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만길,단독사진강만길 상지대 총장, 2003.6.12
권우성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까지 동유럽의 공산주의 정권과 소련이 붕괴되었다. 강만길은 이 역사적 사건을 지켜보면서 깊은 의문에 빠졌다.
'21세기에는 국가사회주의 체제가 완전히 소멸하고 자본주의 전일 체제가 계속될 것인가, 전일화한 자본주의가 그 모순을 심화시킴으로써 거의 멸망 상태에 빠진 국가사회주의 체제가 회생할 것인가?'
사학자로서 검증을 시도했다. 당연히 지난 과정을 살피고, 현재의 상황을 분석하면서 그 바탕에서 미래를 내다봤다. 그리고 한민족이 서야 할 좌표를 그렸다. 20세기가 저물어 가던 1996년 12월, 강만길은 이런 고민의 결과를 담은 글 <21세기 한국 사회의 역사적 조망>을 썼다. 이 글의 고갱이가 되는 부분을 소개한다.
21세기의 한반도 지역은 그 지정학적 위치 문제를 감안하면서 한반도 자체와 나아가서 동아시아 전체의 평화와 발전을 위해 어떻게 되는 것이 바람직한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과거 한반도 지역은 그 지정학적 위치가 대체로 불리하게 작용하기만 해서 전근대시대와 같이 대륙세가 강할 때에는 그 종속적 지역이 되는 경우가 많았고, 근대 초기와 같이 해양세가 강해질 때는 그 식민지로 되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후와 같이 동아시아에서 대륙세와 해양세가 균형을 이루어야 할 필요가 있을 때는 분단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21세기 한반도 지역의 평화로운 발전을 위해서는 그 지정학적 위치를 유리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되는 일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어느 한 지역의 불리하게 작용했던 지정학적 위치가 가만히 있어도 세월이 지나기만 하면 그냥 유리한 위치로 전환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거기에는 지혜와 실력이 따라야 함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20세기 초 해양세력의 식민지로 될 무렵의 한반도는 전제주의 체제 아래서 국왕은 무능했고 관료들은 부패했으며 국민들은 세계 정세로부터 완전히 고립되어 있었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면에서 주변의 어느 민족국가보다 뒤떨어져 있었고, 군사력도 불과 8천여 명뿐이었는데, 사실 그것마저도 유지하기 어려운 실정이었다. 이런 조건에서는 영세 국외중립 같은 것을 실현할 계제가 아니었고, 양육강식의 제국주의 논리가 난무하는 속에서 결국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1세기가 채 못된 지금 한반도 지역은 내외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비록 분단 상태이긴 하지만 남쪽은 어떻든 개인소득 1만 불 시대가 되었고, 북쪽은 경제적으로 곤란한 상태에 있기는 하지만 1960년대까지만 해도 남쪽보다 경제가 오히려 앞섰던 저력이 있으며 또 잘 훈련되고 부지런한 주민들을 가지고 있다.
정치·경제면에서 남쪽과 협력만 잘하면 북쪽의 정치·경제적 회복과 발전은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이다. 통일 과정을 무난히 넘기기만 하면 한반도에는 비교적 높은 수준으로 교육되고 훈련된 인구 약 7천만 명을 가지고 경제나 기술 면에서 상당한 수준에 오를 남부러울 것이 별로 없는 동아시아 국가 하나가 탄생하게 될 것이다.
문제는 통일을 어떻게 평화롭고 조화롭게 이루어 내느냐에 달려 있다. 분단시대 반세기를 통해 남북의 관계는 동족으로서의 동질성과 친화력과 응집력은 계속 약화되고 적대감이 강화된 반면에, 북쪽은 중국과 남쪽은 미국 및 일본과의 결속력이 강화되기만 했다.
중요한 것은 민족적 차원에서 보아 이같이 역류해 온 물길을 바로 돌려놓을 수 있는 결정적 계기를 어떻게 마련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물길을 돌려놓는 일이야말로 식민지가 되고 또 분단된 두 번의 실패한 역사를 한꺼번에 만회하는 일이 될 것이다. 21세기 이후의 민족사를 성공적인 방향으로 가져가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주석 1)
주석
1> 강만길, <21세기의 역사를 어떻게 쓸 것인가>, 창비, 2018, 322~3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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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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