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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건축사를 업으로 하는 바이섹슈얼 노동자입니다

[나, 성소수자 노동자 ④] '이상과 현실은 다르지만, 얻는 것 많을 것' 조언

등록 2024.05.21 15:25수정 2024.05.21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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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에서 성소수자 노동자는 보이지 않습니다. 많은 성소수자 노동자가 차별과 혐오를 피해 자신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입니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성소수자 노동권팀은 드러나지 않는 성소수자 노동자의 삶을 꾸준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 성소수자 노동자'를 통해 다양한 지역과 현장에서 노동하는 여러 정체성의 성소수자 노동자들의 삶을 다섯 차례에 걸쳐 전합니다. [기자말]
 [나, 성소수자 노동자 ④] 건축사인 바이섹슈얼 노동자 이야기
[나, 성소수자 노동자 ④] 건축사인 바이섹슈얼 노동자 이야기Unsplash
 
건축 설계 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조'는 건축사 자격을 갖고 있다. 조가 건축사라는 자격을 취득하는 과정의 시작은 한 대학에서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진행한 대회에 참석한 일이었다. 그 대회에 참석했던 고등학생 조는 건축의 매력에 푹 빠졌고 건축학과에 진학했다.

건축학과에 진학한 조는 "예술의 영역에 속해 있으면서도 실용적인 학문"인 건축을 배웠다. 건축학과에서 배우는 건축은 다양하고 아름다운 형태를 중요하게 여기지만 같은 과정에서 안전과 실제 건축물의 활용도 빼먹을 수 없이 중요했다.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건축 업계에 몸을 담게 된 조는 현실과 마주쳤다. 현장에서 마주친 건축은 현실 문제가 너무나도 큰 분야인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관계로 알게 모르게 연결돼 있는 분야였다.

건축사무소와 건축사 자격 취득

건축사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먼저 건축사가 있는 건축사사무소에서 건축사보로서 서너 해 정도 실무수련을 해야 한다. 실무수련 기간에는 이 정도 기간의 실무수련을 마친 건축사보에게 건축사 취득 시험 응시 자격이 부여된다. 이러한 제도는 건축사보로서 일하며 나쁜 경우 겪게 되는 부조리한 상황을 언젠가는 지나갈 일로, 조금만 견디면 되는 일로 여길 수 있게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건축사 자격을 취득한 후에는 크게 두 가지 길을 간다. 사무소를 개업하거나 이미 있는 사무소와 근로계약을 체결한다. 자기 사무소를 개업한 경우 건축사협회에 정회원으로 가입하게 돼 해당 협회의 보호를 받는다. 반면, 개업하지 않고 근로계약을 체결한 경우 건축사협회 준회원으로 가입하여 사무소의 근무 조건에 따라 노동을 한다.

건축사로서든 건축사보로서든 건축사사무소와 근로 계약을 체결한 경우 때로는 근로기준법에 따라 근무를 하게 된다. 소규모 사무소에서 근무를 하게 될 경우 때로는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서 정당하지 못한 대우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 건축사나 건축사보의 입장을 대표해주는 주요한 단체가 없다.


건축사 혹은 건축사보가 정당하지 않은 조건 아래 근무하게 될 경우 일반적으로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된다, 내지는 그 시기만 지나면 된다는 식의 의식이 만연해 있다. 이러한 의식과 적절한 대표성을 갖춘 단체의 부재로 인해 많은 문제들이 해결되기보다는 방치되고 있다.

건축이라는 일


건축물이 지어지는 동안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결정에 참여한다. 수많은 결정 과정 속에서 건축가는 설계의도를 반영하여 건축 과정에 참여하고자 노력한다.
 
 펜과 자를 이용해 그리는 건축 설계도
펜과 자를 이용해 그리는 건축 설계도Pixabay
 
건축업계는 철저히 분업화되고 있다. 자신의 업무 영역을 벗어난 일들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는 도장으로 상징되는 건축사의 책임을 강조한다.
 
"건축사는 결국에 자기 도장을 찍어요."

분업화가 된다 할지라도 자신이 맡은 과정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는 의미였다.

건축은 오래 걸린다

건축업계 외부에서는 건축에 대해 현장에서 건물이 지어지는 과정만 떠올리는 경우가 많지만 건축은 그 이전에도 진행되는 일이다. 특히 설계는 업계 외부인이 인지하기 쉽지 않으나 절대로 빠질 수 없는 과정이다. 설계만이 아니라 많은 과정을 거쳐야 사람이 실제로 이용할 수 있는 건축물이 완성된다.

현대에서 많은 일이 그러하듯 건축에서의 각 과정도 분업화되어 있다. 예를 들어 똑같은 자격을 갖춘 건축사라 할지라도 법에서 규제하는 일정 조건을 갖춘 건축물이 완성되는 과정에서 설계를 맡은 건축사와 감리를 맡은 건축사를 따로 둬야 한다.

건축사가 설계에 대한 계약을 했다 할지라도 단번에 결과물을 납품하지는 않고 여러 단계를 거친다. 기본 설계, 중간 설계, 실시 설계까지 한 후, 아주 많은 결과물을 납품한다. 각 단계에서 수정을 요청할 수 있지만 실시 설계 단계까지 완료한 후 수정을 요청할 때도 있는데 이 경우 오래 걸려 완성한 단계를 다시 반복해야 한다.

새로 설계를 하는 수준으로 수정이 필요한 경우라 할지라도 많은 발주사에서 설계에 대해 재발주를 하거나 비슷한 정도의 용역비를 제공하지 않는 관행이 있다. 설계를 그 정도로 마쳤고 새로운 설계를 하는 수준의 업무량이 부과되지만 그 사실이 충분히 인정되지 않는 것이 관행으로 자리잡았다는 의미다.

건축업계 종사자는 다 남성일 것이다?
 
 남성이 아닌 건축사 이야기
남성이 아닌 건축사 이야기Unsplash
 
건축업계 종사자라고 하면 사람들이 주로 떠올리는 이미지는 남성이 안전모를 쓰고 현장에서 일을 하는 모습이다. 이는 실제로 건축과 관련해 현장에서 주로 볼 수 있는 종사자들과 시행사와 시공사, 업무 처리 담당자가 일반적으로 남성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는 설계 분야는 남초라고 단정지을만한 분야가 아니라고 한다.
 
"학부였을 때도(대학 다니던 시절에도) 성비가 5 대 5의 근사치였어요. (중략) 어떤 팀의 팀장 정도까지는 여성과 남성의 성비가 직급별로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데..."

대학교에 다니던 시절만 해도 성비가 비슷한 수준의 환경에서 공부했다는 조는 한국의 거의 모든 업계에서 나타나는 현상인 관리직이 될수록 성비가 남초로 변해가는 모습을 건축업계에서도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제가 최근에 한 어떤 설계회사, 좀 규모가 있는 회사의 이사진 분들 중에 여자분이 계신 거예요. 그래서 특이하다 물어봤어요. 그래서 다 결혼 안 하셨다."

건축에서도 다양성은 필요하다
 
 건축물이 올라가는 모습이 보인다.
건축물이 올라가는 모습이 보인다.Pixabay
 
건축이라는 분야에 종사하는 조는 건축업과 "공공"의 관계에 집중한다.
 
"공공적인 성격을 띤 건축물을 설계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아요. 그러면은 다양한 개념들에 대해서 생각을 해볼 수 있는 기회들이 있어요. 예를 들면 공공이란 무엇인가, 공공이 해야 하는 역할은 뭘까, 그럼 그걸 담는 건물은 어떻게 생겨야 하고, 이 공간에 와서 시민들이 어떤 걸 느끼고 어떻게 이걸 누릴 것이며..."

조를 비롯한 건축업계 종사자들은 공공성을 목표로 한 건축에 많이 참여하게 된다. 공공성 그 자체만을 목표로 하지 않은 건축에 참여한다 할지라도 건축물은 기본적으로 모두가 바라볼 수 있고 도시의 외관을 만들어 내다보니 개인의 건물이라도 오롯이 사적일 수만은 없다.

한국의 현실 속에서는 많은 신도시가 건설되며 거주를 위한 건물조차도 아파트라는 특정한 형태를 중심으로 지어진다. 이 과정에서 많은 도시의 모습이 비슷해지는 것에 대해 조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문제 의식을 가지고 있다.
 
"도시의 모습은 좀 다양할 수 있고 (중략) 유연성이 있어야 될 것 같은데 그런 것보다는 너무 합리적인 논리만 가지고 계속 진행되고 있는 것 같은 현실이 굉장히 아쉽죠. (중략) 경제적인 그런 것들이 다 연관이 돼 있고 막 이렇다 보니까 쉬운 얘기는 아닌 것 같아요."

조는 대중적 평가가 아무리 나쁜 건축물이라 할지라도 자신은 잘못되었다고 평할 수 없고 그 건축물이 존재하는 것 자체로도 의의가 있다고 말한다.
 
"사실 디자인은 답이 없잖아요. 그 정답이 없는 영역에서 내 취향이 아니라고 그거를 아니다라고 할 필요도 없는 거고 해석이 다르다고 그거에 잘못했다고 말할 수 없잖아요."

조는 건축이라는 방법을 통해 사회가 특정한 형태의 정상성을 갖춘 삶만 제시하기보다 다양한 형태의 삶을 선택할 권리를 제공하는, 다시 말해 다양성이 인정되는 사회로 바뀌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건축에서는 주거 환경을 조성하는 측면에서 사회의 변화를 제일 쉬이 꾀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건축업계에 부는 새로운 바람

지금까지 경직돼 있는 듯한 건축업계만 언급됐지만 사회 전반에서 그러하듯 건축업계에도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업계에 원래는 시공사가 시행을 하는데 건축설계사무소에서 시행을 하는 경우들도 이제 생겨났어요. 조금 더 자기의 아트적인 그런 것들을 표현할 수 있는 그런 자체로"

건축업계의 구조에 변화가 오고 있기도 하고
 
"(대표님이) 그런 거(성소수자 이슈)에 대한 편견이 섞인 얘기는 하지 말자 이런 말들을"

건축업 종사자 문화에 변화가 오고 있기도 하다.

우리 사회가 시대가 갈수록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로 바뀌기 위해 노력하고 있듯이 각각의 업계에서도, 건축업계에서도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성 중심의 모습에서 벗어나려는 변화를 만날 수 있다. 물론 많고 다양한 사람들과 협업해야 하는 건축업계 특성상 아직은 성소수자들이 업계 내에서 커밍아웃하기는 쉽지 않다. 변화 속도가 어느 정도가 될지는 예측할 수 없으나 그래도 현실은 성소수자에게도 좀 더 친화적으로 변해 가고 있다.

건축업계를 희망하는 동료 성소수자에게
 
 협업하는 노동자들
협업하는 노동자들Unsplash
 
조는 건축업계, 특히 설계를 지망하는 다른 성소수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묻자, 교육기관에서 교육과정으로 구성되어 학생들에게 소개하는 설계의 이상과 업계로 나와 일할 때 만난 설계의 현실은 분명히 다를 것이라는 사실을 먼저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계 일을 하다 보면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많다고 했다. 조는 다양한 사람들과 업무적으로 교류하며 쌓는 감정, 계획을 해서 진행하고 그 결과물을 보는 경험, 일을 하며 활용해야 하는 다양한 분야에 대한 지식을 통해 얻는 다양한 관점 등을 제시했다.

조는 마지막으로 분명히 예술을 하고 싶다던 이상과 효율성을 주로 고려할 수밖에 없는 현실의 괴리를 경험하겠지만 건축이 가진 예술성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건축물이 예술 작품이라는 관점을 포기하지 말고 다양성이 있는 결과물을 만드는 건축업계를 함께 형성해 나가는 동료를 바라는 것이 조의 숨겨진 뜻이 아니었을까?
덧붙이는 글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노동권팀 홈페이지 http://rainbowatwork.org 에도 게재됩니다.
#성소수자 #노동자 #건축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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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행성인’)는 1997년 출범하여, ‘실천’과 ‘연대’라는 주요한 활동원칙 아래모든 사회적 소수자들의 인권이 존중 받을 수 있는 평등한 사회를 꿈꾸며 현재까지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성소수자 인권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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