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공단에서 금속노조 일반분회의 커피트럭과 함께 노조 홍보하고 기념촬영.
공계진
공계진은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았다. 또래보다 1년 늦게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고등학교 때도 몸이 안 좋아서 1년 동안 휴학을 했고, 대학교는 재수해서 들어갔다. 80년도에 고려대학교 화학과에 입학했다. 광주항쟁이 일어난 해다. 교정은 최루탄 냄새로 가득했고, 매일 시위가 이어졌다. 이런 시대에 무언가 해야 한다며 방법을 찾고 있던 그에게 불교학생회가 눈에 띄었다.
"수업 시간에 한 친구가 <전환시대의 논리>라는 책을 보고 있더라고요. 그 친구에게 나도 사회과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했더니 '불교학생회'를 알려줬어요. 당시 불교학생회는 종교모임 서클에서 이념 서클로 바뀌는 과정이었어요. 거기서 79학번 선배들을 만나 학습을 시작했고, 얼마 뒤엔 지하 서클에 가입해 사회과학 책을 읽고 데모를 공모(?)했어요."
그가 4학년이던 1983년 5월 18일, 광주항쟁 3주년을 맞아 학내에서 친구들과 함께 고공시위를 했다. 공계진을 비롯해 몇몇 친구들이 치고 나가고 후배들이 그때를 틈타 교문 밖으로 나가는 계획을 세웠다. 공계진은 시계탑에서 치고 나가기로 했고, 다른 친구는 사범대 건물에서 치고 나가기로 했다. 공계진은 다리가 불편했기에 치고 나가지는 못했다. 대신에 건물에 몸을 묶고 버틸 생각이었다. 시계탑에 몸을 묶었다. 10분 만에 경찰에게 잡혔다.
치고 나가기로 한 친구들 역시 구호 한 번 제대로 못 외치고 학내에 상주하던 형사들한테 잡혔다. 그 일로 3년형을 선고받았다. 지금 생각하면 높은 형량이었다. 당시에는 형량이 높다는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구치소에 갇혔다. 다행히 그해 12월 성탄절 특사로 석방되었다. 석방되자마자 갈림길에 섰다. 대학에 복학해 민주화운동을 이어가자는 '복학파'와 사회로 나가 노동운동을 해야 한다는 '반복파'의 논쟁이 벌어졌다.
"저는 당시에 사회로 나가 노동운동을 하자는 이른바 '반복파'였어요. 그렇게 마음을 먹고 공장에 들어갈 준비를 했어요. 솔직히 고민이 많았어요. 노동운동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장애가 있는데 공장에 들어가서 일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한 친구한테 그런 고민을 털어놓으니까 '운동한다는 놈이 해보지도 않고 못 한다는 게 말이 되냐'고 하더라고요. 그 말이 맞았어요. 해보지도 않고 못 한다는 건 운동가의 자세가 아니지요. 공장에 들어가기로 마음먹었어요."
공장에 취업하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다리가 불편하니 면접은커녕 공장에 들어가기도 전에 정문 경비원들에게 잡혔다. 그렇게 좌절을 거듭하고 있을 때 당시 속해 있던 조직에서 구로에 있는 봉제공장 부흥사에 '꼭 입사해야 한다'는 지시가 내려왔다.
"어떻게 해서든 입사를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부흥사로 향했어요. 재단, 봉제, 아이롱(다리미) 가운데 아이롱 업무를 하는 곳으로 들어갔어요. 공장에 찾아갔는데 처음엔 경비실에서 쫓겨났어요. '당신은 이런 데서 일하기 힘드니까 나가라'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어요. 세탁소에 가서 아이롱 업무에 대한 얘기를 듣고 다음 날 또 갔어요. 한 번도 아이롱 업무를 해본 적 없는 '쌩초짜'였는데 '수년간 아이롱 업무를 해왔고, 팔 힘도 강해서 자신 있다'고 거짓말을 했어요. 그제야 경비실에서 들어가라고 했어요."
우여곡절 끝에 관리자를 만나 면접을 봤다. 관리자는 공계진을 보자마자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가라'고 했다. 그래도 일할 수 있다고 계속 사정을 하자 관리자는 '일을 못 한다고 판정될 시 자진 퇴사해야 한다'는 각서를 쓰라고 했다. 결국 각서를 쓴 뒤 일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집에서 가정용 다리미를 만져본 게 전부인 그가 공업용 스팀다리미를 사용해서 일을 하는 건 쉽지 않았다.
다림질이 익숙하지 않아서 금방 정체가 들통날 줄 알았다. 부서에 배치되었으니 일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했다. 옆에 있는 동료들이 도와주었다. 공계진을 딱 보면 거짓말하고 들어온 줄 알았을 텐데, 티 내지 않고 도와주었다. 처음 한 달은 너무 힘들었다. 각서까지 쓰고 들어왔기 때문에 잔업도 일부러 했다. 안 그래도 장애가 있는 다리인데 오래 서 있다 보니 더 아팠다. 걷기도 힘들었다. 노동자들을 조직하려면 퇴근하고 술 한잔도 해야 하는데 너무 힘들어서 집으로 바로 갔다. 30년도 더 된 일이다. 그렇게 힘든 일을 견딜 수 있었던 건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어야겠다는 다짐 때문이었다.
그가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려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