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학년도 7월 고3 전국연합학력평가가 실시된 11일 한 고등학교에서 3학년 학생들이 시험을 치르고 있다. 자료사진.
연합뉴스
우선, 그들은 '시험 능력주의'를 철저히 신봉한다. 시험을 통해 개인의 역량을 정확히 검증할 수 있다고 보지는 않지만, 시험을 통해 계량화된 객관적 지표가 차별의 근거로 쓰이는 데는 예외 없이 동의한다. 그들이 서열화한 학벌 구조를 필요악이라고 여기는 것도 그래서다.
의치대나 'SKY'에 다니는 아이들의 학벌 구조 혁파 주장은 먹혀도, 지방대생이 그런 이야기를 꺼내면 대번 '지질한 ×의 푸념' 정도로 치부한다. 징징거리지 말고 아니꼬우면 시험 성적을 통해 말하라고 무질러버린다. 차별은 시험으로 증명된 능력에 대한 정당한 처분이라는 거다.
둘째, 이승만과 박정희,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말이 재평가지, 민주주의를 압살한 독재자라는 기존의 역사적 평가를 수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들이 저지른 과오는 인정하되, 그로 인해 가려진 공적도 함께 평가하는 게 공평하다고 목청 돋운다.
이승만이 없었다면, 적화통일을 막지 못했을 거라는 주장은 아이들에게도 전가의 보도다. 외교적 수완을 발휘해 미국을 우방으로 만들었고,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를 일으켜 세웠다고 강조한다. 그가 하버드대와 프린스턴대에서 받은 박사 학위를 거론하면서, 적어도 같은 독재자라도 북쪽의 김일성에 비해 백배 천배 낫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박정희라는 이름을 경제 성장의 상징으로 여기는 건 아이들도 똑같다. 그의 친일 부역도, 독도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요원하게 한 굴욕 외교도, 미국의 용병으로 팔려 간 베트남 파병도, 희대의 악법이라는 유신 헌법과 긴급조치도, 전태일의 분신과 YH 무역 사건으로 대표되는 극심한 노동 탄압도, "이만큼 먹고 살게 된 게 누구 덕이냐?"는 질문 하나면 죄다 무시된다. 아이들조차 그 모든 것들을 경제 성장의 '자잘한' 기회비용 정도로 인식한다.
셋째, 동남아 등지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를 비하한다. 또래들끼리 친구들의 외모를 조롱할 때 흔히 '외노자 닮았다'고 말한다. 그들이 우리 국민의 일자리를 빼앗고 임금을 낮추는 데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며 눈을 흘긴다. 심지어 그들의 이민을 막지 못할 거면, 경제적 여건을 기준 삼아 차별적으로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중국인에 대한 혐오는 노골적이고도 극단적이다. 위생 관념과 공공의식이 부족하다는 지적은 약과다. 중국 앞에는 후안무치하다거나 돈지랄한다는 수식어가 꼬리표처럼 따라붙는다. 김치도, 한복도 자기 것이라고 우기는 등 이웃 국가에 대한 배려는 눈곱만큼도 없다고 한다. 아예 중국을 세계인들의 '공공의 적'으로 규정한다.
넷째, 정치적 올바름, 이른바 'PC(Political Correctness)'에 대해 강조하는 행위를 꼴불견, 나아가 폭력으로 여긴다. 서구에서 비롯된 'PC'는 기실 국적과 성별, 사상과 종교, 장애 등을 이유로 사람들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시작된 사회 운동이다. 그런데, 정확함을 의미하는 'Correctness'가 올바름으로 번역되면서 편견과 논란이 빚어졌다.
말장난 정도로 여겼던 'PC'가 부도덕성을 공격하는 소재로 쓰이자, 반격이 시작됐다. '꿀 먹은 벙어리'나 '눈먼 돈'이라는 일상 표현이 장애인을 희화화했다는 이유로 비판받고, 기존의 '유모차'를 '유아차'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에 아이들은 해도 너무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급기야 조세희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라는 제목도 '왜소증 환자가 쏘아 올린 작은 공'으로 바꿔야 하는 거냐며 키득거렸다.
아이들은 'PC'를 내로남불과 동의어로 여긴다. 늘 입바른 소리를 하지만, 막상 행동은 여느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이들을 'PC충'이라며 폄하하곤 한다. 아이들 사이에선 표리부동한 인간을 지칭하는 경멸의 단어다. 차별을 막자는 운동이 되레 편견과 차별을 공고화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나날이 심화하고 있는 페미니즘에 대한 혐오다. 이제 '페미 척결'이라는 구호는 극우 청소년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들에게서 비롯됐을지언정 이젠 남학생들 다수가 공유하는 가치관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여자 친구를 사귈 때 '사상 검증'부터 시작한다고 선선히 말하는 지경이 됐다.
페미니즘이 'PC'의 일종으로 간주가 되면서 아이들 사이에서 여성 혐오 정서가 더욱 강해졌다. 여성의 권리가 강조되면서 남성이 역차별받고 있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고, 여성가족부를 폐지하지 않을 거면 '남성가족부'도 만들라는 주장까지 내놓는다. 듣자니까, 학교 내에 세간의 여성 혐오 주장에 맞서 남성 혐오 사례를 공유하며 '전투력'을 키우는 동아리까지 꾸려지고 있다고 한다.
이들이 사회인으로 살아갈 세상이 두렵다
장차 이들이 졸업 후 사회인으로 살아가게 될 세상이 두렵다. 녹록지 않은 세상살이의 '매운 맛'을 보며 아이들이 경험을 통해 체득한 편견과 인식은 자연스럽게 닳고 깨지며 둥글어질 테다. 다만, 교실에 맞장구치는 목소리만 들리는 현실에서 그들의 극우적 신념이 바루어질지는 장담 못하겠다.
부디 기우이길 바라지만, 스스로 강자와 동일시한 채 약자 혐오와 무한경쟁 의식으로 무장된 극우 청소년들이 학교를 장악해 가는 모습이 확연하다. 교육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심어주지 못하고, 사회의 극단적인 양극화가 극우적 사고의 온상이라는 점엔 이견이 없다. 다만 지금은 세상을 '해석'할 때가 아니라 서둘러 '변혁'할 때다. 시간이 많지 않다.
사족. 극우 청소년들의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 종일 유튜브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는 것, 그리고 오로지 유튜브를 통해 우리 사회의 현실을 들여다보고 이해하고 학습한다는 것이다. 여당의 정치인들조차 대통령에게 유튜브 좀 그만 보라고 충고할 지경인데, 아이들만 탓하자니 뒤통수가 따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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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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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적 주장 득세하는 남자 고등학교 교실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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