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물을 만져야 하는 요식업의 특성 상 핸드크림 같은 건 발라 본 적 없는 투박한 손이지만, 이 손으로 10년 넘게 돈카츠를 만들어 왔다.
인터뷰이 제공
함께 꾸는 꿈
자영업 노동자를 노동자로 바라보기는 여전히 익숙하지 않다. 때문에 임금 노동자들은 작업환경이나 직업병에 대한 데이터가 쌓이는 데 반해 자영업 노동자들이 처한 노동환경이 어떤지에 대한 연구나 통계는 전무하다. 자영업 노동에 대한 이해는 부족한데 이성애 가족 중심의 제도는 자영업 노동에도 영향을 미친다.
1인 소규모 사업장에서는 일을 분담할 수 있는 인력이 필요하고 대부분의 사업장에서 이를 무급 가족 종사자를 고용함으로써 부담을 줄여왔다. 부부가 같이 운영한다거나, 돈 관리를 가족이 따로 맡는다거나 아르바이트가 쉬는 날은 자녀들이 일을 돕는다거나 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운영 방식은 가족 노동에 대한 여러 쟁점과는 별개로 싱글일 수밖에 없는 성소수자 자영업자에게 큰 박탈감을 준다.
"자영업자들은 1년에 4번 부가세를 내고 5월 달에 종합소득세를 내는데 다자녀거나 65세 이상 부양하거나 하면 혜택이 많아요. 근데 싱글들은 종합소득세 세제혜택이 전혀 없어요."
"가족구성원이 있는 자영업자는 일하는 사람이 없을 때 대체인력이 많지만 게이인 저는 그렇지가 않잖아요. 다행히 주변에 누님들이 살아서 도와주시지만 매번 미안함이 크죠. 파트너도 자기 일이 있고요."
이런 상황에서 가장 힘든 순간은 가게를 비워야 할 때이다.
"몇 년 전에 제가 탈장이 와서 수술하고 3일을 입원했는데 당장 병원을 가야 된다고 했지만 3일 동안 가게 문을 닫아야 하고 식재료도 정리해두어야 하고... 바로 못가는 거예요. 그리고 가면서도 마음이 편치가 않은 거죠."
반나절 가게를 비우는 게 부담스러워 건강검진 받기도 어렵다는 푸디 님은 아파도 병원에 가기 힘들 때 가장 서럽다고 말한다.
푸디 님은 게이이기 때문에 제도적으로 싱글일 수밖에 없고, 싱글이기 때문에 자영업자로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토로했다. 이는 성소수자들의 가족을 구성할 권리를 요구함과 동시에 1인 자영업자를 위한 지원 방안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한다.
자영업 노동자들이 가족에 의지하거나 혼자 감당하지 않도록 1인이나 소규모 업장에 대해서 지자체가 지원할 수 있다면 어떨까. 지자체가 사회보험 부담을 나누면 사회보험에 가입하는 자영업 노동자들도 늘어날 것이다. 업종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체인력지원을 하면 경조사나 급하게 가게를 비우기 어려운 경우에 도움을 줄 수도 있다. 인건비를 지자체가 부담하고 회사로 대입하면 병가나 유급휴가 같은 개념을 충분히 도입할 수 있지 않을지 상상해 본다.
"대체 인력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거 같고 하루 임대료가 150만 원 정도면 일 5만 원이니까 그거라도 보존이 되면 저는 좋을 거 같아요."
마음 놓고 장사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함께 꿈꾸면서 그럼에도 자영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할 수 있는 조언과 푸디 님의 꿈을 물었다.
"포기해야 해요. 내 생활을 좀 포기하고... 도와줄 수 있는 가족이 없다는 거, 싱글인 게이로 자영업을 한다는 건 몇 배로 더 힘들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하는 책임의 무게를 생각하라는 충고다. 거듭 이 부분을 강조한 것은 이성애 가족 중심의 사회에서 홀로 버텨내어야 했던 시간이 그만큼 녹록치 않았기 때문이리라. 더불어 자영업으로 돈 버는 일을 쉽게 생각하지 말고 자신의 생활에 많은 부분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반짝할 아이템에 솔깃해 장사를 시작하지 말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 원칙을 가지고 진득하게 밀어붙일 각오가 있어야 한다.
그만한 각오로 시작했다면 자영업은 소박한 만족감을 주는 일이기도 하다. "'먹어본 음식 중에 제일 맛있다'고 평가해줄 때나 가끔 테이블을 치울 때 남긴 거 없이 다 먹고 가시는 거 볼때는 정말 기분 좋죠". 그래서일까. 힘들다면서도 푸디 님의 꿈은 여전히 소박하게 자영업 노동자로 살아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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