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의 목화장터에서 빈둥밴드가 공연하고 있다. 관객들의 모습.
임현택
최근 들어 공연 섭외도 꾸준히 들어오는 편이다. 그들이 사랑받고 싶은 '동네' 곳곳에서 행사가 열리고 음악이 필요할 때, 빈둥밴드를 찾는다. 주로 산청, 함양, 남원에서 공연했지만, 더 먼 곳으로도 언제든 갈 준비가 되어 있다.
빈둥밴드 무대 뒤의 마음, 연습에 진심, 소리에 진심
"그전까지는 크게 욕심 없이 합주 자체에 의미를 두고 2주에 한 번씩 연습했어요. 그러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공연 섭외가 많아지면서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 연습량을 늘렸어요. 함양 빈둥이나 산청 명왕성에서 매주 모여 연습하죠."(한범)
연습 장비 세팅에만 30분이 걸린단다. 거기에다 한범은 영상 촬영, 편집까지 하며 유튜브 채널 <반달이와 빈둥밴드>도 운영하고 있다. 연습 영상이나 공연 영상이 주로 올라오는데, 그 퀄리티도 꽤 높기 때문에 팬들의 만족도 역시 매우 높다.
"제가 밴드 활동을 하면서 중요하게 여기는 건 소리의 균형이에요. 미미한 차이지만 소리가 아쉬울 때가 꽤 많거든요. 연습하면서도 일정 수준 이상의 균형잡힌 음향을 만들고 싶어요. 현장에서는 둘쑥날쑥할 수 밖에 없지만, 사람들이 적어도 유튜브에서는 잘 정돈된 소리를 들었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추구하는 '완성된 소리'의 기준을 세우고 싶고, 거기에 집중해 보고 싶어요."(한범)
빈둥밴드의 살림법, 돈 벌려고 하는 일은 아니지만...
"공연비를 조금씩 받는데, 그 공연비를 어떻게 분배하느냐가 되게 재미난 문제거든요. 지금 우리는 공연비의 20%는 밴드 통장에 적립하고, 나머지는 n분의 1로 나눠 가지고 있어요. 워낙 알뜰한 사람들이라 밥도 자주 해 먹고요. 밴드에 필요한 장비나 사고 싶은 개인 악기가 있으면 50% 정도를 밴드 통장에서 지원해주고 있어요.
공연에 드는 연습 비용과 시간을 따져 시급으로 계산해보기도 하고, 세대 구성에 따라 차등을 두어야 할까, 작곡이나 음향 장비 세팅 등 맡은 역할에 따라 차등을 두어야 할까 여러 방식을 고민해 봤는데, 이 문제가 참 재밌는 것 같아요."(은진)
"밴드 내부에서도 고민하지만, 공연을 기획하고 초대하는 입장에서도 그런 기준들을 세워둘 필요가 있어요. 그런 기준들을 잘 알려주고 섭외하는 것도 예의인 것 같고요. 그런 문화가 정착되어 있으면 뮤지션 입장에서도 금액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우리의 활동을 인정해 주고 있구나.'하고 받아들일 수가 있죠."(은진)
지역에서, 특히 지역민들이 하는 공연에 대해서도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문화가 필요하다. 프로 뮤지션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이 취미생활을 뽐낼 수 있는 기회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히 큰 실례다. 어떤 무대이든 조금이라도 감사의 마음을 표현할 기회를 만들면 우리도 더 훌륭한 기획자, 더 훌륭한 관객으로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이제 이 글을 읽은 사람들은 적어도 이들의 정성과 노력과 재능은 절대 가볍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될 거라 믿는다. 공연 기획 얘기까지 흘러갔다니, 빈둥밴드의 멤버들이 못 말리는 활동가들임을 잊어선 안 된다.
밴드로 활동하고, 활동으로서 밴드 하기
은진은 주로 마을 모임을 인큐베이팅하고, 소통을 촉진하는 기획자로 활동했다. 꼭 밴드를 하고 싶었다기보다는 마을 모임을 촉진하고자 우쿨렐레 모임을 열었고, 그러다 지역 행사에 초대받으면서 마을 활동으로서 밴드를 시작하게 된 거다. 은진은 어떤 마음으로 밴드 활동을 이어가고 있을까.
"합창 같은 거 하면 화음이 잘 맞을 때 막 좋고 소름 돋는 거 있잖아요. 그냥 듣기만 할 때와는 또 다르게. 밴드도 마찬가지에요 합주한다는 게 엄청 즐거운 일이란 말이죠. 우리가 뭔가 함께 만들어내는 활동이 주는 충만함이 있어요. 또 이렇게 만든 걸 마을의 필요에 의해서 공연하기도 하잖아요. 그런 게 좋아요. 저는 밴드랑은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그런 활동을 하는 게 신기하기도 해요. 협업하고 기대어서 한다는 게 잘 맞고 좋아요. 원래 노래 부를 때 부끄럽고 얼굴이 빨개지고 그랬는데, 지금은 잘하는 보컬에 기대어 묻어가고, 우리 음악을 더 풍성하게 하는 역할을 하고. 그런 게 저랑 잘 맞았어요."
지역의 필요에 기여하는 경험, 소비자에서 생산자 되는 경험, 음악으로 촉진하기
한범은 산청 청소년 자치 공간 명왕성에서 코디네이터이자 청소년 활동을 촉진하는 활동가다. 밴드를 하면서 청소년 밴드에 대한 관심도 더 커졌다.
"청소년 밴드 활동은 지역에 문화예술이 폭넓게 펼쳐지기 위한 좋은 바탕이 될 수 있겠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역에서 공연할 기회도 많이 만들어주고 싶고, 제가 밴드를 하면서 배우는 것들을 잘 연계하고 지원하고 싶어요."
인터뷰가 있던 날에도 산청 지리산 목화장터 공연이 끝나니 무대 위에서는 바로 카혼 워크숍이 열렸다. 나이와 성별과 직업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사람들이 무대에 둥그렇게 앉았다. 은진이 먼저 시범을 보이면 곧 참여자들이 그 리듬을 따라 카혼을 두드렸다. 누구든 참여할 수 있는 워크숍 하나로 공연도, 장터도 훨씬 풍성해졌다.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경계, 무대 위아래의 경계를 넘나들며 함께하는 경험을 만들어가는 것. 활동과 음악을 잇고 엮는 것. 빈둥밴드의 행보가 더 기대되는 이유다.
워크숍을 진행했던 은진은 이렇게 말한다.
"예술도 잘해야만 하는 건 아니잖아요.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전환되는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이 좀 더 지역에 많아지면 좋을 것 같거든요. 아까 워크숍을 한 것도 우리가 했던 걸 나누는 작업이고요. 그게 쉽지만은 않은데, 그래도 어떻게 이 좋은 걸 사람들도 경험할 수 있게 나누면 좋을까 생각해요. 좀 더 해보고 싶어요. 촉진가로 활동하고 있어서인지, 음악으로 촉진하는 것에도 관심이 많아요. 공연이 아닌 형식으로도 사람들과 음악을 함께하고 싶어요."
향후 계획은
빈둥밴드는 7월 20일 함양 상림공원에서 1시간짜리 버스킹 공연을 준비 중이며, 여기서 신곡 <Glow>를 발표할 예정이다. 8월 1일에는 산청 청년모임 '있다'가 주최하는 토크 콘서트에 출연한다. 단독 공연도 꿈꾸지만, 아직 논의 단계에 있다. 내년에는 EP 앨범 정도를 만들 수 있는 실력과 곡을 갖추는 것이 목표다. 멤버들도 막상 인터뷰하면서 서로가 생각하는 빈둥밴드에 대해 더 잘 이해하게 된 듯했다.
앞서 한범과 은진이 말한 것 말고도 이들은 인터뷰 내내 많은 꿈과 목표를 이야기했다. 한나는 다른 지역 뮤지션들과 교류하는 자리를 만들고 싶다고 했고, 은진은 많이 알려지지 않은 좋은 곡들을 커버하면서 그 뮤지션이나 곡을 빈둥밴드를 통해 더 알리고도 싶으며, 자작곡들은 특히 더 많은 여지가 남아있으니 계속 연구하며 더 나은 음악으로 빚어가고 싶다고 했다. ("처음 만든 곡인 <후투티>에는 전주가 없는데, 어쩌면 전주가 생길지도 모르는 거죠.")
빈둥밴드 2기는 2022년의 한나가 한범에게 던져본 '우리, 밴드나 할까?'라는 낙서에서부터 은진을 만나 현실이 되기 시작했다. 이들이 오늘 낙서처럼 신나게 쏟아낸 꿈들도 언젠가는 현실로 마주하고 있을 것 같은 예감이 확신처럼 든다.
진행 :넉넉 (남원), 글: 푸른 (산청).
작가 푸른
내 이름도 별명도 살고 싶은 모습도 '푸른'. 나는 따뜻하거나 뜨거운 사람.
어린이의 벗 되어 살고 싶다. 어린이 해방을 꿈꾸며 산청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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