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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캬롯또데쓰까(당근이세요)?"... 일본서도 이걸 하네요

일본 사람들도 쓰기 시작한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 첫 거래 해봤습니다

등록 2024.05.26 18:23수정 2024.05.26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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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되면 정리정돈이 하고 싶어지는 건 사람 사는 곳 어디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나는 15년째 일본에서 살고 있는데, 날씨가 따뜻해지는 5월이 되면 유독 "이제부터 나는 미니멀리스트(단순한 삶을 지향하는 사람)가 될 거야!"라고 선언하는 주변 사람들이 늘어난다. 


며칠 전엔 일본인 친구 하나가 '오늘 캬롯또로 묵혀뒀던 물건들을 싹 정리했다!'면서 내게 깨끗해진 집안 풍경을 사진으로 보내며 자랑해 왔다. 그러면서 차마 버리지 못해 늘 이것저것 쟁여두는 나에게 캬롯또라는 앱을 추천해 줬다.

아니 잠깐만, 캬롯또? 이거 어디서 들어본 건데? 영어 캐럿(Carrot)의 일본어 발음인 캬롯또. 그렇다. "당근이세요?"의 주인공. 한국의 국민 중고 마켓 '당근(구 당근 마켓)'이 내 주변 일본에도 상륙한 것이다. 알아보니 이 한국 기업이 일본에 서비스를 시작한 건 2022년부터인 듯하다.

신기하다, 비슷하고도 다른 알림음 '캬로♪'
 
 당근이세요? 일본에 상륙한 중고 장터 `당근`
당근이세요? 일본에 상륙한 중고 장터 `당근`https://karrotmarket.com/
 
반가운 마음, 아니 더 정확히는 궁금한 마음에 앱을 다운로드해 봤다. 가장 궁금했던 건 귀에 쏙 들어오는 '당근♪' 알림음이 일본에서는 어떻게 구현되었을까였다. `설마 한국말로 당근! 하는 건 아니겠지?` 설정음을 재생해 보니 '캬로♪'라는 밝은 두 음절이 울린다. 

나에게는 이 당근 알림음에 얽힌 작은 기억이 한 조각 있다. 기억의 주인공은 한국에 계신 친정아버지다. 지난겨울 방학에 아이들과 함께 친정을 찾았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아버지 휴대폰에서 연신 '당근! 당근!' 하는 낯선 알림음이 들려오는 게 아닌가. 

"당근? 아빠, 이게 무슨 소리야?" 
"응, 이거 누가 쌀 주겠다고 글 올리는 사람이 있는데, 알림을 해둬서 그래." 



부모님은 십여 년 전부터 취미 삼아 텃밭 농사를 하고 계시는데, 텃밭 구석에서 닭과 기러기 등도 키우고 계신다. 처음에는 닭 한 마리 키우시나 보다 했는데 동물들이 점점 늘어나더니, 지금은 어느새 수십여 마리의 닭과 기러기, 병아리들이 텃밭을 어슬렁거리고 있다. 

동물들이 늘어나다 보니 사료값만 해도 만만치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러다 당근에는 벌레가 난 쌀이나 곡식 등을 내놓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당근 앱을 설치해서는 수시로 확인하고 계신 것이었다. 
 
 부모님 텃밭을 어슬렁거리는 동물 친구들
부모님 텃밭을 어슬렁거리는 동물 친구들박은영

아버지는 누군가와 열심히 채팅을 하신다 싶더니, 급하게 나가 벌레가 난 쌀 한 포대를 안고 자랑스럽게 집으로 들어오셨다. 그리고는 베란다에 자리를 잡고, 받아 온 쌀을 정리하며 혼잣말을 하셨다. 


"쌀을 어떻게 그냥 버려, 아깝게." 

아버지의 그 마음을 내가 어찌 모를까. 나도 슬며시 베란다로 나가 아빠와 함께 쌀알들을 쓸어 모았다. 

중고거래에 떠오른 아빠 생각

6.25 전쟁 직후, 가난한 시골 마을 5형제의 셋째로 태어난 우리 아버지. 그 당시 대식구가 먹을 음식은 늘 모자랐고, 쌀 한주먹에 물을 가득 넣고 끓인 죽이 주식이었다고 했었다.

밥그릇에 흥건히 담긴 물을 다 마시고 나면, 남은 쌀알들을 긁어 모아도 숟가락 하나가 찰까 말까 했다고. 그래도 퉁퉁 불은 그 쌀들을 입안에 넣고 오래 씹으면 그렇게 고소하고 맛있을 수가 없었다고 하셨었다. 

그런 아빠를 보며 나는 말했다.

"아빠, 이렇게 아끼는 것도 좋긴 한데... 그래도 여행도 다니고 맛있는 것도 사드시고, 이제 좀 그렇게 사셔." 
"그럼 그럼, 그렇게 살고 있지. 내 걱정 말고 너나 잘 챙겨 먹고... 아끼지 말고 누리면서 살아." 


아버지가 당근에서 받아온 벌레난 쌀을 정리하며, 늘 빚진 것 같은 내 마음을 주제넘은 잔소리로 입 밖으로 내봤더랬다. 

다시 여기는 동경. '캬로♪' 내 폰에 설치된 당근에서 알림음이 들렸다. 

버릴까 했던 딸아이의 작아진 신발을 모아 출품했더니 금세 구매 희망자가 채팅을 보내온 것이다.

거래 장소는 집에서 약 400m 떨어진 공원. 약속 장소에 나가 보니 앳된 얼굴의 여자분이 한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를 안고 누군가를 기다리며 서 있다.
 
 버릴까했던 신발들을 당근에 출품해봤다.
버릴까했던 신발들을 당근에 출품해봤다.박은영
 
그녀에게 나는 뭐라고 말을 걸었을까?

정답은 "캬롯또데쓰까? (당근이세요?)"이다. 그렇게 나는 헌 신발들을 팔아 500엔(한화 약 4400원)을 손에 넣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간식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걸음이 괜히 가볍다.

그 옛날 우리 아버지도 지금 나처럼 기뻐할 아이들 얼굴을 떠 올리면서, 비닐봉지 한가득 간식거리를 사들고는 "아빠 왔다~!" 하고 외치셨던 것일까. 

우리 아버지가 젊고 건강했던 그때, 상록수처럼 늘 푸르고 든든했던 부모님 그늘 아래에서 무지갯빛 꿈을 꾸던 그 시절이, 가끔씩 사무치게 그립다. 

어쨌든 그 짠돌이 멋진 아버지의 딸인 덕분인지, 나도 야무지고 알뜰하게 돈을 벌었다. 일본에서의 첫 당근 거래, 이렇게 성공!
#당근 #중고거래플랫폼 #그아빠의 #그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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