 당부의 말도 전했다. 그랑씨는 일터에서 딸같다는 표현이 좋은 의미에서 들리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남자친구는 있어? 결혼 생각은 있어?"
흔히 버스 운전사는 중년 남성으로 상상된다. 그랑씨의 일터에도 중년 남성 노동자의 비율이 월등히 높다. 동료들은 그랑씨와 자녀의 나이가 비슷해서인지 대체로 따스하게 대해주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때론 석연찮은 순간이 있다. 다음 운행을 하기 전에 주어지는 짧은 휴식 시간에 남자친구나 결혼에 대한 질문을 하는 동료들이 종종 있다. 그런 질문을 들을 때마다 "안 해요. 가족들도 안 한다고 알고 있어요"라고 웃으며 답하곤 한다.
그동안 많은 성소수자 노동자가 일터에서 접하는 남자친구나 결혼에 대한 질문이 불편하다고 이야기했다. 물론, 동의한다. 그런데 어떤 부분에선 중년 남성에게 이런 질문은 친밀함의 표시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중년 남성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짧은 휴식 시간 동안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서로에게 접점이 없으니 본인이 생각하기에 무난한 주제를 물어보는 것이다. 그랑씨도 나쁘지 않은 마음으로 물어보는 동료에게 어떻게 대답하면 좋을지 고민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나이가 어려보이면 더 무시하거나 함부로 하는 승객들이 있어. 나이가 좀 들어 보이게 머리를 바꾸는 게 어때?"
하지만 딸같다는 이미지는 다른 의미에서 어려보인다는 의미이다. 일터에서 어려 보인다는 의미는 그다지 좋지 않다. 모두 청년 시절을 거치지만, 고객에게는 어린 티가 덜 나야 한다. 그랑씨도 나이가 어려보이면 무시받기 쉬우니 머리 스타일을 바꾸는게 좋을 것같다는 애정 어린 조언을 들었다. 그래서 버스 운전사를 시작하며 성숙해보이는 헤어 스타일로 바꿨다. 나의 나이가 노동에 영향을 미치는게 어째서 낯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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