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끼 물까치의 화려한 비행을 응원하며

등록 2024.06.12 15:49수정 2024.06.12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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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문턱에 다다른 6월 대낮의 볕은 뜨겁기만 했다. 하루가 달리 몸집을 키우는 초록 식물들에 눈이 시릴 지경이다. 한여름처럼 뜨거운 볕에 물 주는 것을 며칠만 소홀히 하면 손바닥만 한 정원의 초록이들은 풀이 죽어 축 처진다. 부지런히 호스를 당겨 물을 주는데 수국이며 벚나무에 지저분한 것들이 눈에 거슬린다.


누군가 하얀 물감을 찍 짜놓은 듯한 형상의 정체는 무엇일까? 바로 새똥이었다. 모두가 잠든 이른 아침 혼자 깨어 마당에 나오면 이름 모를 새들이 지저귀는 자연의 소리에 세속에 찌든 정신이 정화되는 느낌이다.

손가락만 한 작은 새들이 울타리 주변을 걸어 다니는 모습은 깜찍하고 사랑스러웠다. 여기까지는 단독주택 거주자의 이름다운 그림, 낭만적인 전원생활이다. 지금처럼 새똥이나 고양이똥, 잡초와의 전쟁, 온갖 벌레와의 싸움은 현실이다.

그러면 그 작은 새들이 싸 놓은 똥이란 말인가? 그렇다기엔 양도 많고 체급 대비 너무 많은 양을 싸 놓은 듯했다. 갑자기 새들이 과민성대장증후군이 생겼다거나 배탈이 났을 리도 없고 기가 막혔다. 물줄기를 세게 틀어 수국잎에 잔뜩 싸놓은 새똥을 씻어냈다. 그동안 돌보지 못한 화분들을 정리하고 시든 줄기를 잘라주는데 뒤통수가 따끔거렸다.

수년 전 이 집으로 왔을 때 울타리 너머엔 단풍나무 세 그루가 있었다. 울타리보다 키가 훨씬 작았던 나무는 어느새 울타리를 훌쩍 넘어 무럭무럭 자랐다. 언제 클지 멀게만 느껴지던 순간이 지나고 울창해진 나무를 보니 찡했다.

그러고 보면 인생을 살아가며 절대 오지 않을 것 같은 순간도 잊고 있다 눈을 뜨면 어느새 그 지점에 다다랐을 때가 있다.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고통의 날들도 시간이 해결해 주기도 한다. 나무의 삶도 우리네 삶도 참 많이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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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누구냐? 나를 노려보던 새끼 물까치 ⓒ 원미영


본론으로 돌아가 단풍나무 위에서 가만히 나를 노려보는 놈(?)을 발견했다. 새였다. 신기해서 가까이 다가가 핸드폰을 들이밀었는데 도망도 가지 않고 그 자리에서 빤히 나를 본다. 그러다 자리를 옮기는 모양새가 영 시원찮다.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푸드덕푸드덕 불안하기만 하다. 무슨 새가 저렇게 어설플까? 그 순간 내 머리 위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다.


"까악 까욱 까 까-"

물까치였다. 까만 머리통에 하늘빛 깃털이 섞인 꽁지가 기다란 새. 언뜻 생긴 것만 보면 신비스럽고 아름답다. 하지만 우는 소리는 영 별로다. 물까치를 알게 된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몇 년 전부터 무리를 지어 하도 시끄럽게 날아다니길래 찾아봤더니 이름이 물까치였다. 물까치 서너 마리가 내 머리 위로 빙빙 돌며 시끄러운 소리를 냈다. 꼭 나를 위협하는 듯했다.

'뭐야? 왜 이래? 내가 뭔 짓을 했다고?'

떳떳했지만 내심 공격을 할까 두려운 마음이 들어 제자리로 돌아가 데크 위를 빗자루질했다. 문득 생각해 보니 며칠 내내 시끄러운 새소리가 들렸고, 새똥이 넘쳐나고, 집 주변으로 물까치들이 무리 지어 날아다녔다. 귀를 기울여 보니 성조와는 달리 병아리 소리 같은 고음의 까까 소리가 들렸다.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

울타리 틈 사이로 이리저리 살펴보니 역시나 단풍나무에 새 둥지가 있었다. 가장 높고 풍성한 나무였다. 그 안엔 노란 입을 벌리고 꿈틀거리는 새끼가 있었다. 아까 가지에서 어설프게 푸드덕거리며 나를 바라봤던 것도 바로 물까치 새끼였다. 가까이 다가가 사진을 찍으니 어미 새들이 경계하며 날아와 나를 위협한 것이었다. 참고로 물까치는 공동육아를 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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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까치 둥지 단풍나무 위의 물까치 둥지, 정녕 매듭을 부리로 만들었을까? ⓒ 원미영


며칠째 나는 파파라치처럼 울타리 틈 사이로 둥지를 몰래 훔쳐보고 있다. 야무지게 지어놓은 둥지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조그만 부리로 언제 저렇게 나뭇가지와 마른 잎, 노끈 같은 것들을 물어다 날랐을까?

우리 집 마당에 있던 노끈도 가져간 듯했다. 사람이 일부러 둥지와 굵은 나뭇가지를 연결해 놓은 듯 보이는 노끈의 매듭이 눈에 띄었다. 세상에, 부리로 매듭을 지은 걸까? 놀라웠다. 물까치 너, 생각보다 똑똑하구나(새대가리라는 말은 취소할게).

연이어 새끼들이 둥지 밖으로 나와 가지 위를 엉금엉금 걸어 다녔다. 새끼치고 덩치가 꽤 컸다. 과연 새끼가 맞나 싶어 고개를 갸우뚱거리는데 이심전심 초등생 아들이 말했다. 

"엄마, 저 새 혹시 물까치가 아니라 뻐꾸기 새끼 아니야?"

아마 탁란이라고 하지? 아들은 뻐꾸기가 물까치 둥지에 알을 낳았을 수도 있다고 했다. 그렇다고 하기엔 날갯죽지의 푸르스름한 색이며 까만 헬맷을 쓴 듯한 모습이 어미와 똑 닮았다. 역시 피는 못 속인다. 

어린 새가 혹시나 나무에서 떨어질까 조마조마했다. 어린 아이들을 키우던 마음으로 바라봤다. 어미(인지 아비인지 모른다)는 밤낮으로 부지런히 뭔가를 물어다 새끼의 입 속으로 넣어준다. 눈 앞에 펼쳐진 조류의 모성애에 괜스레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어설픈 날갯짓을 하는 새끼들은 머지않아 둥지 밖을 떠나 훨훨 날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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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까치의 날갯짓 날갯짓을 하다 아래 가지로 떨어졌다 ⓒ 원미영

#물까치새끼 #둥지매듭 #물까치둥지 #물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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