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서울시의회 앞에서 학생인권조례 폐지에 반대하는 행동2024년 4월 26일, 서울시의회 앞에서 학생인권조례 폐지안 가결을 막기 위한 피켓팅을 하고 있다.
학생인권법과 청소년인권을 위한 청소년-시민전국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려고 드는 이들은 조례에 문제가 많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근거가 빈약하거나 억지 주장이다. 예컨대 임신·출산을 이유로 학생을 차별하지 말라는 원칙을 명시한 것을 두고서 성관계와 임신을 조장한다고 주장하는 식이다.
학생인권 보장이 이른바 '교권 추락'의 원인이라는 주장은 자료상 인과관계가 전혀 확인되지 않았다. 단지 '학생들을 폭력적으로 무섭게 대하지 않으니까 교사들에게 대드는 것이다'라는 식의 단편적인 생각에서 비롯된 논리일 뿐이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작년 7월 28일, 국회에서 근거 부족을 지적받자 '학생인권조례가 인구가 많은 지역에서 생겨서 문화를 조성했다' 운운하는 두루뭉수리한 변명밖에 내놓지 못했다.
학교 현장에서 지난 10여 년간 뚜렷하게 드러난 학생인권조례의 주요 내용 및 효과는 바로 학생에 대한 폭력, 불합리한 두발·복장 규제 따위를 억제하는 것이다. 교사들이 힘든 이유가 학생의 머리칼과 복장을 단속하지 못해서라니, 이건 오히려 교사들에게 모욕적인 이야기이지 않을까?
학생인권조례에 아무 문제도 없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학생인권조례에는 고쳐야 할 점, 한계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그 문제점은 '교권을 떨어뜨려서'나 '학생인권만 너무 보장해서'와 같은 것이 아니다. 반대로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인권을 제대로 보장하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다.
경기도에선 두발 자유, 인천에선 두발 규제?
2010년 경기도에서 최초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지 얼마 안 됐을 무렵, 인천 지역의 고등학생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학교에서 두발 단속을 당해서, 교사에게 볼멘소리를 했다고 한다.
"바로 옆 동네인 (경기) 부천은 머리 길이는 자유화됐다던데 우리는 왜 계속 단속해요?" 그러자 그 교사가 이렇게 대꾸했다고 한다. "싫으면 경기도로 이사 가든가?"
조례는 지역의 자치 법규다. 지금까지 학생인권조례는 2010년 경기, 2011년 광주, 2012년 서울, 2013년 전북, 그리고 2020년 충남과 2021년 제주까지 총 6개 지역에서 제정된 바 있다. 17개 광역 지자체 중 나머지 11곳에는 학생인권조례가 없는 것이다. 때문에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지 않은 지역에서는 두발·복장규제 등의 반인권적 학칙이 개선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바로 얼마 전에도 대전 지역에서 '앞머리가 눌렀을 때 눈썹에 닿지 않아야 하고, 옆·뒷머리는 기계를 이용해 경사지게 깎아야 하는' 규정으로 단속하는 고등학교의 사례가 알려졌다(관련기사 :
'머리는 스포츠형'... 대전 중·고교 80% 두발 규정 존재 https://omn.kr/1wctg).
인권은 모든 사람에게 보장되어야 하는 보편적이고 기본적인 권리이다. 그런데 어느 지역의 학교에 다니는지에 따라서, 어느 학교에 재학 중인지에 따라서 인권이 보장되고 아니고가 갈린다는 것은 본래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가 2019년 한국 정부에 '영토 내의 모든 환경에서 간접체벌 등의 모든 체벌을 명시적으로 금지하라'라고 권고한 이유도, 체벌 금지 등 인권 보장 조치가 지역에 따라 보장 정도가 다르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었다.
지역에 따라 학생의 인권 보장 정도가 다르다는 문제의 해결책은 당연히 모든 지역에서 학생의 인권이 잘 보장되도록 하는 것이다. 그동안 전국 모든 지역에서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하기 위한 운동이 벌어져 왔다. 그러나 여러 오해와 악선전에 가로막혀서 학생인권조례를 제정 못 한 지역이 많다. 주민 발안, 교육청 제출 등으로 도의회의 문을 3번이나 두드린 경남이 대표적이다. 지역의 주류 정치 성향과 의회 구성상 학생인권조례 제정이 요원한 지역도 많다. 따라서 학생인권조례란 수단만으로는 전국 모든 지역, 모든 학교 학생들의 인권이 동등하게 보장되게 하기가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이미 제정된 조례들의 허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