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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서식처' 파괴, 환경부 장관의 방문을 기다린다

멸종위기종 서식처 팔현습지 왕버들숲에 도로 공사... 도대체 이유가 뭔가

등록 2024.06.03 12:04수정 2024.06.03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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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현습지 왕버들숲의 짙은 녹색의 풍성한 아름다움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2일 주일을 맞아 오후 늦게 나가본 팔현습지는 그야말로 황홀경이었다. 이 땅의 모든 습지가 그러하겠지만 계절별로 그 모습을 달리하며 아름다움을 전하는데 그 진면목을 만난 거 같아 여간 반가운 것이 아니었다.

버드나무의 물이 오르는(새순이 돋는) 봄의 팔현습지도 물론 좋지만 녹음이 짙은 여름날의 팔현습지는 봄 못지않은 아름다움을 전해준다. 아니 오히려 더욱 풍성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온통 짙은 녹색이라 녹색의 향기마저 올라오는 듯하다.

여름 팔현습지의 풍성한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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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풀이 불어오는 바람에 살랑살랑 일렁이는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그 향기는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바로 녹색의 들풀에서 비롯되는 향내일 것이다. 들풀 하나도 허투루 나지 않은 거 같고, 들풀 하나조차 아름답다. 큰금계국으로 도배가 된 낙동강 해평습지의 모습(관련기사: 샛노랗게 물든 낙동강 해평습지... 생태폭력의 현장)과는 완전히 다른 우리 고유 식생으로 이루어진 들판의 아름다움이 이곳에는 있는 것이다.

거기에 왕버들의 짙은 녹음이 자리를 떡하니 지켜주니 이 여름날의 팔현습지가 풍성할 밖에. 그 풍성함 속으로 휙 들어갔다 나온 것이다. 녹색의 향내로 깊이 물들면서 말이다. 조금 더 눈을 위쪽으로 올리면 하식애에 자리잡은 희귀식물인 모감주나무 군락도 눈에 들어오고, 부처손이란 역시 희귀식물이 가뭄으로 돌돌 말린 것도 보게 된다.

모감주나무나 부처손, 애기석위 같은 식물은 모두 하식애 절벽 같은 척박한 환경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식물들이란 공통의 특징이 있는 식물들인데, 그런 척박한 환경에서도 생을 이어가는 그 치열함에 우선 놀라고 그들만의 생존 전략을 보는 것 또한 신기한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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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감주나무에 꽃이 활짝 폈다. 모감주나무는 산림청 지정 희귀식물로 하식애란 척박한 환경에서도 자라는 강인한 식물이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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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손이 돌돌 말려 있다. 부처손도 하식애 같은 척박한 환경에서 주로 산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부처손이나 애기석위는 비가 오지 않는 마른 날이 지속되면 녹색의 잎을 갈색으로 바꾸고 잎을 돌돌 말아 최대한 몸을 움츠렸다가 비가 와서 수분이 촉촉해지면 돌돌 말린 잎을 다시 활짝 펴서 짙은 녹색의 잎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런 신비는 도대체 어디서 경험할 수 있는지, 자연은 정말 알면 알수록 '신비'의 현장이다.

이들 '하식애 식물'을 뒤로 하고 팔현습지 가장 안쪽의 왕버들숲의 짙은 녹음이 궁금해 그곳으로 달려간다. 그런데 수리부엉이의 집이 있는 가장 큰 하식애와 왕버들숲 사이는 넓은 초지가 형성돼 있다. 초록 들판인 것이다. 이곳엔 또 얼마나 다양한 식물 친구들이 살고 있는지.

4백 미터는 족히 되는 그 오솔길을 따라 걷는 걸음마다 다른 식물이 눈에 들어온다. '개밀'이라는 식물이 넓게 깔린 가운데 개망초나 패랭이가 올라오고 또 다른 곳은 갈풀이 군데군데 군락을 이루어 올라와 있다. 물가로 눈을 돌리면 줄이란 식물이 또 강변 가장자리에 군락을 이뤄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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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풀의 향연 ⓒ 정수근

   
왕버들숲으로 드는 바로 입구에 갈풀이 군락을 이뤄 자라는데 갈풀이 바람에 일렁이는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 한참을 요리조리 보면서 관찰하고 결국 영상으로 녀석들을 담아올 수밖에 없었다. 바람에 일렁이는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답기에.


이 다양한 들풀들의 향연을 단일 식물이 뒤덮어 버린다면 그것이 아무리 아름다운 꽃을 피울지라도 폭력일 것이다. 아름다움을 가장한 '생태 폭력'. 그것은 사진 한 장으로는 가치가 있을지 몰라도 계속 보게 되면 그 아름다움을 전혀 느낄 수 없는 것으로, 바로 그 현장이 지금 낙동강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다. 비단 낙동강뿐 아니라 온 산천이 큰금계국으로 뒤덮이고 있으니 정말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인공의 화원인가, 자연의 들판인가


다행히 이곳은 큰금계국이 전혀 침입하지 않았다. 심지도 않았다. 다른 곳처럼 이곳의 관리자인 대구 수성구청에서 그 녀석의 씨는 뿌리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수성구청은 그들이 관리하는 곳에서는 봄에 유채를 파종하고, 가을에는 댑싸리를 파종해 단일 식물 군락을 만들어놓는다.

이른바 '팔현생태공원'이라 이름 붙인 곳에 인공 정원을 조성해 철마다 다른 꽃나무를 식재해 사람들에게 눈요깃거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지금도 거의 화단 같은 공간에 댑싸리를 식재해 놓았다. 아름다움을 제공해주기 위해서 식재한 것인데 한번 보고 나면 두 번 보기 싫어진다. 인공의 피로감이 주는 역효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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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수성구청이 팔현습지의 일부에 팔현생태공원이라 칭하는 화원을 조성해 그곳에 댑싸리를 심어 인공 화단을 조성해놨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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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오솔길 산책로 양옆은 그야말로 자연이다. 인공의 화단과는 완전히 다른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반면 자연의 들판이 주는 아름다움은 오래 간다. 아니 자꾸 눈이 간다. 저 녀석들은 왜 저기 저렇게 존재할까에서부터 어떻게 저렇게 다양한 모습일까 혹은 더 아름다운 저 꽃의 이름은 무엇인가 궁금증이 꼬리를 문다. 또한 그곳엔 조화로운 아름다움이 곳곳에 숨어 있어서 절로 카메라에 손이 간다.

인공의 화원인가, 천연의 들판인가? 과연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돈 들여 인공 화원을 만들어 놓았지만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대부분 후자의 아름다움을 택할 것일 터인데 왜 구청에서는 돈을 들여 인공의 화단을 조성하는 것일까?

굳이 돈을 안 들이고 조금만 관리를 해주면 천연이라는 아름다움의 매력으로 사람들을 더 불러 모을 수 있을 터인데 말이다. 수성구청은 지금이라도 생각을 바꿔야 한다. 인공의 아름다움으로는 이제 사람들을 불러 모을 수 없다. 사람들은 천연의 아름다움을 더 선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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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식애 앞에 개망초가 절로 피어 아름다운 자태를 선보인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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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부부가 자연 들판에서 결혼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팔현습지는 최근 결혼 기념 사진 촬영지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그 증거가 신혼부부들의 웨딩 촬영 현장으로 이곳 팔현습지 자연 들판이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팔현습지를 올 때마다 거의 매번 자연 들판에서 웨딩 촬영을 하는 팀을 만나게 될 정도다.

일생 한 번뿐인 그 소중한 장면을 위해서 그들이 선택한 것은 인공 화원이 아닌 자연 들판이었다. 자연 들판이 주는 아름다움을 그들은 잘 알고 그것을 선택한 것이다. 사진이란 결과물로도 잘 나타나기에 그들은 '인공' 대신 '자연'을 선택하는 것이리라.

멸종위기종의 숨은 서식처에 길을 낸다는 환경부 왜?

갈풀이 살랑이는 팔현습지 자연 들판을 뒤로 하고 최종 목적지인 왕버들숲으로 들었다. 이곳은 언제나 신선함 아름다움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너무 아름다워 성스럽기까지 하다. 원시 자연숲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으로 그 속에 들어가 있는 것 자체가 하나의 그림이다. 이곳에서의 사진이 특히 아름다운 이유다. 신비 속에 담겨 있는 모습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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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 자연성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팔현습지 왕버들숲. 멸종위기 야생동물들의 숨은 서식처로 기능을 하는 곳이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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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위기 야생동식물들의 마지막 서식처인 숨은 서식처 팔현습지 왕버들숲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더구나 이곳은 어린 수리부엉이가 비행 연습을 하는 곳이자 담비가 날랜 걸음으로 나타나 휙 지나가는 곳이기도 할 정도로 야생동물들에게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공간이다. <한국식물생태보감>의 저자인 생태학자 김종원 전 계명대 교수에 의하면 이런 곳을 '숨은 서식처(Cyptic habitat)'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곳은 수리부엉이와 담비 같은 멸종위기종 야생동식물들이 인간 개발을 피해 거의 마지막으로 머물게 되는 곳으로, 이런 곳이 사라지면 생물종들의 멸종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어서 국가적 차원에서 숨은 서식처 조사와 관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역설할 정도로 이곳의 가치는 크다.

경관의 수려함에 더해 생물다양성의 보고인 이 왕버들숲이야말로 팔현습지의 핵심 생태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왕버들숲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바로 환경부 산하 낙동강유역환경청이 이곳에 높이 8미터에 길이 1.5㎞에 이르는 탐방로를 조성하려 하기 때문이다. 낙동강유역환경청이 제시한 조감도를 보면 그 산책로는 이 왕버들숲을 그대로 관통하게 된다. 왕버들숲 곳곳에 꽂혀 있는 공사용 깃발이 그것을 증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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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버들숲에 공사용 깃발이 꽂혀 있다. 이 앞으로 길을 낸다는 표식이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과연 보도교가 이 오래된 왕버들숲을 밀 정도로 가치 있는 일이고 꼭 필요한 일일까? 이 새로운 길의 최종 목적지는 동촌유원지다. 동촌유원지까지 연결하기 위해서 이 길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그 길은 잘 정비돼 있다. 강촌햇살교라는 다리를 건너 강 반대편으로 가게 되면 자전거 도로와 산책로가 이미 잘 정비돼 있고 1㎞ 하류에 다시 동촌유원지로 넘어가는 다리가 건설돼 있어서 맞은편 길로도 얼마든지 동촌유원지로 갈 수 있는데 왜 굳이 이 아름다운 왕버들숲을 밀고 170억 원이나 들여서 직선 길을 놓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강 건너로 돌아서 가도 걸어서 5분 차이이자 자전거로는 1분 차이뿐인데 말이다. 고작 5분을 절약하기 위해서 170억 원이나 들여서 멸종위기종의 '숨은 서식처'를 파괴하면서까지 이 '삽질'을 고집해야 하는 이유가 도대체 뭐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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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산지 앞으로 직선길을 낸다는 것이다 .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환경부의 합리적 해명이 필요한 지점이다. 멸종위기종들의 서식처를 파괴하고 최소 150년은 넘은 아름다운 왕버들숲까지 파괴하면서까지 이 길을 고집하는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천정비공사라는 이름으로 벌이는 사기 공사일 뿐이다.

환경부의 공식 해명을 기다린다. 한화진 환경부 장관은 팔현습지 이 핵심 생태 구간을 걸어봐야 한다. 직접 걸어서 팔현습지 하천숲도 거닐어 보고, 들풀이 만발한 초지의 오솔길도 걸어보고, 멸종위기 야생동물들의 숨은 서식처인 왕버들숲도 걸어보고 난 후에 과연 이 길을 꼭 내어야 하는지 판단해 보시라. 현장에 답이 있다. 환경부의 공식 해명과 한화진 장관의 방문을 기다려본다.
덧붙이는 글 기자는 대구환경운동연합 활동가입니다.
#금호강팔현습지 #왕버들숲 #숨은서식처 #김종원교수 #환경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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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깎이지 않아야 하고, 강은 흘러야 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공존의 모색합니다. 생태주의 인문교양 잡지 녹색평론을 거쳐 '앞산꼭지'와 '낙동강을 생각하는 대구 사람들'을 거쳐 현재는 대구환경운동연합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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