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집에서 절화를 사와 화병에 꽂는 것보다 앞뜰에 핀 들꽃을 들여다보는 게 더 즐거운 날들이다. 피고지는 들꽃이 예뻐서 이제 막 태어난 아이를 들여다보듯 한참을 바라보게 된다.
김보민
이뿐이면 다행이다. 난데없이 샤워실 구멍이 막혀 역류하고, 이층 어딘가에서 물이 새어 일 층 천장에서 '똑똑'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문제를 찾아 고쳐주는 해결사들은 부른다고 곧장 오지 않는다.
불편한 채로 몇 주를 지내기도 하고, 비싼 비용을 치르기도 해야 한다. 2년에 한 번 정화조를 관리해야 하고, 비나 눈이 많이 오는 날은 전기가 끊기기도 한다. 텃밭에 심어둔 상추는 동물들이 와서 따먹는 통에 정작 나는 만나본 적도 없고, 얼굴도 모르는 동물들과 경쟁하며 상추를 수확한다.
렌트한 집이기에 집주인보다 관리 영역이 훨씬 적음에도 집을 둘러싼 노동은 상당하다. 그렇다면 이사를 가게 되었을 때 나는 또다시 주택을 선택할까?
주택에 사는 일상은 흥미진진하다
왕초보 주택살이지만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주택을 택할 것이다. 지금 사는 곳은 집들이 모여 있는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다. 이웃이 많지 않아 달리러 나가지 않는 한 하루 종일 사람 구경할 일이 없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모두 학교에 가고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온 지구가 나를 위해 존재한다는 착각에 빠진다.
봄이 오면 분주한 딱따구리와 허밍버드의 노래를 배경 음악 삼아 설거지를 한다. 올해는 앞마당 계단 아래에 토끼 가족이 입주를 해 거주 중인데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는 길에 마주치면 둘 다 머쓱하게 멈춰 서 있다 제 갈 길을 가는 재미가 있다. 마치 순서라도 정해놓은 듯 피었다 지고 또 피는 풀꽃의 이름을 찾아보는 재미도, 어디선가 날아온 씨앗이 살포시 자리를 잡고 고요히 꽃을 피우는 장면을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집 앞에 있는 호수는 그야말로 자연이 선사한 놀이터다. 바닷가에서 해수욕은 해봤지만, 호수에서 수영을 해본 건 태어나 처음이었다. 나와 아이들에게 호수는 도전 그 자체였다. 30도가 웃도는 날엔 하교한 아이들을 데리고 곧장 호숫가로 향한다. 미리 쪄놓은 옥수수를 호숫가에서 맛나게 먹고, 정신 없이 물놀이 하다 보면 바람이 살짝 서늘해지고 똑똑한 배꼽 시계가 신호를 보낸다. 5분도 채 안 되어 집에 돌아와 야무지게 저녁밥을 먹고 나면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서둘러 꿈나라로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