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로키티 50주년 특별전 포스터.
헬로키티 50주년 특별전
사람들은 자신과 유사한 캐릭터, 혹은 자신과 전혀 달라 매력적인 캐릭터를 골라 애정을 쏟는다. 어딘가 어리숙하고 착하지만도 않은 캐릭터가 그 모습 그대로 귀엽고 사랑스럽다는 데는 묘하게 우리를 위로하는 구석이 있으니까. 완벽하지 않아도 빼어나지 않아도 어딘가 귀엽고 사랑스러운 면모가 우리에게 있을 수 있다고. 그런 모습으로도 꿋꿋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라고 토닥여주는 것 같고.
고유한 모습으로 긴 세월 담담하게 살아남은 헬로키티가 커다란 성취를 일구거나 급진적인 변화를 이룬 인물보다 믿음직스러웠다. 이토록 작은 존재가 변함없는 자신으로 사랑받는다는 일이 문득 경이로웠달까.
헬로키티가 피아노와 영어를 좋아하고 장래희망이 피아니스트와 시인이라는 걸 새롭게 알았다. 피아노와 영어를 좋아하는 고양이라니. 게다가 피아니스트와 시인이 꿈이라니.
그 사이 헬로키티의 손과 발의 둥글기가 바뀌고 옷에 달리 단추의 크기도 알게 모르게 다듬어졌다. 티 나게 달라진 게 아니라 눈치채지 못했는데 키티에게도 세월의 흔적은 남았구나. 그런데도 키티의 꿈은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오십 살이 되었지만, 여전히 꿈을 품고 사는 것 같다.
자신으로 꿋꿋하기
이것은 니체가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는 개념을 통해 말하려는 것이다. (...) 운명을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의 특별한 과거가 없었더라면 현재의 우리가 존재하지 않았을 것임을 이해한다는 의미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더 이상 과거를 이루는 핵심 요소들을 억압하는 데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고, 과거의 다양한 모습을 자신만의 독특한 삶의 기술에 녹여 냄으로써 그 과거 전체를 "소유"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 <가치 있는 삶> 64~65쪽, 마리 루티 지음, 이현경 옮김, 을유문화사
자신으로 꿋꿋하다는 건 어떤 걸까. 자신의 부족을 수용하면서 과도한 자기 비하에 빠지지 않고 장점을 인정하면서도 자만하지 않는 것, 그리고 타인을 포용하면서도 그 시선에 휘둘리지 않는 태도일 것이다. 부정적인 과거나 반항적인 기질을 억누르기만 하지 않고 그것들을 삶의 기술에 녹여내면서 담담하게 살아가는 일일 것이다.
나는 나로 꿋꿋할까. 부족하고 빈자리만 보여 그걸 채우려고 읽고 쓰는 일에 매달렸다. 새롭게 거듭나겠다는 결심으로 주먹을 꼭 쥐며 글을 쓰다 보니 어느새 세수하고 밥을 먹듯 익숙하게 적어 나가는 날로 건너온 듯하다. 글을 쓰면서 달라졌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냥 나이구나, 별 수 없이 나네' 인정하게 되었다고 답해야겠다.
다채로운 서사와 사유가 담긴 책을 읽으며 어떤 빈 곳은 채우기도 했다. 쓰고 또 쓰면서 부정적으로만 보였던 과거를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시야도 얻었다. 때로는 나답게 단단해지려 예민하게 용기를 내었고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자신은 과감하게 잘라내었다.
그러느라 실패하고 고통에 몸부림치기도 했지만,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테지만, 다양한 시도를 통해 간신히 내가 되어간다. 꿋꿋함도 자랐다. 꿋꿋할 수 없을 때는 자신을 가볍게 풀어놓는 일조차 어려웠다.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뒤로 미루고 힘들게 얻는 것만 가치 있다고 꼿꼿하게 굴었다.
뭐 신나고 재미난 일이 없을까, 가볍게 살랑거릴 일이 없을까 두리번거리는 요즘, 꿋꿋함이 그런 여유를 들였다. 있는 그대로의 나도 괜찮다고 여기면서 자신을 즐겁게 해주는 일에 너그러워졌다. 그러자 잊혔던 꿈이 움트고 내일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가슴이 간질거리는 일을 향해 한 발씩 내딛는다.
다시 꿈을 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