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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파서 3분 하이라이스·스팸·우유"... 고물가에 생계형 절도 늘었다

벌금형 받은 빈곤층 돕는 장발장은행, 대출신청 작년보다 2배... 젊은층은 선불유심 범죄 연루 많아

등록 2024.05.22 17:24수정 2024.05.22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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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의점(자료사진).
편의점(자료사진).연합뉴스
 

#1. 기초생활수급자인 A(39)씨는 지난해 9월 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한 한 대형마트 매장에서 스팸 36만원 어치를 가방에 넣어 도망가다 붙잡혔다. 그는 "밥을 못 먹어 죽을 것 같았다. 너무 배가 고파 오랫동안 보관해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스팸인 것 같아 훔쳤다"고 했다. 그는 벌금형 300만원을 받았다.

#2. 기초생활수급자인 B(41)씨는 지난해 3월 서울 강남구에 있는 한 편의점에서 1500원짜리 우유 한 팩과 1800원짜리 코코넛음료수 2개, 총 5100원 어치를 훔치다 적발됐다. 벌금 200만원을 선고 받은 그는 "벌금을 내지 못하고 있다. 노역장에 유치될 경우 생계급여가 중단되고 다시 신청해야 하는데 기다리는 동안 생활이 막막하다"고 했다.

#3. 스물 일곱살인 C씨는 지난해 7월 인천 서구에 있는 한 마트에서 총 1만 2830원 어치의 식료품을 비닐봉지에 몰래 담아 가다 발각됐다. 봉지 속에는 1580원짜리 오뚜기 3분 하이라이스 1개, 2450원짜리 오뚜기 3분 미트볼 1개, 2000원짜리 흑당밀크티 1개, 6800원짜리 골뱅이캔 1개가 들어있었다. 벌금 100만원을 받은 그는 "일용직 단순노동 알바로 조금씩 돈을 벌고 있지만 수입이 지출을 따라잡지 못해 벌금을 못 내고 있다"고 했다.


생활 물가가 치솟고 불황이 이어지면서 식료품 절도나 무전취식 등 저소득층의 생계형 범죄가 늘어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벌금형을 선고 받고도 돈이 없어 감옥 갈 위기에 처한 빈곤층에게 벌금으로 낼 돈을 빌려주는 인권단체 '장발장은행'에는 올해 들어 월 평균 110건의 대출신청이 몰리고 있다고 한다. 작년 월 평균 55건, 재작년 월 평균 26건에 비해 급격히 늘어난 수치다.

특히 "작년까지만 해도 마트에서 먹을 걸 훔쳐가는 말 그대로 '장발장' 같은 사례는 극히 드물었는데, 올해엔 한 달에 한 번 꼴로 속출하고 있다"(조용철 장발장은행 연구원)는 설명이다. 위의 세가지 사례 역시 최근 3개월간 장발장은행에 접수된 것들이었다.
 
 최근 3년간 장발장은행 월별 대출신청 접수 건수
최근 3년간 장발장은행 월별 대출신청 접수 건수봉주영
 

"마트에서 '먹을것' 절도, 작년만 해도 극히 드물었다"


22일 <오마이뉴스>가 지난달 장발장은행에 들어온 대출신청 사례들을 살펴보니, 식당에서 밥을 먹고 돈을 내지 않은 '무전취식'이나 소액 절도 등 생계형 범죄로 볼 만한 사례들이 다수 눈에 띄었다.

기초생활수급자인 D(59)씨는 지난 2022년 11월 경북 경산시에 있는 한 고깃집에서 10만원 상당의 갈비와 소주, 맥주를 먹고는 값을 치르지 않았다. 이후 식당에서 소란을 피운 그는 업무방해 등의 죄로 벌금 300만원을 선고 받았다. 기초생활수급자인 E(46)씨는 2023년 7월 인천 부평구의 한 PC방에서 카운터 금고를 열어 현금 13만원을 절도했다. 그는 벌금 400만원을 받았다.


또 다른 기초생활수급자인 F(51)씨는 2022년 9월 경기도 오산시의 한 편의점에서 자신이 들고 온 술병을 반값에 팔 테니 현금으로 사달라고 요구했다. 편의점 업주가 이를 거절하자 욕설을 하고 난동을 부린 그는 업무방해죄로 벌금 500만원을 받았다. 그는 "부모, 형제, 친척이 아무도 없다"고 했다.

10여 년 전 길에서 주운 군용 침낭을 중고 사이트에 팔았다가 '군복 및 군용장구의 단속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벌금형이 떨어진 사례도 있었다. 기초생활수급자인 G(53)씨는 지난 2022년 11월 중고나라에 '군용 화섬솜 침낭'을 팔겠다는 글을 올렸다가 단속에 걸려 벌금 100만원을 받았다. 그는 "과거 한 캠핑장에서 누가 버리고 간 침낭을 습득했다"라며 "(군수품 거래가)법 위반이라는 걸 몰랐다"고 했다. 그는 "경제적 수입이 없어 생활 가재도구를 판매해왔다"라며 "생계가 어려워 벌금을 납부할 형편이 안 된다"고 했다.

장발장은행 대출신청 급증... 지난해 월평균 55건 → 올해 110건

사업용으로 렌탈한 가전제품의 렌탈료를 제때 내지 못해 횡령죄로 벌금형을 선고 받은 경우도 있었다. 스물여섯살인 H씨는 2021년 개인사업을 시작하면서 582만원 짜리 세탁·건조기를 렌탈한 뒤 총 15개월간 다달이 9만 7000원의 렌탈료(총 145만 5000원)를 납부했지만, 이후 렌탈료를 체납해 벌금 100만원을 받았다. 그는 "코로나로 상황이 너무 안 좋아 월세와 대출이자 먼저 납부하다 보니 렌탈비를 내지 못했다"라며 "현재 일급 8만원 일용직으로 일하고 있어 벌금 100만원을 내기 힘들다"고 했다.

핸드폰번호를 개통해주면 번호당 3만~5만원을 준다거나, 통장을 보내주면 대출을 해준다는 식의 온라인 광고에 속아 본인 명의의 선불유심칩과 핸드폰번호, 통장 등을 건네줬다가 벌금형을 받는 사례도 많았다. 이렇게 제공한 개인정보들이 전문 사기꾼들에게 넘어가 '대포통장'이나 '대포폰'으로 쓰이고 보이스피싱이나 코인 투자 사기 등 범죄에 활용돼 전기통신사업법·전자금융거래법 위반으로 적발되는 경우다.

신용불량자인 I(25)씨는 지난 2021년 페이스북에서 '선불유심 구입' 광고를 보고 카카오톡으로 연락을 취했다가 '유심을 개통해주면 회선당 3만원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그는 신분증과 서류를 넘겼고, 이 죄로 벌금 200만원을 받았다. 기초생활수급자인 J(26)씨도 2022년 3월 통장 사본과 계좌 비밀번호 등을 보내주면 대출을 해준다는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보고 그대로 했다가 본인 명의의 통장이 사기 범죄에 쓰여 벌금 300만원을 받았다. 그는 "(통장이)범죄에 쓰일 줄은 몰랐다"고 했다.

이광석 장발장은행 간사는 "대출신청 사연 중 가장 많은 비율이 이같은 전기통신사업법·전자금융거래법 위반 사례"라며 "황당한 요구 같아 보여도 당장 3만원, 5만원 돈이 급한 사람들은 유혹에 넘어가기 쉽다. 특히 젊은이들의 비중이 높다"고 했다.

'5대 범죄' 중 유일하게 증가한 절도… "침체된 경기 탓" 

장발장은행 측은 이처럼 생활형 범죄와 관련된 대출신청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 고물가 등 최근 경제 상황과 관련 깊다고 설명했다. 조용철 장발장은행 연구원은 "올해 1월부터 갑자기 대출신청 숫자가 두 배 이상 급증했다"라며 "경기 침체의 영향을 타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재원이 한정적인 장발장은행 입장에서는 매달 대출해주지 못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경찰청 통계를 보면 2018~2022년 5년간 '5대 범죄' 중 ▲살인(2018년 791건 → 2022년 688건) ▲강도(2018년 818건 → 2022년 515건) ▲강간·강제추행(2018년 2만 3467건 → 2022년 2만 2484) ▲폭력(2018년 28만 6599건 → 24만 4643건)은 모두 감소했지만, ▲절도(2018년 17만 6613건 → 2022년 18만 2133건)만 유일하게 증가했다.
#장발장은행 #장발장 #고물가 #경제 #저소득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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