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훼손된 가리왕산
녹색연합
가리왕산이 산소호흡기를 꽂고 있다. 산과 숲은 무생물이 아니다. 산림은 나무, 풀, 꽃, 곤충, 동물, 미생물이 어우러진 생물이다. 생물이니 당연 고통을 느낀다. 생로병사의 순환이 주는 자연의 고통이 아니라 인간 부주의로 가해진 고통이다. 책임이 우리에게 있음이다. 그러니 산소호흡기를 떼고 건강을 되찾게 하는 건 우리가 해야 한다.
부주의가 시작된 건 2011년 7월 평창동계올림픽 개최가 확정되면서부터다. 평창동계올림픽이 당시 강원도가 보여준 장밋빛 청사진에 맞게 결실을 맺었는지, 경제적 성공을 했는지에 대한 판단은 잠시 미뤄 두자. 사달이 난 것은 알파인 활강 스키장을 가리왕산에 짓겠다는 강원도의 결정이었다. 가리왕산은 국유림이고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이었다. 가리왕산의 나무들은 빼어난 형질을 지녔고 산림 유전자를 보유한 국가적으로 중요한 보호구역이었다. 하지만 한번의 올림픽을 위해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은 해제되고 13만 그루가 넘는 우람한 나무들이 무참하게 베어졌다.
합리적 선택지가 있었는데
대의를 위한 희생, 인생사 더러 그런 일이 있지 않느냐고 말할 수 있다. 문제는 '하릴없는' 선택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합리적 선택지가 있었다. 가리왕산을 망가뜨리지 않을 두 번의 기회가 있었다. 대규모 환경 파괴가 비난 여론을 형성하자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분산 개최 가능'을 발표했다. 개최 도시가 아닌 다른 곳의 경기장을 활용해도 된다는 의미다. 정부와 강원도는 거부했다. 다음은 '2RUN' 규정이다. 국제스키연맹(FIS)의 공식 조항으로, 여건상 국제규격 활강 경기장이 없는 경우, 고도가 낮은 스키장에서 2번 활강하는 방식으로 경기를 치를 수 있다는 규정이다. 강원도는 이마저도 거부했고 벌목을 강행했다.
강원도가 왜 두 번의 기회를 모두 거부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저 상식선에서 보자. 강원도로서 올림픽은 몇 번의 좌절을 딛고 천신만고 끝에 따낸 '지역 숙원'이다. 누구한테도 뺏길 수 없는 온전히 그들만의 것이어야 한다. 어떻게 얻은 올림픽인데 말이다. 다른 지역으로의 분산 개최는 좀체 양보가 안 되는 일이다. 그런 올림픽에 걸었던 꿈과 희망은 실현되었는지 모르겠다.
원래 올림픽은 국가가 주도했었다. 그러다 20세기 중후반부터 지역이나 도시가 개최 주체가 되었다. 지역 분권, 지역 자치, 풀뿌리민주주의 확대에 따른 자연스런 변화였다. 이번 달 26일 시작하는 하계올림픽도 프랑스 올림픽이 아니고 파리 올림픽이다. 하지만 지역이나 도시가 지는 경제적 부담은 상당하다. 국가가 지원한다지만 막대한 지역 재정이 투입되기 때문이다. 수지타산이 맞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파산지경에 이르는 경우가 빈번하다. 손익계산 후 개최권을 반납하는 일이 생기는 이유다. '승자의 저주'랄까. 어쩌면 강원도가 이런 상황이 아닐까 한다.
복원은커녕 개발
강원도는 두 번의 기회를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마지노선'은 지키려 했다. 올림픽이 끝난 후 가리왕산을 온전하게 복원하겠다는 약속이다. 산림청 중앙산지관리위원회에 가리왕산 전면복원 생태복원기본계획안을 제출했다. 약속이 지켜졌다면 그나마 다행이었을 게다. 그러나 약속은 지금까지 지켜지지 않고 있고 오히려 복원을 백지화하고 개발을 도발하고 있다.
산림청은 국유림인 가리왕산 사용권 연장을 원하는 강원도의 요청을 불허했다. 동시에 전면 복구 명령을 내렸다. 환경부도 복원 이행조치 명령을 내렸고 미이행 시 행정집행하겠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강원도는 요지부동이다. 케이블카 운행이 문제되자 다급하게 국무조정실이 개입했다. 올해 말까지 한시적으로 케이블카 사용을 허가했다. 정부의 명령과 집행이 작동하지 않는 이 상황을 뭐라 설명할 수 있는지 난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