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알라모아나 센터에서 공연 중인 훌라 댄서들. 손을 코밑에 대어 "향기 맡다"를 표현하고 있다.
전윤정
하와이 전통 민속무용인 훌라(hula)는 기본 발 스텝이 어렵지 않고, 손동작으로 노래 가사를 손동작으로 표현하는 춤이라 쉽게 다가갈 수 있다. 하와이 선주민(원주민)은 고유한 언어를 가졌지만, 문자가 없어 기록할 수 없었다.
선조의 신화와 역사, 전통과 삶, 자연의 아름다움 등을 손동작으로 만들어 훌라를 통해 계승했다. 서양문명이 들어오면서 라틴문자로 하와이어 표기가 가능하지만, 수화(手話) 같은 춤 훌라는 여전히 '심장의 언어 (Hula is the language of heart)'로서 사랑 받는다.
훌라 손동작은 단순하면서도 아름답다. 손가락을 동그랗게 모으면 예쁜 '꽃'이 된다. '약속하다'는 오른손 주먹을 들어 위에서 아래로 왼손 주먹을 두드린다. 마치 망치로 못을 박는듯한 동작은 '약속은 꼭 지켜야 한다'라는 단호함이 엿보인다.
양손 검지를 세워 가운에 모았다 양 끝으로 멀어지는 동작은 '헤어진다'를 뜻한다. 손가락 하나만 세워도 사람이 되고, 두 손가락을 떼기만 해도 헤어진다는 뜻이 전해지니 신기하다. 소설가 김훈은 궁극적으로 주어와 동사만으로 된 절제된 문장을 쓰고 싶다고 했다는데, 훌라야말로 간결하면서도 힘 있는 언어가 아닌가?
"여러분은 로봇이 아니에요. 부드럽고 우아하게~"
"순서는 잘 외웠는데 미소가 없으니 전교 1등이 추는 춤 같아요."
새로운 곡을 배울 때마다 손과 발이 따로 놀아서 로봇처럼 경직되고 헤맬 때가 많지만, 가장 힘든 것은 춤추는 내내 멈추면 안 되는 '훌라 미소'다. 내가 평소에 얼마나 웃지 않으면, 이렇게 힘들까. 어두운 지하철 차창이나 스마트폰 카메라를 켰는데 셀피모드 일 때, 무표정하고 심술궂은 내 얼굴에 소스라치게 놀랄 때가 많긴 하지. 하지만 한 시간 넘게 억지로 웃으며 훌라를 추다 보면, 수업 끝날 즈음엔 거울 속에 내가 환하게 웃고 있다.
내 웃는 얼굴보다 더 좋은 것은 함께 춤추는 사람들의 미소와 마주쳤을 때다. 그이가 보내는 미소에 마음이 확 열린다. 훌라 수업이 끝나면, 무거웠던 마음이 훌라를 함께 추며 마주치는 미소 덕분에 마음이 가벼워졌다는 고백을 자주 듣는다. 가끔 댄스 연습실을 잡아서 혼자 훌라 연습할 때 재미가 없는 이유는 이렇게 함께 미소를 나눌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낯선 하와이어도 나의 미소를 돕는다. 훌라는 노래 가사를 손동작으로 표현하니, 새로운 곡을 배울 때는 가사를 함께 읽고 뜻을 배운다. 꽃은 '푸아' 조개는 '푸푸' 거북이는 '호누' 새는 '마누'…… 풍선에 바람 빠지듯 발음이 귀엽다. 반복되는 단어도 재밌다. 웃다는 '아카아카('aka'aka) 시원하다는 '후이후이(hu'i hu'i)' 빨리빨리는 '위키위키(wikiwiki)'다. 위키백과, 나무위키 등 문서 편집 권한이 모든 사람에게 부여된 웹사이트 또는 시스템을 뜻하는 '위키'가 바로 이 하와이 단어에서 나왔다.
제일 재밌는 하와이말은 물고기 이름 '후무후무누쿠누쿠아푸아아
(humuhumunukunukuāpuaʻa)'가 아닐까? 애덤 샌들러, 드류 베리모어 주연 영화 <키스만 50번째> 삽입곡으로 나오는 <My Little Grass Shack>에는 "후무후무누쿠누쿠아푸아아가 헤엄치는 곳"이라는 가사가 있다. '리프 트리거피시(Reef triggerfish)'라는 쥐치복과 바다 어류인데, 세상에서 가장 긴 물고기 이름으로 등재되어 있다. 하와이 주어(州魚)이기도 한 귀하신 몸이다. 물고기 이름을 처음 발음할 때 어디서 끊어 읽어야 할지 몰라 하면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훌라를 추며 재밌고 귀여운 하와이어를 들으면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지곤 한다.
도전하기 딱 좋은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