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3년간 장발장은행 월별 대출신청 접수 건수
봉주영
"마트에서 '먹을것' 절도, 작년만 해도 극히 드물었다"
22일 <오마이뉴스>가 지난달 장발장은행에 들어온 대출신청 사례들을 살펴보니, 식당에서 밥을 먹고 돈을 내지 않은 '무전취식'이나 소액 절도 등 생계형 범죄로 볼 만한 사례들이 다수 눈에 띄었다.
기초생활수급자인 D(59)씨는 지난 2022년 11월 경북 경산시에 있는 한 고깃집에서 10만원 상당의 갈비와 소주, 맥주를 먹고는 값을 치르지 않았다. 이후 식당에서 소란을 피운 그는 업무방해 등의 죄로 벌금 300만원을 선고 받았다. 기초생활수급자인 E(46)씨는 2023년 7월 인천 부평구의 한 PC방에서 카운터 금고를 열어 현금 13만원을 절도했다. 그는 벌금 400만원을 받았다.
또 다른 기초생활수급자인 F(51)씨는 2022년 9월 경기도 오산시의 한 편의점에서 자신이 들고 온 술병을 반값에 팔 테니 현금으로 사달라고 요구했다. 편의점 업주가 이를 거절하자 욕설을 하고 난동을 부린 그는 업무방해죄로 벌금 500만원을 받았다. 그는 "부모, 형제, 친척이 아무도 없다"고 했다.
10여 년 전 길에서 주운 군용 침낭을 중고 사이트에 팔았다가 '군복 및 군용장구의 단속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벌금형이 떨어진 사례도 있었다. 기초생활수급자인 G(53)씨는 지난 2022년 11월 중고나라에 '군용 화섬솜 침낭'을 팔겠다는 글을 올렸다가 단속에 걸려 벌금 100만원을 받았다. 그는 "과거 한 캠핑장에서 누가 버리고 간 침낭을 습득했다"라며 "(군수품 거래가)법 위반이라는 걸 몰랐다"고 했다. 그는 "경제적 수입이 없어 생활 가재도구를 판매해왔다"라며 "생계가 어려워 벌금을 납부할 형편이 안 된다"고 했다.
장발장은행 대출신청 급증... 지난해 월평균 55건 → 올해 110건
사업용으로 렌탈한 가전제품의 렌탈료를 제때 내지 못해 횡령죄로 벌금형을 선고 받은 경우도 있었다. 스물여섯살인 H씨는 2021년 개인사업을 시작하면서 582만원 짜리 세탁·건조기를 렌탈한 뒤 총 15개월간 다달이 9만 7000원의 렌탈료(총 145만 5000원)를 납부했지만, 이후 렌탈료를 체납해 벌금 100만원을 받았다. 그는 "코로나로 상황이 너무 안 좋아 월세와 대출이자 먼저 납부하다 보니 렌탈비를 내지 못했다"라며 "현재 일급 8만원 일용직으로 일하고 있어 벌금 100만원을 내기 힘들다"고 했다.
핸드폰번호를 개통해주면 번호당 3만~5만원을 준다거나, 통장을 보내주면 대출을 해준다는 식의 온라인 광고에 속아 본인 명의의 선불유심칩과 핸드폰번호, 통장 등을 건네줬다가 벌금형을 받는 사례도 많았다. 이렇게 제공한 개인정보들이 전문 사기꾼들에게 넘어가 '대포통장'이나 '대포폰'으로 쓰이고 보이스피싱이나 코인 투자 사기 등 범죄에 활용돼 전기통신사업법·전자금융거래법 위반으로 적발되는 경우다.
신용불량자인 I(25)씨는 지난 2021년 페이스북에서 '선불유심 구입' 광고를 보고 카카오톡으로 연락을 취했다가 '유심을 개통해주면 회선당 3만원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그는 신분증과 서류를 넘겼고, 이 죄로 벌금 200만원을 받았다. 기초생활수급자인 J(26)씨도 2022년 3월 통장 사본과 계좌 비밀번호 등을 보내주면 대출을 해준다는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보고 그대로 했다가 본인 명의의 통장이 사기 범죄에 쓰여 벌금 300만원을 받았다. 그는 "(통장이)범죄에 쓰일 줄은 몰랐다"고 했다.
이광석 장발장은행 간사는 "대출신청 사연 중 가장 많은 비율이 이같은 전기통신사업법·전자금융거래법 위반 사례"라며 "황당한 요구 같아 보여도 당장 3만원, 5만원 돈이 급한 사람들은 유혹에 넘어가기 쉽다. 특히 젊은이들의 비중이 높다"고 했다.
'5대 범죄' 중 유일하게 증가한 절도… "침체된 경기 탓"
장발장은행 측은 이처럼 생활형 범죄와 관련된 대출신청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 고물가 등 최근 경제 상황과 관련 깊다고 설명했다. 조용철 장발장은행 연구원은 "올해 1월부터 갑자기 대출신청 숫자가 두 배 이상 급증했다"라며 "경기 침체의 영향을 타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재원이 한정적인 장발장은행 입장에서는 매달 대출해주지 못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경찰청 통계를 보면 2018~2022년 5년간 '5대 범죄' 중 ▲살인(2018년 791건 → 2022년 688건) ▲강도(2018년 818건 → 2022년 515건) ▲강간·강제추행(2018년 2만 3467건 → 2022년 2만 2484) ▲폭력(2018년 28만 6599건 → 24만 4643건)은 모두 감소했지만, ▲절도(2018년 17만 6613건 → 2022년 18만 2133건)만 유일하게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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