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일병이 입원해 있는 병원에서의 소견서 중 일부. 의료진은 뇌기능 회복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의견이다.
변상철
10월 22일 훈련 중 허리 부상을 당한 원 일병은 진지에서 내려와 자대 근무를 하게 된다. 허리 부상 치료를 받았으나 정작 불안한 마음과 삶에 대한 회의는 점점 더 깊어졌다. 10월 25일부터 병영생활전문상담관에게 부대 생활의 어려움과 자살과 관련한 심정을 토로했다. 같은 날 간부와 한 면담에서도 "최근 감정 기복이 매우 심해 고첨도 진지에서 매우 우울한 상황으로 생활을 하다가 최근에 자살 생각과 가지고 있는 상비약을 복용하여 자살할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군은 자살 징후가 있는 병사를 발견하는 즉시 정신과 진료, 그린캠프 및 병역심사관리대 입소 등 상급 부대로 신속히 분리 조치하도록 되어 있다(부대관리훈령 제236조2항 등). 자해 및 타해의 위협이 있다고 판단 시에는 절차에 따라 군병원에 입원 치료 조치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원 일병은 10월 25일 자살 식별이 되었는데도 분리 조치되지 않았다. 그대로 자대에서 근무하던 중 10월 30일 진행된 병영생활전문상담관과 한 면담에서 "부모님의 걱정을 들어도 자살 생각이 멈추지 않음", "현재 마음은 살아도 그만 안 살아도 그만이며 어떻게 되도 상관없음"이라고 했고, 이에 상담관은 정신과 진료, 입원 등이 고려된다고 기재했다.
상담관에게 내용을 보고 받은 부대 간부는 당일 면담 일지에 "중대장님과 행보관님께 보고하였고 00이는 수요일 구리병원 정신의학과 진료를 받을 예정"이라고 보고했다. 다음날 원 일병은 국군구리병원 정신의학과 진료를 받았고, 군의관과 한 면담에서 "높은 건물에서 뛰어내리기, 약물 과다복용" 등의 방법으로 자살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부대는 부모에게 연락해 00이를 데리고 가라고 했다. 11월 1일 원 일병의 부모는 중대장의 전화를 받고 '00이가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어하여 휴가 조치를 해주겠다'고 해 부대를 방문했다. 부대에 도착하자 중대장, 행정보급관, 원 일병이 있었다. 원 일병은 휴가 차림에 밝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휴가를 주겠다고 했던 중대장은 부모를 보자 휴가가 취소되었다고 했다. 당일 오전 부대 참모장이 원 일병과 휴가 면담 과정에서 자살 충동에 대해 듣고는 휴가를 취소했다는 것이다. 24시간 밀착 보호를 하며 정신병원에 입원할테니 휴가를 내달라고 했던 부모의 제안도 참모장은 거절했다.
결국 휴가가 취소된 원 일병은 그대로 자대에 머물러야 했고, 이후 11월 3일 군단 병영심사반에 입소했다. 그런데 원 일병의 중대장은 부모에게 '힐링캠프'에 입소했다며 사실과 다른 말을 했다고 한다. 행보관과 원 일병 아버지와 한 통화에서 "저희들도 일반 그런 저희들이 맨 처음에 병역심사대, 뭐 그린캠프 이거 말씀드린 거는 군대에서 운영하는 그냥 힐링캠프 그런 곳이고"라고 하여 원 일병이 입소한 곳의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2023년 12월 7일 통화).
약 18일간의 군단 병역심사반 생활을 끝내고 퇴소한 원 일병에 대해 구리병원 군의관은 '자살하고 싶다는 말'을 하는 등 원 일병의 심리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아 민간병원에라도 위탁 입원할 것을 권유했다. 이에 중대장은 부모에게 연락해 민간 정신병원에 입원할 것을 권유했고, 당일 원주의 한 민간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민간 병원 입원 후 치료를 받던 원 일병은 12월 7일 담당 원장의 회진 중 군병원으로 재입소할 수 있다는 원장의 말을 듣고 병원 내 운동실에서 첫번째 자해 시도를 했다. 다행히 주위에서 이를 즉각 발견하고 폐쇄병동으로 분리 조치하여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그런데 담당 병원 원장이 12월 14일 오전 회진에 위와 같은 말을 다시 한 번 했고, 부대 복귀에 두려움을 느낀 원 일병은 2차 자해 시도를 했다.
원 일병의 사건 수사는 여러 갈래로 이뤄지고 있다.
먼저 원 일병에게 행해진 군 간부의 협박 혐의다. 원 일병의 자살 징후 등 불안한 상태가 지속되자 당시 중대장과 행정보급관은 "군 생활이 불가하다. 행정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서를 작성하여 원 일병의 병역심사대 입소를 권유했고, 이에 11월 3일경 원 일병은 병역심사대에 입소하게 된다. 그런데 병역심사대에 입소해 있는 동안 중대장 등이 원 일병에게 연락해 "사회에서 멀쩡했는데, 군에서만 이러면 병역기피로 옥살이를 할 수 있다"며 협박과 회유 등을 했다는 것이다. 이에 군사경찰은 군형법 제9장 협박과 회유 등의 혐의로 경찰에 수사 의뢰를 한 상태다.
또 하나는 원 일병의 극단적 선택 과정에서 이를 보호하고 예방해야 할 병원의 관리 소홀 위반 혐의이다. 원 일병의 진료를 위해 군에서 위탁한 민간병원은 정신질환자를 보호하고 치료하는 기관으로 두 번의 극단적 선택 과정에서 의료진 누구도 원 일병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했다. 더욱이 극단적 선택을 방지하고 치료를 위한 목적으로 격리 조치되어 운영되어야 할 폐쇄병동에서 원 일병의 상태가 더욱 악화한 점 은 원 일병의 극단적 시도를 예견하고 이를 예방하기 위하여 주의를 다해 보호·치료해야 할 의료기관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이다. 이에 대해서도 경찰이 수사하고 있다.
이 밖에도 위에서 언급한 방공포 진지 투입 전 3주간의 교육을 하지 않은 점 등을 들어 군 간부들에게 근무 태만의 죄와 항명죄 혐의로 수사 의뢰된 상태다.
채 상병 사망 사건에서 보듯 군에서의 사망 사고는 매년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지만 군에서의 진상규명과 피해 병사 처리 과정은 늘 개운하지가 않다. 이는 사건에 얽힌 군부 내의 이해 관계가 개입되기 때문이다. 병사의 죽음이나 사고가 군의 이해관계로 인해 소홀이 다뤄지거나 은폐된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현재 원 일병 가족은 한달에 수천만 원에 이르는 치료비를 감당하고 있다. 군에서는 위탁 치료비를 정산해 주고 있지만, 그것도 모두 처리해 줄지는 미지수다. 치료비 정산을 하려면 원 일병 가족이 각종 서류 등을 모아 제출해야 한다. 생명이 위독한 아들을 두고 서류 한 장 떼는 것조차 부담스러운 가족에게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원 일병의 가족은 "군에서 사고가 나면 군의 전력 손실을 우려해 책임자 처벌을 우선하는 것이 아니라, 군의 동요 방지를 이유로 아무 일도 없는 듯이 덮기에만 급급한 것 같다. 이번 일도 중대장과 행보관 뿐만 아니라 당시 참모장이나 사단장 등 원 일병의 휴가나 조치를 막았던 책임자들도 조사받고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런 고위 간부들이 아무 일도 없는 듯이 영전하고 진급한다면 대한민국 군이 썩지 않았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나"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끝으로 원 일병 가족은 "원 일병에게 욕설을 하거나 모욕한 병사들도 모두 경찰에 수사를 의뢰할 것이다. 그리고 이 사건의 책임 있는 지휘관과 고위간부들 역시 책임지도록 모든 할 수 있는 것을 다하겠다. 그래야 원 일병이 의식을 찾고 깨어나더라도 남은 가족들이 떳떳하게 원 일병 얼굴을 볼 수 있을 것 아니냐"며 군을 상대로 한 진상 규명을 멈추지 않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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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선택 시도한 병사, 부대는 제대로 조치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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